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9’ 개막일인 1월 8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미래형 커넥티드카 조정석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9’ 개막일인 1월 8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에서 미래형 커넥티드카 조정석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을 공개했다. 사진 연합뉴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출간한 저서 ‘초격차’를 통해 “제조업은 기술을 절대적 우위에 두고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후발 업체들이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기술 격차를 벌리며 초격차 전략을 통한 성공을 거뒀다. 권 부회장은 “삼성의 초격차 전략 판단 기준은 항상 미래였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초격차 전략은 앞으로도 이어질 예정이다.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주목하는 분야 중 하나는 자동차전장(전자부품) 반도체 시장이다. 자동차전장 반도체란 자동차에 탑재되는 이미지센서나 내비게이션, 오디오 등에 사용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뜻한다.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가 핵심이며 센서와 제어장치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포함한다. 자동차는 기계에서 전자장치 집약체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그만큼 자동차전장 반도체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

삼성은 지난해 8월 자동차전장 반도체(이하 전장 반도체)를 ‘4대 미래 산업’ 중 하나로 꼽았다. 삼성은 자금과 기술력이 충분하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이 대세인 전장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 전략을 펼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장 반도체는 안전성이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업력과 신뢰도가 필수적인데 삼성은 이를 쌓아야 한다. 아울러 전장 반도체 시장은 아직은 규모가 크지 않고, 절대 강자 없이 수십 개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2016년 인수한 미국 카오디오 업체 ‘하만’의 업력과 유통망을 바탕으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과 ‘세일즈 포인트’를 넓혀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전장 반도체 관련 업체를 인수·합병(M&A)하거나 융합 얼라이언스(연합)를 구축하는 등 기존 업체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장 반도체 시장의 현황과 전망 그리고 삼성의 예상 진출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40조원 미만 시장에서 28개 업체 혈투

관련 업계 취합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글로벌 전장 반도체 시장(연매출액 기준)은 344억6900만달러(약 38조7000억원) 규모다. 아직은 총 40조원도 안 되는 시장이다. 이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가 없다는 점이다.

2017년 말 현재 전장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5%를 넘는 회사는 네덜란드 NXP(12.5%), 독일 인피니언(10.8%), 일본 르네사스(10.0%), 미국 TI(8.0%), 스위스 ST(7.1%), 독일 보쉬(5.5%) 등 6곳이다. 시장 점유율 1위 회사와 3위 회사의 차이는 2.5%포인트에 불과하다. 이 시장 참여자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인 미국의 퀄컴과 일본 전자 기업 도시바를 포함, 28곳에 달한다.

전장 반도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신기술 도입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장 반도체 회사들의 연평균 매출액은 2017년 기준 전년 대비 14.1%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전장 반도체 시장이 향후 10년간 두 배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삼성은 2015년 12월 자동차 전장 사업팀을 발족시켰다. 이어 2016년 11월엔 글로벌 카오디오 1위 업체인 하만의 지분 100%를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2017년 3월 인수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삼성은 ‘4대 미래 성장 사업’ 중 하나로 전장 반도체를 선정했다. 구체적인 삼성의 4대 미래 성장 산업은 인공지능(AI), 5G 이동통신, 바이오, 반도체 중심의 전장 부품이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자율주행차 발전에 따라 꼭 필요한 비메모리 반도체 부품이 있는데, 그중 상당 부분은 삼성전자가 이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하만의 역할이다. 하만은 JBL과 마크레빈슨 등 등급별 오디오 브랜드를 모두 갖춘 인포테인먼트(정보+오락) 기업이다. 2015년 기준 세계 카오디오 시장 점유율 41%로 1위를 차지했으며, 텔레매틱스(자동차와 무선통신을 결합한 차량 무선인터넷 서비스 분야) 시장 점유율은 10%로 2위다. 삼성이 하만을 인수한 것은 표면적으로는 이 분야에 대한 강화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카오디오 등은 전장의 주요 분야 중 하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삼성이 하만을 통해 전장 반도체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만이 자체적으로 쌓아온 기술력에 더해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과 오랜 시간 협력하면서 쌓아온 신뢰와 유통 경로를 삼성이 십분 활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삼성의 하만 인수는 하만이 가지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동향과 수요 등 핵심 정보를 삼성이 흡수해 ‘전장 세일즈 포인트’를 확 넓혔다는 의미가 있다”라며 “삼성은 하만이 쌓아온 ‘시간’을 산 셈이다”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삼성과 하만의 첫 합작품인 ‘디지털 콕핏(Digital Cockpit)’이 전 세계에 공개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하만은 1월 8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19’에서 이를 선보였다. 디지털 콧픽은 전장 솔루션이 집약된 제품이다. 이 제품에는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카메라뿐만 아니라, 커넥티드카(정보통신 기술이 결합된 차) 구현을 위한 5G 솔루션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2021년 출시 예정인 유럽 완성차에 이 솔루션을 적용할 예정이다.

아울러 삼성은 지난달부터 독일 차량 제조사 아우디에 전장 반도체 ‘엑시노스 오토 V9’을 납품하고 있다. 엑시노스 오토 V9은 삼성이 지난해 10월 차량용 반도체 브랜드인 엑시노스 오토를 공개한 이후 선보인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용 고성능·저전력 프로세서다. 이 프로세서는 운행 정보나 차량 상태 등의 정보와 멀티미디어 재생과 같은 오락 요소를 동시에 제공한다.


삼성의 선택은?

전장 반도체는 기 진입자들의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다. 삼성의 글로벌 전장 반도체 시장 진출 예상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전장 반도체 업체 M&A, 전장 반도체 업체와 융합 얼라이언스 강화 그리고 하만 등 타 브랜드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시나리오 1│기존 업체 인수

우선 삼성이 M&A를 통해 기존 전장 반도체 업체를 직접 인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는 삼성의 충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나오는 관측이다. 증권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선전에 힘입어 지난해 말 현재 현금 보유액이 총 104조2100억원으로 전년(83조6000억원)보다 24.7% 증가했다. 현금 보유액은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 상품 잔액 등을 합친 것이다. 연구·개발(R&D)은 물론 M&A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돈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4대 미래 성장 산업을 발표하면서 이들 분야에 2021년까지 총 18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이 전장 반도체 시장 1위인 NXP나 2위인 인피니언을 인수할 경우 이들 기업의 기술력은 물론 업력까지 한 번에 손에 쥘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NXP를 유력 M&A 대상으로 꼽기도 한다. NXP가 특허와 기술력을 갖춘 선두 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NXP를 인수한다고 해도 ‘게임체인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2017년 기준 NXP 연매출액은 43억달러(약 4조8000억원)에 불과했다. 또 M&A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전장 반도체 시장에서 자칫 업계 공동의 견제를 받게 만들 가능성도 있다. NXP와 인피니언 매각을 과연 각국 정부가 묵인할지도 미지수다. ‘인더스트리 4.0(4차 산업혁명)’이 대세인 상황에서 핵심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타국에 매각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장 반도체는 B2B(회사 간 거래) 사업인 데다 기존 업체들과 자동차 업체들의 관계가 매우 끈끈하기 때문에 M&A가 해결책이 될 수는 있다”면서 “다만 삼성의 구체적인 M&A 대상은 M&A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핵심 역량을 취하기 위해서인지 등 구체적인 전략 목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해외 전장 반도체 업체 인수 움직임은 없다”고 했다.


시나리오 2│기존 업체들과 융합 얼라이언스 강화

두 번째 시나리오는 삼성이 기존 전장 반도체 업체들과 융합 얼라이언스를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이는 삼성과 경쟁사가 함께 출자해서 합작회사를 만들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공동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M&A보단 간접적인 방식이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덜하다.

삼성은 이미 비슷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앞서 2008년 삼성SDI는 독일 자동차 부품 회사 보쉬와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협업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양사는 5 대 5로 출자해 ‘SB리모티브’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전기차용 중형 배터리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게 삼성SDI의 목적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장 반도체는 기능별로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고 유럽과 미국, 일본 등 각국에서 터전을 닦아온 기업들이 버티고 있는 분야”라며 “후발 주자인 삼성이 이들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거나 합작사를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 봄 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직 전장 반도체 시장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삼성이 진출해 협력 생태계를 잘 조성해 나가면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만의 직원이 커넥티드카에 탑승해 각종 기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하만의 직원이 커넥티드카에 탑승해 각종 기능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시나리오 3│타 브랜드 활용 극대화

마지막 시나리오는 삼성이 하만 등 삼성 브랜드가 아닌 다른 브랜드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안이다. 하만 혹은 제3의 새로운 자회사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제품을 납품하고 하만 혹은 새로운 자회사가 일종의 유통·판매 루트가 되는 방식이 가능하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전장 반도체 등 비메모리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달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는 대기업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가 잘하는 분야”라고 말했다. 실제 전장 반도체 시장 1위 NXP는 네덜란드 전자 업체 필립스 반도체사업부가 독립한 업체다. 한 민간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전장은 분야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삼성 브랜드가 유리할지, 하만 등 다른 브랜드가 유리할지 여부는 구체적으로 노리는 진출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삼성은 자금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효과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전장 모듈화 등 부가가치를 늘릴 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삼성의 전장 시장 진출이 본격화하면 고용 유발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장은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아날로그 제조 방식에 가까워 훨씬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NXP의 임직원은 약 3만 명, 인피니언은 약 4만 명이다. 이들은 연간 4조~5조원 수준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메모리 반도체에 주력한 삼성전자는 약 10만 명의 임직원이 지난해 243조7700억원의 매출액(잠정)을 기록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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