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규 서강대 전자공학과,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연구원, 씨앤에스테크놀로지 이사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이장규
서강대 전자공학과,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연구원, 씨앤에스테크놀로지 이사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네덜란드의 전장(자동차 전기·전자부품) 기업 NXP는 전장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12.5%·2017년 기준)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다. 세계적 IT기업인 미국 퀄컴이 470억달러(약 52조9700억원)를 주고 NXP를 인수하려다 무산되기도 했다. NXP의 주력 사업 중 하나는 자동차의 오디오와 비디오, 내비게이션을 통합해 한 번에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AVN) 시스템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는 AVN을 NXP에서 전량 구입해 장착해왔다. 하지만 2011년부터는 국내 신생벤처기업 텔레칩스의 제품이 NXP 제품을 밀어내고 현대자동차의 AVN에 장착되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텔레칩스의 제품이 NXP의 제품보다 기술력이 좋고 가격이 낮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자동차가 생산하는 자동차의 AVN 중 85%가 텔레칩스의 제품이다. 텔레칩스는 벤츠, 도요타,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에도 납품하고 있다. 세계 AVN 시장점유율은 12.3%(2017년 기준)에 달한다.

2월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본사에서 이장규 텔레칩스 대표를 만났다. 그는 “세계 최고 전장기업인 NXP와 경쟁한다고 해도 시장을 잘 파악하는 능력과 뛰어난 기술만 있다면 해볼 만한 승부”라고 했다.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 도전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현재 시장에 없는 기술, 지금 막 새로 나오는 기술을 어떻게 자동차에 접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 기회가 보일 것”이라고도 조언했다. 이 대표는 빠르게 변화하는 전장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5년 앞 미래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 창업했나.
“1999년 텔레칩스를 만들었다. 사회생활은 1988년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시작했다. 입사 후 메모리 반도체(데이터 저장용 반도체)인 D램의 설계 업무를 하다 1993년에 퇴사했다. 기흥골(경기도 용인시 기흥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을 빗댄 말)에서 몇 년을 지내며 반도체 설계 업무만 하다 보니 친구들을 잃게 됐다(웃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회사를 나왔다. ‘삼성전자가 돈을 더 벌 수 있고 안정적인 직장인데 나가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하는 그런 걱정은 전혀 없었다. ‘내가 무엇을 못 하겠냐’는 생각만 있었다. 삼성전자 연구소 선배가 하던 벤처기업인 씨앤에스테크놀로지에서 일하다 독립해서 텔레칩스를 만들었다.”

텔레칩스의 AVN은 어떤 제품인가.
“AVN은 오디오(A), 비디오(V), 내비게이션(N)을 뜻한다. AVN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이용해서 차 안에서 TV, 오디오, 내비게이션 기능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사실 스마트폰에서는 다 쉽게 할 수 있는 기능이지만 차에서는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이런 기능들을 모두 통합하는 것이 안 됐던 것이다. 우리는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통해 작동하는 이런 기능들을 자동차에 넣겠다는 목표로 AVN을 만들었다. NXP가 비슷한 제품을 갖고 현대자동차에 먼저 납품했는데 나중에 현대자동차가 우리 제품이 가격이 낮고 성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후 현대차가 NXP 제품 대신 우리 제품을 쓰기 시작했다.”

AVN 시장에서 NXP를 이긴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텔레칩스는 NXP보다 기업 규모가 더 작지만 상대적으로 더 발 빠르게 시장에서 필요하고 요구하는 기술에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장점들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본다. 우리가 경쟁하는 회사들은 NXP뿐 아니라 르네사스(일본), 미디어텍(대만)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다. 모두 시장점유율이 세계 10위 안에 드는 기업들이다. 이런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은데 해볼 만은 하다. 일부 기술을 제외하면 우리 기술이 더 나은 면이 있고 그들이 나은 면도 있다.”

시장에 빠르게 대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리가 2003년 개발했던 차량용 USB호스트 플레이어가 시장에 빠르게 대응한 좋은 예다. 차량용 USB호스트 플레이어는 음악파일이 들어있는 USB메모리를 자동차에 있는 USB포트(USB메모리를 꽂을 수 있는 장치)에 꽂기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장치다. 이 장치를 개발할 당시에는 이미 USB메모리를 이용해 음악파일을 이동시키는 것은 일반화된 상태였다. 우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동차에 이 기능을 연결하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MP3플레이어 시장에는 있었던 기술이지만 자동차 오디오에는 없었던 기술을 갖고 시장을 공략했고 우리의 예측이 맞았다. 신기술이 미래에 어떤 영역으로 확장될지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했던 것이다.”

AVN 이외의 다른 사업 분야는 어떤 것인가.
“헤드업디스플레이(HUD·현재 속도 등 주요 정보를 운전자 바로 앞 유리창에 이미지로 보여주는 장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차선을 벗어나면 경고음을 울리고 핸들을 돌려주는 장치), 텔레매틱스(무선통신기능을 이용해 이동 중에 이메일을 주고받거나 교통정보를 확인하는 등 외부와 연결되는 서비스)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전장용 반도체가 일반 가전기기나 PC, 스마트폰용 반도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전장 반도체는 다른 기기들에 들어가는 반도체보다 훨씬 빠르게 기기들을 작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예를 들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스마트폰을 켤 때 부팅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하지만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기기들은 그러면 안 된다. 시동을 켜면 전후방 카메라와 계기판이 바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후진 기어를 넣으면 바로 뒤가 보여야 한다. 운전자와 보행자의 생명과 연결되는 문제다. 이 때문에 일반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첨단 기술이 요구된다. 또 다른 부분은 양산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칩은 빨라야 5년 후에야 자동차에 들어가서 양산된다. 새로운 기술은 신차에 적용되는데, 신차가 나오는 주기가 빨라야 5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5년 후에 어떤 기능의 기기들이 필요할지, 그 기기에 들어가야 하는 반도체의 기능과 데이터처리 속도는 어느 정도 수준일지를 끊임없이 살펴봐야 한다. 5년 앞을 계속 바라보면서 사업을 해야 하는 분야가 전장 반도체 산업이다.”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자본과 인력이 뒤지지 않나.
“많이 뒤지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 기업들은 자본력과 연구인력이 엄청나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들도 그런 회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더 조직이 유연하고 시장에 빠르게 대응해 좋은 제품을 갖고 가면 된다. 대형 자동차 회사들은 전장 반도체 회사들의 실력을 보지 이름값을 보는 게 아니다. 다만 전장 반도체 비즈니스를 키우고 스타 기업을 배출하는 데 정부 지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당장 전장 벤처들에 세금을 나눠주라는 얘기가 아니라, 정부만 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지원이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기업들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 자금으로 기업이 좋은 제품을 개발해 돈을 번 후 다시 정부에 받은 돈을 돌려주는 구조를 잘 짜는 것이다.”

정해용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