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직원들이 시스템LSI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삼성전자 직원들이 시스템LSI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제패에 이어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새 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2030년에는 비메모리 부문 1위에 오른다는 목표도 공표했다. 삼성전자는 D램, 낸드플래시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선 명실상부 세계 1위지만,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차량용 반도체 등 비메모리 부문에선 갈 길이 멀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분야에서 1위에 오르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펼칠지 관심이 쏠린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부문에서 1위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부문의 성공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미 메모리 부문에서 성공을 경험한 전문인력과 협력업체, 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공정 기술과 반도체 공장, 정보기술(IT)·가전 제조를 통해 확보한 첨단기술, 넉넉한 재정 등 삼성전자의 기존 자산과 연결되면 비메모리 부문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에서 영역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비메모리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성공기반 1│IT·가전 제조 경쟁력과 결합

삼성전자 입장에서 비메모리 반도체가 완전히 새로운 분야는 아니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비메모리 사업도 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쟁력을 확보했던 스마트폰, 가전 등 거의 모든 사업 분야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2017년 인수한 하만과의 시너지가 이미 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하만 인수는 삼성전자가 차량용 반도체 신제품을 내놓는 등 기존 영위하던 사업에서 신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앞으로도 자동차 반도체와 음향 기기, 기타 IT 기기와의 융합이 충분히 가능하고, 이를 모듈화해 공급하면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메모리 분야에서 1등을 하겠다는 것은 기존에 모바일이나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반도체 기술을 차량용 반도체 기술 등으로 확장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비메모리 제품은 ‘다품종 소량생산’인데, 이 같은 특성이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과 함께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디지털 가전 등 최종 제품 생산라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반도체에만 특화한 경쟁 업체에 비해 응용력과 기술력, 수요처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이유에서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가 종합전자회사로서 가지고 있는 IT·가전 제조기술과 차별화된 부품경쟁력은 비메모리 부문에 분명히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성공기반 2│수직계열화와 첨단 기술 확보

그동안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쟁력은 반도체부터 디스플레이 패널, 각종 완제품 그리고 서비스망까지 아우르는 완벽한 수직계열화에서 나왔다.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는 물론 AP 등 비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개발, 생산하고 이를 다양한 IT 기기에 장착할 수 있는 제조사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여기에 더해 완제품 마케팅 능력까지 갖췄다. 다른 경쟁자가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다.

세계 최고의 미세공정·고집적화 기술 등 최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력을 보유한 점도 비메모리 부문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세공정 기술과 함께 ‘시스템 온 칩(SoC·System on Chip)’ 등 고집적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oC는 정보통신 기기에 쓰는 핵심 기능을 하나의 반도체에 집약하는 기술이다. 전자제품의 두뇌 역할을 하거나 특정 부분을 제어하고 제품을 구동시키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며 고도의 회로 설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한태희 교수는 “삼성전자는 그동안 스마트폰과 다양한 가전에 쓰이는 AP, 각종 센서, 디스플레이 구동 칩 등을 개발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및 제조 역량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설비를 갖추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다. 삼성전자는 이미 2005년부터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LSI 사업부)를 생산하는 라인을 성공적으로 가동하고 있으며, 파운드리 사업을 통해 비메모리 자체 생산에서도 자신감을 얻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를 스마트폰 등의 제품 로드맵에 맞춰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이 삼성전자가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었다”며 “비메모리 반도체도 모바일뿐만 아니라 삼성전자가 만드는 차량용 디지털 기기, IoT(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확대되면서 성장세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성공기반 3│현금 100조원대의 재정

넉넉한 재정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 보유액(연결기준)은 104조2100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현금 보유액이 늘어났다는 것은 지속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함께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단행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특히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해 수차례 M&A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은 기존의 납품실적 등이 있는 기업 위주로 돌아간다”며 “이 분야에선 삼성이 약하기 때문에 M&A를 통해서 시장에 진입하는 게 시간도 단축하고 리스크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M&A를 통해 경쟁력과 핵심 거래선을 단번에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위원은 “시스템 반도체 업체를 인수할 경우 기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M&A 대상으로 알려진 기업은 여러 곳이다. 네덜란드의 차량용 반도체 회사 NXP, 미국 반도체 기업 자일링스(Xilinx), 독일 반도체 업체 인피니언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퀄컴이 지난해 인수를 포기한 차량용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인 NXP를 삼성전자가 인수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 기업을 인수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고 업계와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면서 삼성의 우군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견도 함께 나온다. 이 때문에 M&A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업체들과 융합 얼라이언스를 구축하거나 글로벌 협업 프로젝트에 나설 가능성도 크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부문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술 격차와 인력난이 문제다.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는 고도의 설계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처음 투자했던 1970년대부터 일본 영향으로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으며,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 진입장벽이 높았던 것도 메모리 분야를 선택한 이유였다.


기술 격차와 인력난 해결이 관건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비메모리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설계 기술이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탄탄한 전문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반도체 인력 양성은 모두 메모리 공정 기술 중심으로 이뤄졌다.

삼성전자는 2002년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에 나선 이후 2007년 이스라엘 비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트랜스칩을 인수하며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비메모리 역량은 아직 낮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금까지 물량 공세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해 왔지만 이제는 고부가가치 기술로 비메모리 시장을 주도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향후 전략은 이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통해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한 전략을 비메모리 부문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선제 투자를 통한 ‘기술 초격차’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올 초 임직원들에게 “반도체 1등 기업이라는 자부심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미래 반도체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선 ‘기술 초격차’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시형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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