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1995)’ ‘알리타: 배틀 엔젤(2019)’ ‘블레이드 러너(1982)’ (왼쪽부터).
‘공각기동대(1995)’ ‘알리타: 배틀 엔젤(2019)’ ‘블레이드 러너(1982)’ (왼쪽부터).

“우리는 한 인간으로서, 하나의 사회로서, 문화로서 점점 테크놀로지와 융합되고 있으므로 50년 후 100년 후, 우리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이하 알리타)’이 그린 세계관을 이렇게 설명했다. 2월 5일 캐머런 감독이 각본 작업에 참여한 ‘알리타’가 전 세계에서 국내 첫 개봉했다. 그보다 열흘 전 개봉했던 ‘극한직업(3월 1일 현재 1570만 관객)’의 돌풍에 못이겨 ‘알리타’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3월 1일 현재까지 190만 관객을 모았으니, 캐머런 감독치고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그럼에도 ‘알리타’가 2019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영화에는 인간의 뇌와 기계 몸을 지닌 ‘사이보그’가 등장한다. 이 사이보그는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 보인다.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랑하고, 분노하고, 행동한다. 그의 감정과 행동력을 보면 인간과 기계의 구분이 사라진 세계가 상상된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은 인공지능(AI) 개발에 한창이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2015년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는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의 로봇) ‘페퍼(pepper)’를 내놓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17년 사람의 뇌에 ‘뉴럴레이스’라는 칩을 이식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조성배 전 한국데이터마이닝 학회장은 “최근 인공지능 개발 추세는 학계가 아니라 기업이 이끌고 있다”고 했다. 기업은 수익성을 내다보고 사업적 판단을 내린다. 기업이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기술들이 실현 가능하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는 지능을 개발하게 되면, 인간의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대표적 예가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다. AI 관련 글로벌 스타트업에도 투자하는 손태장 미슬토(Mistletoe) 회장은 작년 말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AI시대가 되면 특히 화이트칼라가 대량 실직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AI 시대의 변화는 빠른데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느리면 일자리에서 거대한 미스매치가 발생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난해 4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 어떤 전문가도 다가올 사회의 실직 또는 일자리 수요 불균형 자체를 외면하진 못한다.


인간의 존재 가치 고민하는 SF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인간 고유의 특성을 ‘인간성’이라 부른다. 인간성을 구성하는 대표적 특징이 ‘감정’이다. 조성배 전 학회장은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올지는 과학기술계도 잘 모른다. 다만 감정이 있는 것처럼 흉내내는 시도는 충분히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SF 작품들은 이런 미래를 인간성이 상실되는 디스토피아로 그린다. 하지만 핵심은 그 속에서 발현되는 인간성이다. 오히려 기계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내놓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기념비적 작품 ‘블레이드 러너(1982)’에서는 복제인간 로이가 자신을 창조한 타이렐 회장에게 4년에 불과한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특수 경찰(블레이드 러너) 데커드에게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복제인간은 오히려 블레이드 러너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고는 마지막 대사를 읊고 수명을 다한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모든 순간들도 빗속에 흐르는 내 눈물처럼 사라지고 말겠지… 이제는 죽어야 할 시간.(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복제인간의 짧았던 기억마저도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찬란한 순간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90년대 일본 SF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에는 네트워크에 뇌를 연결시킨 전뇌화(全腦化)된 인간들이 나온다. 전뇌화는 인간의 뇌를 전자화시켜 기계가 뇌의 활동을 보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공각기동대’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뇌 속에 존재하는 영혼을 네트워크 속에 올려놓는다. 인간은 네트워크에서 타자를 만나면서 서로 결합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타인을 만나 결합하고 재탄생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의미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캐릭터는 ‘알리타’도 마찬가지다. 그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간다. 작은 소녀지만 그의 정신력은 몸집이 배나 되는 악당도 물리칠 정도로 강하다. ‘이코노미조선’이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알리타’를 비롯한 SF의 상상력을 짚어보면서 미래사회의 인간성, 그리고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지금의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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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Science Fiction) 과거에는 ‘공상 과학’으로 번역됐으나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이 있다. 해외에서 ‘공상’에 기반한 판타지 소설(Fantasy Fiction)과 ‘과학’에 기반한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은 구분된 개념이다. 판타지 소설과 구분하고자 SF를 ‘공상 과학’이 아닌 ‘과학 소설’로 번역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SF 만화’나 ‘SF 영화’의 경우 ‘과학 소설 만화’ ‘과학 소설 영화’로 불리는 것이 어색하다. 본지에서는 SF를 과학적 내용과 공상적 줄거리를 담은 장르로 정의한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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