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로섬의 만능 로봇(R.U.R.·1920) (우) 은하철도 999(1977)
(좌) 로섬의 만능 로봇(R.U.R.·1920) (우) 은하철도 999(1977)
선정우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번역자, 만화칼럼니스트
선정우
출판기획사 코믹팝 대표, 번역자, 만화칼럼니스트

SF 작품은 현실 사회와 ‘상상력’을 주고받는다. 미래를 그린 SF 작품이지만 사실 현실의 비유로 작용하거나,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을 필두로 해 인공지능(AI), 로봇,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등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의 단계별 확장 형태와 관련된 ‘자아’ 문제에 관한 ‘상상력’이 주목받는다.

인간에게 무엇이 ‘나’이고, 무엇이 ‘내가 아닌 존재’인지는 고전적인 주제다. 종교는 인간이 창조주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은 ‘인간과 닮은 존재’를 만드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도 여럿 등장한다. 일례로 한 조각가가 이상적인 여성을 조각상으로 만든다는 내용의 피그말리온 설화가 있다. 또 로봇처럼 인간이 만든 존재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거나 심지어 인간을 상대로 반란이나 혁명을 일으킨다는 테마는 SF에서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었던 체코의 SF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R.U.R.·Rossum’s Universal Robots)’은 ‘로봇이 대체하는 노동’이란 테마를 다뤘다. 영화 산업 초창기 제작된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후대의 SF와 디스토피아 장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 작품에서도 로봇 혹은 인조인간이란 존재가 노동자 계급의 혁명과 결부해 중요하게 다뤄졌다. 산업혁명 시기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이 기계를 부순 러다이트 운동 이후 화두로 던져진 주제로 현실과 깊이 관련됐다. 소설가 카렐 차페크나 ‘메트로폴리스’ 감독 프리츠 랑이 모두 당시 파시즘의 대두와 연관된 인물인 만큼 그 시기 유럽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게 작품 활동을 했을 리는 없으리라(그 이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그의 저서를 통해 전체주의 하에서 ‘인간의 조건’을 사유하게 된 것 역시 그런 ‘시대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 세계와 창작물은 ‘상상력’이란 매개체를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는 의미다. 현실 세계에서 상상 가능한 기술 발전의 궤도에 따라 SF 창작물이 탄생하기도 하고, 그 창작물을 현실 세계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발전하기도 한다. 그중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도 있는데, ‘사이버펑크’라는 장르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진다. 설정상 인간을 닮은 인조인간이나 복제인간도 아닌 로봇과 같은 ‘완전한 기계’인데도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좌) 매트릭스(1999) (우) 알리타: 배틀 엔젤(2019)
(좌) 매트릭스(1999) (우) 알리타: 배틀 엔젤(2019)

테즈카 오사무의 만화 ‘철완 아톰’에서 아톰은 자신이 가진 힘을 인간을 위해서 쓰고자 한다. 반면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도 있고, 또 한편으론 같은 인간끼리도 전쟁이나 범죄가 일어난다. 이 경우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마쓰모토 레이지의 만화 ‘은하철도 999’에서 주인공 철이는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기계 몸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기계 몸이 행복을 찾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분명 인간일지라도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경우 그 사람은 과거의 자신과 동일한 인물일까? 많은 픽션 작품에서 기억을 잃은 인물이 과거의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지금의 본인이 절대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당혹감을 느낀다는 내용이 많다. 혹은 주어진 ‘가짜 기억 속의 행복’을 버리고 ‘어쩌면 불행할지 모르더라도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도 영화 ‘토탈 리콜’이나 ‘매트릭스’를 필두로 자주 연출된 설정이다. 사실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의 주인공 사이보그 알리타(원작 ‘총몽’에서는 갈리)에겐 그런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물론 본인이 누구였는지 과거의 기억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이란 존재의 정의에 대한 의문에까지 이르진 않는다. 어쩌면 그런 고민은 SF에선 너무 오래된 유형으로, 제임스 캐머런 본인부터 ‘에일리언 2’에서 비숍을 통해 이미 다뤘던 주제다. 21세기 작품에서 굳이 다시 한번 그릴 필요를 못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아니면 속편을 염두에 둔 설정일 수도 있겠다).

뇌를 해킹해서 타인의 기억을 심거나 의식을 뒤바꾸는 SF적 설정에 있어서, ‘해킹 전의 나’라고 제시된 기억에 대해 그게 진짜 ‘나’인지를 현시점의 ‘해킹된 나’로선 판단할 수 없을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해킹당한 후의 나는 지금 행복하고, 그 이전의 나는 행복했는지 알 수 없다면?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공각기동대’에는 특히 이 내용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후속편인 ‘이노센스’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외견상으론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가, 정말로 살아있는지 어떤지 하는 의혹. 반대로, 생명이 없는 사물이 어쩌면 살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 인형이 왜 까닭 모르게 무섭고 기분 나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말이야. 그건 인형이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즉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야. 인간 역시도 간단한 장치와 물질로 환원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공포. 즉 인간이란 현상이 본래는 허무에 속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 생명이라는 현상을 규명하고자 한 과학도 이런 공포의 조성에 한몫했지. 자연이 계산 가능하다는 신념은 인간 역시도 단순한 기계부품으로 환원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니까.”

그러고 보면 오시이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는 PMC 군사 기업을 소재로 약물로 성장이 멈춘 인물들이 기억이 지워진 채 반복해서 파일럿으로 배치돼 싸우다 죽고, 죽으면 다시 재생시키는 일종의 ‘인공 병사’를 다룬 작품이다. 베트남전쟁 이후 흔한 소재였던 ‘인간성이 파괴된 병사’를 ‘처음부터 복제인간으로 만들어진 병사’로 대체할 경우엔 어떤 영화가 될지 다룬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성을 잃은 인간과 감정을 느끼고 정의감을 가졌지만 만들어진 기계. 그중 어느 쪽을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 기억 상실, 정신 분열, 노화로 인한 인지능력 장애 그리고 픽션의 단골 소재인 다중인격 등과 관련해 자아의 의미를 탐구하는 질문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SF의 오랜 테마였던 ‘인간성’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까.

AI의 ‘특이점’이 현실로 되는 것은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만, ‘AI 시대’를 눈앞에 두면서 다시금 그런 의문점을 떠올려본다.


plus point

괴수 영화 흐름도 포스트 모더니즘

혼다 이시로 감독의 1954년 영화 고지라 (ゴジラ)의 한 장면. 사진 도호 주식회사
혼다 이시로 감독의 1954년 영화 고지라 (ゴジラ)의 한 장면. 사진 도호 주식회사

1954년 일본 영화 ‘고지라’는 핵전쟁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그 이전까지의 몬스터물이 자연재해나 인간을 능가하는 거인과 같은 거대한 존재에 대한 상상력의 결과였다면, 고지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의 발전이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면서 탄생된 괴수라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종래의 아날로그적 특수촬영(SFX) 기법(소위 ‘특촬물’)이 컴퓨터그래픽으로 완전히 뒤바뀌면서 괴수물의 양상 역시 좀 더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2008년 미국 영화 ‘클로버필드’에선 뜬금없이 등장한 괴수가 뉴욕을 공격하는 모습이 캠코더 영상으로 촬영됐다는 설정으로 그려진다. 이것은 물론 ‘전쟁’이라기보다 ‘테러’가 더 가까워진 현대 사회의 비유다. 이미 전쟁은 과거의 ‘원자폭탄’ ‘수소폭탄’이 아니라 ‘드론’이나 ‘대규모 해킹을 통한 사회기반시설 파괴’와 같은, 즉 사실상 테러와 유사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선정우 코믹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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