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1982)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18분
감독 | 리들리 스콧
줄거리 | 1982년 개봉작. 미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필립 K. 딕의 1968년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배경은 핵전쟁 이후 폐허가 된 2019년 로스앤젤레스. 인간은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를 벗어나고자 ‘레플리컨트’를 노예로 부려 우주 행성을 개척한다. 그러나 자의식을 가진 레플리컨트는 반란을 일으킨 뒤 지구에 잠입해 제작자를 만나러 가고, 이들을 잡기 위해 특수경찰 ‘블레이드 러너’가 수색에 나선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미국과학사학 학회지 ISIS 편집위원, ‘크로스 사이언스’ 저자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미국과학사학 학회지 ISIS 편집위원, ‘크로스 사이언스’ 저자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More human than human).”

1982년 제작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구절로 인조인간인 레플리컨트를 제작한 타이렐의 슬로건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레플리컨트들은 인간과 외모가 구별되지 않는다. 말썽을 부린 레플리컨트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특수경찰 블레이드 러너들은 인간과 레플리컨트를 구별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보이트-캄프 기계’를 사용한다. 영화에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지만, 이 기계는 테스트 대상의 눈에 초점을 맞춘 채로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레플리컨트의 눈동자에 나타나는 감정의 기복을 관찰한다.

성인으로 만들어지는 레플리컨트는 인간이 수십 년 동안 살면서 익혀나가는 감정에 미숙하다. 레플리컨트를 제작하는 타이렐은 이들에게 기억을 심어준다. 다만 인간의 기억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연속적인 데 반해 레플리컨트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불연속적이다. 인간이 과거의 즐겁고 슬픈 기억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감정의 변화가 생긴다면, 레플리컨트의 기억과 감정 연결에는 미세한 균열 같은 것이 있다. 보이트-캄프 테스트는 “사막에서 자라를 뒤집어 놓았을 때…” “삶은 개를 식탁에 올려놓았을 때…” 같은 질문을 하면서 눈동자의 흔들림에서 나타나는 감정의 균열을 찾아낸다. 눈은 ‘영혼의 창’이다.

영화에 나타나는 ‘눈’의 이미지와 역할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얘기가 있다. 반란을 일으킨 레플리컨트의 대장 격인 로이가 자신들을 만든 타이렐을 찾아가서 그를 죽일 때도 그의 눈에 손가락을 찔러 넣는다.

반면에 ‘기억’이라는 소재는 이보다 덜 주목받았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레플리컨트의 기억은 ‘꿈’에 중첩된다. 레플리컨트를 처형하던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종종 유니콘에 대한 꿈을 꾸는데, 그의 꿈도 주입된 기억 때문이었다. 그 역시 레플리컨트라는 것이 감독의 의도다(이는 1992년의 감독판에서 분명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억은 영혼의 기록”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기억은 그것이 진짜 기억인지 꿈인지 구별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대부분에게 분명한 것은 기억이 연속적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10세 때, 15세 때, 20세 때를 기억하고, 이런 기억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룬다. 내가 내 인생의 20대에 대해서 아무런 기억이 없다면?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생각이 잘 나다가, 그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이 30대라면? 내 기억이 딱 4년만 존재한다면? 그래도 내가 인간일 수 있을까?

2017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레플리컨트를 추적하는 블레이드 러너로 K라는 레플리컨트가 등장한다. 그는 폐허 제철소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다가 목각인형을 숨기는 기억을 갖고 있는데, 자신이 레플리컨트임은 분명하지만 이 기억이 심어진 기억인지 혹은 진짜 기억인지를 알 수 없어 고민에 빠진다. 레플리컨트가 아이를 낳았고, 그게 자기일 수 있다는 개연성 때문이다. 이렇게 기억이라는 것은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이어주는 소재다.


인조인간과의 갈등 통해 인간성 보여줘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레플리컨트들은 우주 식민지 개발, 전쟁, 암살, 섹스 등 특수 임무를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다.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만들어서 이런 임무에 사용하다가 4년 후에 폐기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할까? 이렇게 물어본다면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가정을 해보자. 지금 우리나라가 옆 나라와 전쟁하게 됐다. 청년들을 징집해서 전장에 투입해야 하는데, 한 회사가 인간과 비슷한 레플리컨트를 만들어 청년 대신에 전쟁에 내보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청년들은 물론 이들의 부모, 아마 전 국민이 이를 지지할 것이다. 이 레플리컨트들을 위험한 생산 현장에 투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이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수명을 4년으로 제한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 대 레플리컨트의 대결을 그린 영화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차별’이라는 어려운 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More human than human’은 ‘인간보다 더 인간처럼’으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로 번역될 수도 있다. 진정으로 인간답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수명에 집착하는 것? 창조주에 복수하는 것?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 영화 말미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진다. 로이는 자신의 친구들을 살해했던 데커드 형사를 죽음의 문턱에서 살려준다. 그러고는 자신의 짧은 삶에서 겪은 놀라운 경험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 기억은 대부분 끔찍한 전투와 관련된 것이다. 이런 기억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고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로이는 죽음을 앞둔 데커드 형사에게서 자신과 똑같은 운명을 본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점을 인식하면서 로이는 ‘인간’으로 존엄하게 죽음을 맞는다.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긴장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내가 세상을 살면서 했던 경험과 내가 맺은 관계의 총합이 나를 만들고, 이것들은 내가 죽으면서 같이 사라진다. 그러니 자만할 것도, 비굴할 것도 없다. 이런 태도가 ‘존엄’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이 깨달음은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plus point

로봇이 반기를 드는 내용은 체코 희곡 ‘R.U.R.’부터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발표한 희곡 ‘로섬의 만능 로봇(R.U.R.·Rossum’s Universal Robots)’은 1921년에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무엇보다 ‘R.U.R.’은 로봇(robot)이란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텍스트로 유명하다. 로봇은 고된 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나왔다.

어원에서 보듯 로봇은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희곡에서 생산 원가가 저렴해져서 인간의 삶은 점점 윤택해지고 인류는 노동 없이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로봇의 반란이 시작된다. 로봇 해방 운동 대원이던 헬레나가 로봇이 인간의 마음을 갖도록 로봇을 개조하고, 로봇은 자신들을 부리고 지배하는 인간을 혐오해서 말살하기 시작한다.

‘블레이드 러너’도 R.U.R.과 유사하다. R.U.R.의 로봇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인데, 레플리컨트도 안드로이드다.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듯 레플리컨트도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

로봇이 인간다워지려는 욕구는 출산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도 이어진다. R.U.R.의 로봇은 원래 자식을 낳지 못했는데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생긴 뒤에 새로운 종의 번식을 시작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핵심 모티브 역시 번식이다. 레플리컨트들은 원래 번식할 수 없었는데, 전편의 주인공 데커드와 레이첼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난다. 레플리컨트들은 기적으로 태어난 레플리컨트 아이를 끝까지 보호한다. 세 번째 블레이드 러너 영화가 나온다면 이 아이가 주인공일 게 확실하다.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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