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1995)
국가 | 일본
러닝타임 | 83분
감독 | 오시이 마모루
줄거리 | 시로우 마사무네(士郎正宗)가 그린 동명의 만화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서기 2029년 ‘뉴포트’라 불리는 아시아의 한 국가가 배경이다. 전 세계는 고속의 정보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인간은 사이보그화된 기계 육체를 이용하게 됐고, 네트워크를 이용한 각종 범죄가 성행한다. 범죄자를 응징하는 특수부대 ‘공안 9과(공각기동대)’의 에이스인 구사나기 모토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 관장, ‘내 맘대로 판타지 유니버스’ 유튜브 진행
전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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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속에 영혼이 깃들다(The Ghost in the Shell).’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공각기동대’의 부제다. 월드 와이드 웹(WWW)은 고사하고 단말을 이용한 컴퓨터 통신조차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1989년. 일본의 한 만화 잡지에서 공각기동대는 시작됐다.

“기업의 네트가 별을 뒤덮고 전자와 빛이 우주를 흘러다니지만,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정도로 정보화돼 있지는 않은 가까운 미래….” 기묘한 해설이 붙은 이 작품은 ‘의체’라고 불리는 기계 몸과 로봇, 인공지능(AI), 가상현실 등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를 무대로 미래 세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는 인간의 뇌가 컴퓨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관이 나온다.

1995년에 나온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이 작품을 전설로 만들었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대범하게 도입한 영상으로 일본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영화 ‘매트릭스’도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았다. 공각기동대는 30년 세월을 넘어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이어 수십 편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등장했고, 원작으로 2권의 만화가 더 나왔다. 외전 소설이나 다른 만화가가 그린 만화는 더 많다. 여기에 공각기동대 탄생 이전을 무대로 한 외전 ‘ARISE’와 할리우드판 실사영화까지 나오면서 공각기동대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공각기동대의 극중 배경은 2029년, 두 번의 전쟁을 거쳐 점차 하나의 세계로 블록화되는 지구. 기술 개발로 사람들은 몸 대부분을 기계로 바꿀 수 있으며, AI는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발전했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것은 오직 증명이 어려운 ‘고스트(영혼)’라는 존재와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의식’뿐이다.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라는 프로그램은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하지는 못한다. 뭔가 놀라운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오직 그것뿐. 그것이 영혼이 있음을 입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가 ‘진정한 생명체’로서 거듭난 것은 공각기동대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인 구사나기 모토코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다른 몸으로 옮겨야 했던 모토코는 네트워크 속에서 인형사(컴퓨터 프로그램)를 만난다. 모토코는 인형사를 생명체라고 여기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융합한다. 그 결과 인형사는 새롭게 변화해 생명체로 거듭난다.

모토코는 만화 2권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전과는 다른 외모와 성씨를 사용하는 모토코는 자신이 일하는 회사에서 또 다른 ‘모토코’와 맞선다. 2권의 주인공은 1권의 모토코가 아니라 인형사와 융합한 그가 네트워크에 남긴 정보에서 탄생한 후손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토코들은 본체의 복사본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선 다른 모토코, 심지어 본체와도 대립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체다. 그들은 처음에는 같은 정보로부터 생겨났지만 네트워크와 현실에서 다른 정보를 접하는 과정에서, 특히 다른 인간과 결합하면서 다시 태어났고, 개성을 얻었다. 만화 원작자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이 수많은 창작자를 만나 다른 작품으로 변화한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토코의 후손들이 그렇듯 시로 마사무네의 공각기동대에 담긴 유전자는 소멸하지 않았다. 창작이 이뤄질수록 작품의 모습은 달라졌지만 그럴수록 공각기동대는 불멸의 전설이 돼 살아남았다.


데이터에 아버지의 ‘영혼’ 부여한 소년

과거 우리는 주변에 한정된 사람들만 만날 수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만 만나다 보니 달라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며 변화했다. 변화된 우리 속에 오래전 사라진 누군가가 살아있게 된 것이다.

지난 2014년 여섯살에 아버지를 여읜 소년의 이야기가 보도됐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즐겼던 레이싱 게임 ‘랠리스포츠 챌린지(RalliSport Challenge)’가 그리워져 게임기를 켰다. 그리고 소년은 발견했다. 그 안에서 아직도 달리고 있는 아버지를. 그것은 단지 베스트 드라이버로 등록된 플레이어의 주행 모습을 재현하는 시스템에 불과했지만, 그날부터 소년은 자신의 눈앞에서 달리는 아버지를 쫓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버지를 추월해 승리를 눈앞에 뒀을 때 소년은 계속 달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넘어선다는 것은 곧 아버지의 고스트가 사라지는 것을 뜻했기에.

그렇게 소년의 아버지는 지금도 게임 세계를 달리고 있지만, 그가 존재하는 것은 단지 게임이란 기술 덕분만은 아니다. 게임 속 그는 단지 데이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데이터라는 껍질에 영혼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평범한 외형의 자동차 속에서 아버지의 영혼을 발견한 소년의 마음이었다.

한자어로 인간(人間)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리킨다고 한다.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는 모토코와 ‘인연’이 있어 만났다고 한다. 최첨단 프로그램의 대사로는 우습지만, 이로써 인형사는 모토코에게 발견돼 생명체가 될 수 있었다. 뛰어난 기술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해줄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기술·네트워크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만일 그 만남에서 서로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와 연결돼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인형사와 모토코가 서로 만나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것처럼.


plus point

네트워크 통해 인간은 진화할 수 있을까?

‘공각기동대’처럼 인간의 정신이 컴퓨터 네트워크 속으로 옮겨지는 SF 작품은 많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에는 공각기동대처럼 전투를 위해 기계화된 몸, 인간처럼 의지를 가진 인공지능(AI), 세계를 지배하는 다국적 기업집단 등이 등장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현실에서 죽은 친구가 사이버공간에서 살아있는 것을 보며 놀란다.

그것도 자신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자신과 친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는 단지 네트워크 속에 기록된 정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현실에선 누릴 수 없었던 행복을 준다.

애니메이션 ‘제가페인’은 질병으로 인해 멸망 위기에 몰린 인류가 육체를 버리고 컴퓨터의 정보로서 살아가게 된 세계를 그린다. 인간도 침략자도 정보에 불과하며, 생체에 기억을 다운로드해 활동하는 적과 달리 인간들은 홀로그램으로만 표현된다. 이곳에서 AI와 인간은 겉으로 구분할 수 없다. 정보에 불과했던 AI도 육체를 얻어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영화 ‘트랜센던스’는 반과학단체의 테러로 목숨을 잃게 된 주인공이 연인의 도움으로 뇌를 스캔해 양자 컴퓨터 속 정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인간의 정신과 양자 컴퓨터의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주인공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나간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인간이란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한다. 주인공의 기억과 지식 등을 업로드한 인공지능 기계는 과연 원래의 ‘그’라고 할 수 있을까.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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