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엔젤(2019)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22분
감독 | 로버트 로드리게스
줄거리 | 2019년 개봉작 ‘알리타: 배틀엔젤’은 1990년 만화가 기시로 유키토가 만든 ‘총몽(銃夢)’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극 중 배경은 26세기 공중 도시 자렘과 지상의 고철도시. 고철도시의 쓰레기더미에서 몸은 없고 머리만 남겨진 채로 발견된 알리타는 다이슨 이도 박사의 도움으로 기계 몸을 장착한다. 인간의 뇌와 기계 몸을 지닌 사이보그 알리타는 과거 자신이 자렘의 전사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자신을 노리는 악당 노바에 대항하는 싸움을 시작한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연세대 경영학과, 씨네21 익스트림무비 편집위원,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인’ ‘SF 영화’ 저자
이용철
영화평론가, 연세대 경영학과, 씨네21 익스트림무비 편집위원, ‘영화인이 말하는 영화인’ ‘SF 영화’ 저자

‘알리타: 배틀 엔젤(이하 ‘알리타’)’의 원작은 일본 작가 기시로 유키토가 1990년부터 5년 동안 연재한 만화 시리즈 ‘총몽(銃夢)’이다. 기시로는 지금도 ‘총몽’을 연재 중인데, 세 편으로 계획된 영화 알리타 1편은 원작 1부의 전반부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수 세기 이후의 지구는 공중 도시 자렘(현재의 예루살렘에서 따온 명칭이 아닌 성서적 개념이다)과 지상 세계로 나뉜 상태다.

자렘인 출신으로 지상에 사는 다이슨 이도 박사는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혀 있던 인간형 사이보그를 발견한다. 그는 사이보그의 파괴된 신체를 부활시키고 알리타라는 이름을 선물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알리타에겐 놀랄 만한 전투력이 잠재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느 날 알리타는 우연히 마주친 휴고에게 마음을 빼앗기는데, 자렘으로 비상하기를 염원하는 휴고에겐 말 못할 비밀이 있다.

자렘과 지상의 고철도시로 나뉜 공간적 배경은 알리타의 한 주제를 형성한다. 자렘은 신화적인 의미 외에 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기능하고, 자렘을 위해 존재하는 고철도시는 불결하고 위험한 인상을 띤다. 위와 아래로 나뉜 두 개의 공간은 위 계급과 아래 계급의 투쟁이 이어져 왔던 인류 문명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물론 알리타에서 더 중요한 공간은 고철도시 즉, 지상 세계다. 기시로가 연재를 시작했던 시점은 폭발했던 일본 경제가 거품이 돼 막 몰락했던 시기와 정확하게 겹친다. 그런 때에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보통 사람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음 직하다. 이런 발상을 제공한 또 다른 동인은 SF물이 전통적으로 탐구해온 묵시록적 세계관이다.

특히 1924년 작품 ‘아엘리타: 화성의 여왕’은 알리타의 이름 및 출신과 연관이 깊다. 구(舊)소련을 활기차고 풍요로운 곳으로, 화성을 노동자의 지옥으로 묘사한 ‘아엘리타: 화성의 여왕’의 이원적 세계관은 알리타에 주된 배경을 부여했다. 아엘리타: 화성의 여왕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영화의 또 다른 주제를 낳게 도왔다. 아엘리타의 비극으로 끝나긴 하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로서의 성격은 알리타의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씨앗과 꽃, 사랑과 정열’의 주제는 세기를 건너 알리타에 도착한다.

알리타의 탁월한 전투력을 알면서도 이도는 그가 아름다운 존재로 화하기를 원한다. 이도가 알리타에게 기대하는 말은, 어쩌면 신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던지는 바람처럼 들린다. 이러한 설정은 알리타가 근래 SF 영화에 등장하는 사이보그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갈 것임을 암시한다. 원작에서 니체의 글을 끌어온 기시로가 알리타를 빌려 초인의 형상을 빚으려 했던 것인지 질문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강철 같은 의지와 힘을 지닌 알리타의 위대함은 기실 미래의 기술력과 별로 상관이 없다. 알리타는 사이보그로서 보기 드물게 뇌와 신체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캐릭터다. 그의 육체는 종종 전투를 벌이는 동안 갈가리 찢겨 나가면서 인간이 느끼는 쾌락과 고통을 동시에 체험한다. 그것이 삶의 의미를 맛보도록 한다면, 뇌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길을 제시하는 한편 인간다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기시로 또한 은유로서의 사이보그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적당했기에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깨달음을 얻으려고 길을 떠난 무사처럼, 일종의 구원을 향해 떠난 알리타는 각기 한계를 지닌 인간들을 접하게 된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그는 인물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하나씩 얻는다. 여기서 구원은 내세의 개념이라기보다 인간다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알리타는 끊임없이 인간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사이보그의 인간 선언, 그게 알리타다. 그런데 그를 보고 그의 선언을 듣는 것은 실제 인간 즉, 우리다. 알리타는 인간이 된 기계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인 것이다. 알리타는 현실에 대한 인식 아래 굳은 의지로 계속 싸우며 살아가기를 요구한다. 사이보그를 다룬 여타의 SF 영화들이 건조하고 차가운 반면, 알리타는 내내 뿜어져 나오는 피의 양만큼이나 격렬하고 뜨겁다. 그것이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를 구성하는데, 역으로 하드코어한 SF 영화 팬에게는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벌써 기대되는 알리타 속편

알리타가 투쟁의 과정에서 벌이는 싸움이나, 극 중 시각적으로 가장 번뜩이는 소재인 모터볼(노먼 쥬이슨의 고전 SF 영화 ‘롤러볼’의 미래형) 등에 나오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장면은 연출을 맡은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전매특허다. 그런데 알리타에서 더 중요한 창작자는 로드리게스를 하나의 도구로 삼은 제작자 제임스 캐머런이다. 그가 총몽에 그렇게 오랫동안 매달린 이유는 바로 주제 때문이다. ‘마침내 인간이 되는 사이보그 이야기’는 캐머런의 대표작 ‘터미네이터’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분(처지)이 다르기에 맺어질 수 없었던 두 남녀가 이윽고 불멸의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설정은 ‘타이타닉’에 이어 알리타에서 반복된다. 사랑의 역사가 어떻게 완성될지는 알리타의 속편에 등장할 두 번째 사랑에서 확인해볼 부분이다. 알리타를 처음 본 날, 나는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보통 시각 기술의 측면에서 높이 평가받는 캐머런이란 사람이 참 순진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원작을 다 읽으면서 남다른 감동을 받았다고 이제 고백해야겠다. 알리타의 속편을 갈망하게 된 사연은 그러하다.


plus point

영화감독 닐 블롬캠프는 ‘총몽’ 팬?

영화 ‘디스트릭트 9’ 속 지상 위에 떠있는 외계 우주선.
영화 ‘디스트릭트 9’ 속 지상 위에 떠있는 외계 우주선.

과장해서 말하면 닐 블롬캠프의 SF 3부작 - ‘디스트릭트 9’ ‘엘리시움’ ‘채피’는 캐머런에 앞서 ‘총몽’을 비공식으로 영화화한 경우다. 세 영화의 내용, 인물, 주제는 ‘알리타’와 흡사하다. 우선 ‘디스트릭트 9’과 ‘엘리시움’에서 지상 위로 떠 있는 외계 우주선과 금단의 세계는 알리타의 공간적 배경과 거의 일치한다. 전자가 호기심의 대상으로서의 공간이라면 후자는 이상향으로 기능한다. 그리고 세 영화의 인물들이 한계를 극복하고 도달하는 여정은 알리타가 그토록 희구하던 목적지를 공유한다. 세 번째 작품의 주인공이자 주제를 완성하는 로봇 채피는 알리타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내 주장이 의심스럽다면, 첫 번째 작품인 디스트릭트 9의 마지막 장면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은 쓰레기로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빚는다. 그 장면은 총몽의 마지막 컷, 그러니까 알리타의 속편 마지막에 보여줄 장면에 다름 아니다. 블롬캠프는 일찌감치 총몽 팬이라고 공표했던 거다.

이용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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