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우 과학과사람들 대표,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원종우
과학과사람들 대표,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

상상력의 힘은 강하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과 문명의 이기는 모두 누군가의 머릿속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이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기술이 인류 문명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상상이 가장 진지하고 생생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SF 작품들이다.

19세기 말 쥘 베른을 시작으로 SF 작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제로 한 미래의 모습을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고, 이 작품들은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다양한 전망은 물론 구체적인 기술에 대한 영감도 주었다. 특히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간 방영되고 있는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트렉’은 휴대전화, 태블릿 PC, 3D 프린터 등의 개발은 물론 초광속 엔진 이론까지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SF 작품들 중에는 구체적인 연도까지 제시하며 그즈음에 있음직한 세계를 실감 나게 그린 것들도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년 배경)’ ‘백 투 더 퓨처(2015년 배경)’ ‘공각기동대(2029년 배경)’ 같은 작품이 대표적인데, 바로 올해 2019년도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SF 영화 사상 손꼽히는 걸작인 ‘블레이드 러너’의 무대가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스모그로 뒤덮인 하늘, 그 속을 누비고 다니는 비행 자동차 ‘스피너’, 빌딩 벽면에 거대하게 클로즈업된 게이샤의 얼굴. 첨단과학의 고급스러움과 위험의 그늘이 공존하는, 목적을 잃어버린 듯한 도시. 198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그린 올해 미국 로스엔젤레스(LA)의 모습이다. 30여 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니지만 작품 속의 세상은 실제와 상당히 다르다. 현재 LA의 모습은 영화 속보다는 오히려 1982년 당시에 더 가까울 정도다. 물론 픽션인 SF가 미래를 정확히 예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대부분의 SF가 특정한 점에서 비슷한 오류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그것은 20세기에 미래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이 전반적으로 잘못돼 있었다는 점과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이 단순한 기대가 아닌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이다.

비행 자동차는 수많은 SF에서 언급된, 틀린 예측의 대표적인 예다. 블레이드 러너가 나온 지 3년 후인 1985년에 개봉한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도 보듯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은 지금쯤 되면 하늘을 나는 소형 차량이 당연한 일상이 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관련 기술은 8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이고 러시아워의 도로는 여전히 바퀴 달린 차들로 메워져 있다. 물론 블레이드 러너의 햇빛조차 없는 암울한 세상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누구나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이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 외에도 21세기라면 단골로 등장하던 소위 ‘달나라 수학여행’, 즉 대중에게 일반화된 우주여행은 아직 실현 가능성이 없다.

그 대신 펼쳐진 것은 컴퓨터 회로와 네트워크 세상, 바로 디지털 세계다. 블레이드 러너 속 빌딩에 투사된 게이샤의 얼굴은 큼지막한 픽셀들로 조각조각 갈라져 있지만, 2019년 오늘 광화문의 거대한 광고 영상은 현실보다 더 밝고 선명하다. 영화 속 해리슨 포드는 화상공중전화로 대화를 나누지만 현실의 우리는 그보다 몇 단계 앞선 화상휴대전화를 사용한다. 인터넷망을 통해 누구나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바닥 안의 휴대기기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 속 LA의 모습(아래 사진)은 지금과도 사뭇 다르다. 높은 빌딩 숲은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된 2019년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워에 차들이 붐빈다. 하늘을 나는 스피너는 없다. 사진 유튜브 캡처
블레이드 러너 속 LA의 모습(아래 사진)은 지금과도 사뭇 다르다. 높은 빌딩 숲은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된 2019년과 비슷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워에 차들이 붐빈다. 하늘을 나는 스피너는 없다. 사진 유튜브 캡처

스타트렉을 비롯한 SF 작품들이 다양한 기술 발전에 큰 영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과 같은 범지구적 네트워크 기반의 사회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일까? 앞마당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 차량을 만드는 것이 디지털 데이터 네트워크 구축보다 어려운가. 블레이드 러너의 인조인간 ‘레플리컨트’나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뇌와 일체화한 컴퓨터는 어째서 나타날 기미조차 없을까.

그것은 바로 자연법칙의 엄정함과 ‘물성’의 한계 때문이다. ‘어떻게든 되겠지’에 가깝던 20세기의 낙관론과 달리 중력을 극복하고 비행체가 도심의 빌딩 사이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중력의 개념은 아직도 방정식 속에만 존재할 뿐이고 실제 비행의 원리는 프로펠러와 제트엔진 외에 새로 등장한 것이 없다. 이런 기술 수준에서 비행 자동차를 함부로 띄운다면 도심의 하늘과 땅은 위험천만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반면 달로 가는 수학여행은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럼에도 실현되지 않는 것은 비용을 줄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로켓을 지구 중력권을 벗어난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는 거대한 에너지가 요구되기에 화석연료와 액체 산소 등으로 이뤄진 수백 톤의 연료가 필요하다. 이 연료들은 채굴하거나 정제하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 막대한 양의 ‘물질’이고 따라서 그 가격은 결코 어느 한계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은 이런 물질적 제약에서 훨씬 자유롭다. 게이샤의 피부를 매끄럽게 할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제작하는 것은 작은 것을 다루는 기술의 문제이고 엄청난 양의 에너지 운용과는 무관하다. 스마트폰은 기적에 가까운 기술의 개가지만, 비행 차량과는 달리 새로운 물리법칙을 찾아내는 일이 선행돼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디지털은 경제성도 뛰어나다. 국제적 인터넷망의 구축에는 위성과 전선, 서버 등 엄청난 양의 물질이 사용됐고 여기에 소요된 비용을 합치면 수천 명의 학생을 달로 수학여행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회 엄청난 연료를 소모해야 하는 우주여행과는 달리, 인터넷 인프라는 일단 깔아두면 혜택받은 수천 명이 아닌 수천만 명의 소비자를 상대하여 이론상 무한히 지속되는 시장을 구축한다. 마찬가지로 레플리컨트처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극히 인간적인 인공생명을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가 살아있는지 아닌지에 아무 관심도 없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이 훨씬 쉽다. 디지털로 생성된 지능을 기계에 실은 후 그것을 우리 앞에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게만 하면 그만이고 이것이 현재 인공지능(AI) 연구의 실체다.

2019년 현재 과학기술의 이런 방향성은 미래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인간은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예견한 것처럼 인간은 기술을 통해 신이 되려는 중이다. 다만 그 노력과 성취의 대부분은 전기회로로 된 디지털 세계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물리법칙이나 물성 같은 한계 때문에 현실을 정복할 수 없다면 현실을 우회하면 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거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2039년, 혹은 2069년의 아침 우리는 아마 꿈속에서 깨어나고 살고 잠들게 될 것이다. 세월이 더 지난 언젠가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될지도 모른다.

원종우 과학과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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