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페퍼’가 1월 1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에서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소프트뱅크의 휴머노이드 ‘페퍼’가 1월 15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시계 박람회에서 방문객을 안내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2015년 2월 27일 감정 인식 휴머노이드(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형태의 로봇) ‘페퍼(pepper)’를 시장에 선보였다. 페퍼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바탕으로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는 최초의 로봇이다. 페퍼의 창작 모티브(동기)는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1928~89)의 걸작 ‘철완 아톰’이었다. 철완 아톰은 1952년 만화로 발표됐으며 1963년 TV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다. 손 사장은 왜 페퍼를 만들었냐는 질문을 받고 “어릴 적 철완 아톰을 즐겨봤다”면서 “주인공인 휴머노이드 아톰은 100만 마력으로 하늘을 날고 악당과 싸우지만, 정작 울 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아톰은 마음이 없어 행복과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는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다. 손 사장이 왜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는 로봇을 개발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52년생 아톰이 2015년 페퍼로 63년 만에 단점을 보완해 재탄생한 셈이다.

이처럼 고전 SF 영화 또는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현시대 기업가들에 의해 현실화하고 있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이 더 이상 상상이나 미래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SF의 상상력이 기업가들이 미래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하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주는 것이다.

손 사장은 2010년 ‘소프트뱅크의 새로운 30년 비전’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AI에 대한 꿈을 제시했다. 손 사장의 목표는 ‘인간성을 지닌 로봇 개발’이다. 그는 로봇과 인간이 교감하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페퍼의 실제적인 역할은 전시회장에서 손님을 안내하거나 노인을 간병하는 등 편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같은 상상력이 공상에만 머물지 않고 사업성이 있다는 점이다. 페퍼에 대한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다. 2015년 2월 처음으로 300대 한정 판매를 시작했는데, 약 1분 만에 매진됐다. 2016년에 1만 대가 판매됐고 한국과 대만, 중동에도 진출했다. 손 사장은 페퍼가 가정에서 흔히 활용될 만큼 널리 보급되기를 기대한다.

SF적 상상력이 가진 사업성을 더 잘 보여주는 건 로봇청소기 ‘룸바’ 개발사로 유명한 ‘아이로봇(iRobot)’의 최고경영자(CEO) 콜린 앵글의 사례다. 2002년 출시된 룸바는 출시 후 매년 60만 대씩 팔린 히트작으로 사실상 로봇청소기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앵글이 로봇 과학자이자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다름 아닌 1960년대 미국에서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우주 가족 젯슨(The Jetsons)’이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가사 도우미 로봇 ‘로지(Rosie)’가 등장해 요리도 해주고 청소도 해준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은 로지 같은, 내 곁에서 집안일을 거들며 나를 편하게 해주는 로봇을 원한다”며 “우리는 ‘잘 팔리는 로봇’을 만든다”라고 했다. 그의 이 같은 경영 방침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당시 원전 내부의 ‘방사선 지옥’을 청소해 유명해진 로봇 ‘팩봇(PackBot)’과 ‘워리어(Warrior)’ 개발로 연결됐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노모(老母)를 돌보는 로봇이다. 그는 이런 로봇을 ‘착한 로봇(good robot)’이라고 부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 블룸버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사진 블룸버그

SF를 유독 좋아하고 본인이 SF 영화(‘아이언맨’)의 주인공 모델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SF에서 받은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대표적인 기업가다. 2016년 6월 한 콘퍼런스에서 그는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AI가 사람의 판단을 결정하게 돼, 인간은 AI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애완동물’이 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는 이 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인간이 뇌 신경망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2017년 사재를 털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바이오 스타트업 ‘뉴럴링크’를 설립했다. 사람의 뇌에 ‘뉴럴레이스’라는 칩을 이식해 컴퓨터와 연결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미세한 전극을 이식함으로써 물리적 접촉 없이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것에 한발 나아가 사람의 생각을 파일처럼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마치 일본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에 등장하는 ‘전뇌화(電腦化)’한 인간을 형상화한 듯하다. 전뇌화란 전자 두뇌화라는 뜻으로 인간 뇌를 기계화한다는 의미다. 머스크는 “AI가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면 인간은 판단에 대한 결정권을 AI에 뺏기게 된다”면서 “뉴럴레이스를 뇌에 삽입해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기업 활동으로 SF 창작물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F 작가들을 초대해서 개발 중인 소프트웨어 등을 견학시키며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SF 환경은 아직 열악하다. 국내에서 상상력은 어리석거나 터무니없는 망상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만화가 이정문 화백이 1965년 그린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그림이 몇 년 전 화제가 됐다. 이 그림에는 화상 통화가 가능한 스마트폰부터 태양열 주택, 전기자동차와 원격 의료 서비스까지 수십 년 후 펼쳐질 미래 모습이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돼 있다. 그러나 만화가적 상상력으로 그린 미래상은 당시에는 ‘황당하다’는 비아냥을 샀다. 

전문가들은 상상력 부족은 혁신의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손정의 사장은 “과연 300년 전 사람들은 휴대전화, 인터넷, 비행기는 물론이고 인간의 평균수명이 70세로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라며 “미래에 생겨날 수밖에 없는 AI 로봇에 대비해 소프트뱅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항상 한다”고 했다.


plus point

논쟁 일으키는 트랜스휴머니즘

SF 작품에서 흔히 등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신체에 국한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즉 기계가 되고 싶은 사람을 둘러싼 지적, 문화적 운동을 뜻한다. ‘초월’ ‘다른 장소·상태로 변화, 이전’을 뜻하는 접두사 ‘trans’에 인간 본위의 사상이라는 뜻의 ‘humanism’을 더한 말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장애·고통·질병·노화·죽음과 같은 인간의 조건을 바람직하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생명과학과 신생 기술이 그런 조건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 수명 연장, 의체, 칩 이식, 뇌 스캔은 물론 ‘공각기동대’에 나온 기억 조작 관련 연구도 이미 이뤄지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은 1957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의 저서 ‘계시 없는 종교’에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다. 이후 1980년대 미국의 미래학자들에 의해 현재의 의미로 쓰이게 됐다. 트랜스휴머니즘 사상가들은 인류가 더 확장된 능력을 갖춘 존재로 자신들을 변형시킬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이렇게 변형된 인간을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류를 인위적으로 변형시킨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전망은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논평했다. 이에 대해 미국 작가 로널드 베일리는 “인류의 대담하고 용감하고 기발한 이상적 열망이 담긴 운동”이라고 반박했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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