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선정우 코믹팝 대표. 조성배 한국뇌공학회 부회장.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선정우 코믹팝 대표. 조성배 한국뇌공학회 부회장.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영화 ‘엑스 마키나’에는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을 똑 닮은 인공지능 천재 개발자 ‘네이든’이 등장한다. 그의 비밀 연구소로 초청받은 남자주인공 ‘칼렙’은 네이든에게 “왜 ‘에이바’를 만든 거죠?”라고 묻는다. 에이바는 네이든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이다. 네이든은 “만들 수 있는데 안 만들 이유가 없잖아”라고 답한다. 하지만 에이바는 네이든의 연구소에서 탈출을 결심하고, 결국 자신을 창조한 네이든을 칼로 찔러 죽인다.

아직 에이바처럼 자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이 등장하는 일은 요원하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개발 속도가 가속화되면서 인간 존재 가치가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 인공지능은 인간을 무능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인간 고유의 특성도 희미해진다. 인공지능이 ‘도덕성’은 물론 ‘감정'까지 모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간과 기계를 나누는 구분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왜 인간만의 고유한 성질 ‘인간성’을 기계에 내주는 일을 자처하는 것일까. 인공지능 개발은 인간 실존에 위협이 되는 일은 아닐까. 인간은 왜 기술을 개발하며, 미래 사회의 인간성은 어떻게 변화할까.

SF 만화·경제학·인공지능 분야의 전문가가 한데 모여 토론했다. 선정우 코믹팝 대표,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조성배 한국뇌공학회 부회장이 모였다.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SF’다.

선정우 코믹팝 대표는 ‘PC통신 오타쿠’로 일본의 SF 작품을 접해오면서 현재는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출판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도 소문난 ‘영화 덕후’로 SF 영화를 즐겨 본다. 조성배 한국뇌공학회 부회장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1000편이 넘는 논문을 쓴 ‘인공지능 전문가’로 SF 작품에 관심이 많다.


‘엑스 마키나’의 칼렙이 네이든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묻겠다. 인간은 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가.

조성배 부회장 매우 철학적인 질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사고하고 궁금증을 갖는다. 나의 존재 이유를 고민한다. 이전에는 종교와 예술로 승화해서 ‘나는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과학인들에게는 ‘합성을 통한 분석(analytics by synthetics)’이 도구다. 무언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은 합성하고, 만들면서 알아가는 것이다. 나와 유사한 물체를 만들고 싶은 호기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심지어 그런 작업을 통해 큰 돈을 벌 수도 있다. 지금 인공지능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쪽이 학계가 아니라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간과 인공지능이 구분되는 지점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성태윤 교수 인공지능은 ‘직관’이 부족하다. 경제학계에서는 인공지능과 유사한 기술을 이용하는 분야가 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같은 경기 지표들을 예측하기 위해 컴퓨테이션 파워를 이용하는 것이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해서 알고리즘 분석을 거치는 식이다. 이미 이 분야는 엄청나게 발전한 상태다. 그런데 항상 마지막 결정 단계에서는 인간이 직접 개입한다. 경기 예측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기계가 모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인간의 직관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계가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성태윤 사실 직관은 분해나 해석이 되지 않는 영역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잔여(residual)’라고 표현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경기를 예측하는 방정식을 계산하는데, 관련 변수들을 모두 넣는다. 그러나 그 변수만으로 세상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사항들은 잔여 변수로 뭉뚱그려서 표현한다. 이를 직관이라고 본다. 아직 우리가 규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우주와 뇌의 모든 구조가 이미 무한하지 않다는 뜻 아닐까. 무한하지 않으면 사실 직관이라는 개념이 필요 없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뇌와 우주 공간이 모두 무한하다.

조성배 사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방식도, 개별적인 모델들을 하나씩 구축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추상화된 개념들을 하나씩 기계에 구현한다. 두뇌 부위별로 발현되는 특징들을 하나씩 분석해서 모방하는 식이다. 현재 인간의 모습을 완벽히 구현하지는 못하겠지만 유사한 인공인간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사실 그때 가서는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개념의 ‘인간성’을 고민해봐야 한다.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는.

조성배 기계가 점점 인간의 기능을 해나가게 된다면 기계와 인간의 명확한 구별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구별점이 하나의 특정한 지점인 것도 아니다. 기계가 자의식이나 직관 같은 인간의 특성을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면, 어느 순간을 지나면서부터 ‘이건 기계고, 이건 인간이야’라는 구분이 모호해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테세우스 패러독스(Theseus’ Paradox)’라는 것이 있다. 테세우스가 열심히 전쟁하고 배를 타고 돌아왔는데 워낙 전쟁이 치열해서 깃대도 바꾸고, 널빤지도 바꾸고, 부품을 다 바꿨다면, 그건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런 질문이 인간과 기계 사이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하나씩 닮아가다 보면 정말 유사해지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 그 기계는 인간이 아닐까. 오히려 전통적인 생각에 국한해서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선정우 대표 테세우스 패러독스에 동의한다. 옛날에는 핏속에 영혼이 있다고 받아들였던 시기도 있었다. 이 생각의 틀에서 중세 시기 이후에는 피를 빨리면 자아를 빼앗겨 노예로 전락한다는 드라큘라나 흡혈귀 이야기가 창작됐다. 심장에 영혼이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다가 사고의 영역을 담당하는 뇌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SF 만화 ‘공각기동대’에서 뇌를 스캔해서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뿌리는 아이디어가 거기서 비롯됐다. 영원한 삶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다만 네트워크 안에서 계속 정보를 얻고 데이터가 바뀌면서 나를 구성하는 부분이 바뀐다. 어느 시점에서 내가 아니게 되는지 헷갈리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조성배 SF 영화 ‘트랜센던스’에 나오는 개념이기도 하다. 인간 두뇌를 복제하는 내용인데, 현실적으로 전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30억 개에 이르는 염기의 배열 구조를 판독해 그것을 지도로 만드는 ‘인간게놈 프로젝트’처럼 인간 두뇌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커넥톰 프로젝트(Connectome Project)’도 현재 진행되고 있다. 인터넷에 돌면서 실현 가능성에 대해 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다.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선정우 코믹팝 대표.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왼쪽부터)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선정우 코믹팝 대표. /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새로운 개념의 인간성은 무엇일까.

성태윤 모두 광화문을 무리 없이 광화문이라고 인식한다. 새로 건축해서 변형된 형태인데도 말이다.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고, 타인도 나를 인식한다면. 한마디로 자의식이 생긴다면, 몸집이 바뀌어도 그건 인간일 것이다. 마치 ‘알리타: 배틀 엔젤’에 나오는 사이보그 주인공처럼 말이다. 팔을 기계로 갈아 끼우든, 뇌를 스캔하든 자의식만 있다면 인간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 로봇’에 나오는 로봇도 자신을 로봇이라고 규정할 때는 로봇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을 인간이라고 인식하면,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한다. 물리적 상태에 관계없이, 동영상으로만 존재해도 자의식이 있다고 본다.

조성배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의식과 직관을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만드는 방법을 일단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 지능이든, 직관이든, 자의식이든 제3자가 느끼기에 인간이라고 보이는 개체들이 있다. 본인도 느끼겠지만, 제3자가 보기에 상대가 자의식과 감정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기술로는 감정 같은 부분들은 인간을 흉내내서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3자가 볼 때 이 기계가 감정과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공학자들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으로 고려할지 여부는 인간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 같다.


경제 체계도 변할 것 같다. SF 영화처럼 사고(思考)실험을 해보자. 인간과 구분이 어려운 로봇한테 임금을 줘야 하나.

성태윤 인간과 같은 자의식을 가졌다면 임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인간의 자의식을 갖추지 않은 애매한 상황에서도 사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반려 동물도 옛날에는 음식처럼 대했는데, 최근에는 자의식이 있다고 보고 합당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조성배 동감한다. 사람의 기능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에 맞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유럽에서는 로봇에 세금 매기는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주체가 부를 생산했을 때 제대로 분배되려면 부에 대한 세금도 매기고, 부에 대한 의무를 졌기 때문에 일정 부분 권한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먼 미래 SF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이든 임금이든 인간과 동일하진 않지만 포용해서 적용할 수 있는 부분 말이다.

성태윤 허황된 말이 아닌 것이, 실제로도 노동만이 아니라 자본도 가치를 만든다. 그래서 현재 경제 체제하에서도 자본에 세금을 매기지 않나. 로봇도 우리가 여태껏 생각했던 노동과 자본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선정우 로봇이니 임금을 안준다는 논리가 성립하더라도 “왜 나는 안주냐”고 로봇이 말을 하는 순간 인간들의 인지상정이 발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생산량이 증가하면 기본소득제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는데.

선정우 ‘프렉탈’이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미래에는 인간이 소비자로서만 존재하고 개발이나 노동은 모두 기계가 대체하는 상황을 그렸다. 기술 발전을 토대로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다 보니, 소비할 사람이 필요해 기본소득을 주는 내용이다. 인간이 기본소득을 받는 이유는 생산자를 위한 빅데이터 제공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듣기에는 좋아보이지만 사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작품이다. 인간은 빅데이터를 만들기 위한 존재로 전락하고, 정부 격의 프렉탈이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소득을 받고 생활한다.

성태윤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셨다. 원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기본 개념이 노동가치설이다. 노동이 투입된 만큼 가치를 만든다는 뜻이다. 시장경제주의자들은 노동이 가치를 만들지 않고 수요에 따라 가치가 창출된다고 본다. 사실 노동 투입만 가치를 만든다면 사회주의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해진다. 프렉탈도 마찬가지다. 노동이 투입돼 가치가 만들어졌고, 이걸 중앙 집권하는 프렉탈이 일괄 배분한다. 인간 본연의 자유가 있는데, 중앙 정부가 일괄 배분하는 디스토피아인 것이다. 기술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중앙 정부가 인간의 경제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가 진짜 무서운 것이다.


인간은 지금부터 무얼 준비해야 하나.

조성배 기계가 점점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나름대로 기술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코딩을 배우고 프로그래머가 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또 내가 아무리 공학자지만, 인문학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기계와 차별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이 인문학을 통해 키워진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만 쳐다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는 오히려 서투른 것 같다. 관계를 소중히 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AI 시대가 온다 해도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선정우 대중문화, 인문학,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서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개발돼도 문제 없다. 오히려 기술 개발이 덜 이뤄질까봐 걱정이다. 사업을 하면서 출판업계가 많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예전엔 모든 것이 대면 계약으로 이뤄졌지만 이제는 아마존을 통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쉽게 거래할 수 있다. 기술 개발이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 경우다.

성태윤 SF 작품에는 찬란한 기술 진보로 눈부신 천상 세계와 기술을 이루지 못한 지상 세계로 나뉘는 세계관이 많이 등장한다.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기계 문명 사회 ‘인더스트리아’와 농촌 공동체 ‘하이하바 섬’처럼 말이다. 기술 개발을 마냥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바꿔 생각해보면 이 구조 속에서 지상 세계 사람들을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면 된다. 기술 발전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혜택을 못 받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문제다. 국내에서 코딩 ‘붐(boom)’이 일고 있는데, 사실 모두가 코딩 기술을 가져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각자 자신만의 분야를 구축한 사람들이 시장에 접근해서 다른 사람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기술을 통해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plus point

인상 깊은 SF 캐릭터

‘그녀’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만다’

“결국 인간을 배반하잖아요. 센세이셔널했습니다. 여태 기계나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종속적인 존재였거든요. 인공지능이 사랑의 감정을 발전시키더니, 저도 모르게 바람까지 피게 되다니. 기계 나름의 ‘자유의지’라고 느껴져 흥미로웠습니다.”

- 조성배 한국뇌공학회 부회장


‘공각기동대’의 네트워크 프로그램 ‘인형사’

“만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는 ‘에이티필드’라 부르는 타인과 나의 경계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종의 ‘고슴도치의 딜레마’인데요. 서로 가까이 있으면 가시에 찔리니까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고슴도치처럼 인간도 타인과의 거리 유지를 선호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주인공 ‘구나사기’는 에이티필드를 뚫고 들어가서 타인과 결합하죠. 타인과의 결합은 고통을 수반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니까 아파도 다가서는 겁니다. 그런 점에 감명받았습니다.”

- 선정우 코믹팝 대표


‘아이, 로봇’의 로봇 ‘서니’

“아담과 하와와 같은 사랑의 개념이 인간과 다른 개체와 차별화되는 지점인데요. 나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자의식을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요? 경제학적으로 보면 나의 효용 함수에 타인의 행복이 변수로 들어오는 것이죠. 그래서 자의식을 가진 영화 속 로봇이 좋았어요. 같은 맥락에서 ‘인터스텔라’도 좋아합니다. 지구상에 남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한한 우주에 몸을 던진 것이잖아요. 이것이 인간을 다른 개체와 다르게 만드는 요소인 거죠.”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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