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내에 건립된 수소충전소. 수소를 충전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사진 이경섭
베를린 시내에 건립된 수소충전소. 수소를 충전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사진 이경섭

지난해 8월 세계 최초의 수소열차가 독일에서 상업운행을 시작했다. 코라디아 아이린트(Coradia iLint)라는 이름의 이 열차는 천장에 수소 탱크와 연료전지가 있다. 연료전지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섞어서 전기 에너지를 만들고, 이렇게 발생한 전기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저장돼 동력으로 사용된다. 이 열차는 하루 약 1000㎞까지 주행이 가능하다. 독일은 2040년까지 디젤열차를 전량 폐기하겠다는 방침이다.

최근 많은 국가가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고 대체 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는데, 독일도 이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독일은 전체 에너지 중 30%를 대체 에너지로 얻고 있으며, 수소 분야에도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경쟁에서 우위 차지하겠다” 목표

수소경제(Wasserstoffwirtschaft)라는 단어는 10여 년 전 유럽연합(EU)과 독일 정부가 처음 사용했다. 독일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장기 정책으로 NIP(National Innovation Programme Hydrogen and Fuel Cell Technology·수소 및 연료전지 기술 국가 혁신 프로그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2006년부터 10년간 산업계와 학계, 연구소 등과 협력해 1차 NIP 프로젝트인 기초 타당성 연구를 마쳤으며, 2016년부터 2025년까지 양산을 위한 기술 개발과 인프라 건설 등의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NIP를 구체화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2008년 수소에너지 컨트롤타워인 국립수소연료전지기구(NOW)를 설립했다. 수소연료전지 기술 개발 경쟁에서 독일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원하기 위해서다. NOW에는 독일연방 환경부·교통부·경제부처를 비롯한 정부 연구기관, 산업체 등이 망라돼 있다. 14억유로(약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기반으로 각종 수소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NOW의 지원을 바탕으로 독일의 수소차 관련 인프라가 늘고 있다. 2018년 10월 기준 독일에는 60대의 수소버스를 비롯해 400대의 수소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특히 NOW는 다임러·BMW·폴크스바겐·현대자동차, 가스 생산 업체인 린데(Linde), 정유 회사인 토털·쉘 등과 ‘H2 모빌리티’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수소 인프라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2018년 말 독일 전역에 총 57곳이었던 수소충전소를 2019년 말까지 100곳으로 늘리고, 2023년까지 수소차 보급이 늘어나는 대로 400여 곳에 충전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아직 베를린 시내에서 체감하는 수소충전소는 미흡하기 그지없다. 인구 350만 명의 베를린에 수소충전소가 모두 4곳 있는데, 이 중 2곳은 고장 나 점검 중이다.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 있는 토털 주유소에 설치된 수소충전소도 3월 말까지 점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토털 주유소에서 일하는 직원은 “수소차가 충전하는 것을 한 번 보는 것은 돼지꿈을 꾸는 것과 같은 확률일 것”이라며 웃었다.

독일 자동차 업체들은 수소차 시장 확대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연료전지와 수소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최근 수소연료전지와 배터리를 탑재한 하이브리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LC F-CELL’을 선보이고, 올해부터 렌털 프로그램을 통해 보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벤츠가 연료전지 연구·개발을 시작한 것은 1983년 포괄적인 전기차 개념인 네카(NECAR·New Electric Car) 프로젝트부터다. 지금은 CASE(커넥티드·자율주행·공유·전동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다.

폴크스바겐 역시 2020년부터 다양한 수소차를 론칭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아우디는 현대차와 협업을 통해 2020년 수소연료전지 개발을 목표로 잡았다. 2021년에는 첫 수소차인 H-트론(tron)을 내놓을 예정이다.


경고 목소리도 높아

BMW는 일본 도요타와 협업해 2021년 수소차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BMW는 수소연료전지 자체를 개발한 적이 없지만 가솔린 내연기관에서 직접 수소를 연소시키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BMW가 2007년 개발한 ‘하이드로젠 7’이 그것이다. 그러나 상용화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특히 독일 수소연료전지 업체들의 수소차 시장 진입 전략의 특징은 군용 발전기와 군용 차량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실제 독일 바이에른의 연료전지 스타트업인 SFC(Smart Fuel Cell)는 캠핑용과 가정용 연료전지를 주로 공급하는데, 최근 군용 납품이 늘어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하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연료전지 모델 개발에만 몰두하다간 수소차 시장이 자칫 제조사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경고 목소리가 높다. 독일의 많은 에너지 전문가는 “수소차는 지금부터 개발해도 10~20년 뒤에나 빛을 볼까 말까 한 ‘미래의 음악’”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plus point

[Interview] 지빌레 리이페(Sybille Riepe) H2 모빌리티 매니저
“연료전지 생산 단가 크게 낮춰져…틈새 시장 확실히 구축할 것”

H2 모빌리티는 다임러·BMW·폴크스바겐·현대자동차, 가스 생산 업체인 린데(Linde), 정유 회사인 토털·쉘 등이 독일 정부와 함께 수소충전소 인프라 건설을 위해 구성한 컨소시엄이다. 수소경제의 성공 여부가 인프라 건설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 컨소시엄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H2 모빌리티의 지빌레 리이페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를 인터뷰했다.


H2 모빌리티의 주요 활동은.
“H2 모빌리티는 수소 공급을 위한 충전시설을 건설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올해 말까지 베를린,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뮌헨, 슈투트가르트, 뉘른베르크, 라인 루르 등 독일의 7대 도시와 장거리 도로, 아우토반에 충전소 100곳을 건설·운영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다. 수소차 판매량이 증가하면 최대 400곳의 수소충전소를 독일 전역에 설치할 예정이다.”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수소를 어떻게 보는가.
“수소는 대형 자동차에 더 잘 맞는 대체 에너지 연료다. 수소의 효율은 350bar에서 700bar 정도의 압력 탱크를 사용한다면 디젤(경유)보다 장거리 주행에 효율적이다. 스위스에서는 수소트럭으로 400㎞ 이상을 문제없이 주행하고 있다. 보쉬와 중형 상용차용 수소연료전지를 개발하는 미국 스타트업 니콜라(NIKOLA)는 2020년까지 1000대 이상의 트럭을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최근엔 경량 수송 차량 분야와 소형 스쿠터 등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수소연료전지 기술은 어디까지 왔다고 보나.
“현재 현대차를 비롯해 도요타, 혼다, 벤츠 등이 다양한 수소차를 선보이고 있다. 다른 자동차 제조사도 몇 년 이내에 수소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연료전지는 더욱 많은 업체들이 협력해 개발하는 추세다. 이러한 협력의 결과로 연료전지 제작에 필요한 값비싼 백금의 양을 줄여 생산 단가를 크게 낮췄고, 효율은 높였다. 뿐만 아니라 수소충전소 건설 기술이 발전하는 반면 비용은 크게 낮아지고 있다. 충전 기술도 발전돼 수소충전소 안전성 문제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현재 중국, 한국, 일본의 수소차 투자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독일 내의 여러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일반 운전자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의 주요 의사 결정자들이 수소연료전지를 차세대 자동차 에너지로 보고 있다. 조만간 수소는 자동차 연료에서 틈새 시장을 확실히 구축할 것이며, 어떠한 형태로든 화석연료의 중요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경섭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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