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 여객기의 비행 모습. 사진 블룸버그
아메리칸 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 여객기의 비행 모습. 사진 블룸버그

“비행기 조종이 너무 복잡해지고 있다. 조종사가 아니라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 과학자가 필요할 지경이다. (중략) 복잡함은 위험을 유발한다. 난 아인슈타인이 내 비행기를 모는 걸 원치 않는다.”

불과 5개월 새 두 차례의 탑승자 전원 사망 추락 사고를 일으킨 미국 보잉의 ‘737 맥스8’ 여객기에 대한 공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3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남긴 말이다.

3월 10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737 맥스8이 추락해 탑승자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인도네시아 라이언에어 소속 동종 여객기가 이륙 13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목숨을 잃었다.

두 건의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조종특성증강시스템(MCAS· Maneuvering Characteristics Augmentation System)’ 오작동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MCAS는 항공기의 기수가 급격히 상승해 실속(失速·stall)할 우려가 있을 때 자동으로 기수를 낮춰 사고를 방지하는 장치다. 항공기는 ‘양력(揚力)’이라 불리는 비행기를 띄우는 힘과 추력(推力)이라 불리는 비행기를 앞으로 밀어주는 힘으로 비행한다. 그런데 여러가지 원인으로 양력을 잃어 비행 중 고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이를 실속이라 한다.

보잉은 737 맥스(동체 길이에 따라 7·8· 9·10 네 종류가 있음)는 CFM의 신형 엔진 ‘LEAP-1B’를 장착해 기존 B-737NG(New Generation)보다 연비를 14%가량 끌어올린 최신 기종이다.

기존 737 NG보다 더 큰 엔진을 장착하다 보니 기수(機首)가 들리는 각도. 즉 받음각(AOA·Angle Of Attack)이 커지는 현상이 발생하기 쉽다. 이번에 사고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MCAS는 받음각이 커지면 동체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다가 속도가 줄어들면서 실속에 들어가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장비다.

MCAS는 737 맥스의 세 가지 요소가 협업해 작동한다. 1) 비행기 앞쪽에 돌출된 받음각(AOA)센서가 기수가 들린 정도를 측정한다. 2) 비행기의 컴퓨터는 측정된 값을 판단해 기수가 너무 들려 실속 위험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3) 실속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자동으로 수평 꼬리날개를 아래로 내려 기수를 낮춘다.

지난해 11월 28일 인도네시아 교통안전위원회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장 쪽 받음각 센서가 고장 나 실제보다 기수가 20도나 높이 들린 것으로 측정됐다”면서 “이 때문에 MCAS가 오작동해 기수가 강제로 내려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라이언에어 추락 사고 당시 실제 비행 기록을 보면, 조종사가 자꾸 떨어지는 기수를 올리려고 조종간을 필사적으로 잡아당겼음을 알 수 있다. 비행기는 조종간을 당기면 기수가 올라가고 밀면 기수가 내려간다. 사고기는 추락 전 11분 동안 30차례나 자동으로 기수를 낮췄다. 비행기가 저절로 기수를 낮추면, 조종사가 완력으로 조종간을 당겨 기수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는 “MCAS의 오작동으로 기수가 내려가면서 조종사가 거의 실시간으로 조종간을 움직여 기수를 끌어올린 기록이 지그재그 그래프로 그대로 저장돼 있었다”고 전했다. 조종사들은 비행이 끝나는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조종간을 잡아당겼지만, 결국 기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추락했다.

보잉도 MCAS 오작동이 문제 원인일 가능성을 일부 인정한 모양새가 됐다. 737 맥스8 기종에 앞으로는 ‘오작동 경고등(disagree light)’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할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기 때문이다. 오작동 경고등은 받음각 센서가 항공기의 MCAS에 잘못된 정보를 전송할 경우 켜진다. 보잉은 해당 장치를 추가 비용을 받고 옵션으로 제공해 왔는데, 사고 항공기 두 대에는 장착되지 않았다. 오작동 경고등이 켜지면, 조종사는 무엇 때문에 기수가 내려가는지 금방 알아챌 수 있고, 매뉴얼에 따라 수동조작으로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 사고기 조종사들은 추락할 때까지 MCAS 오작동 가능성으로 기수가 낮아진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을 수 있다. 오작동 경고 시스템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737 맥스8 추락 사고는 급속한 기술 발달과 융복합 트렌드 확산으로 인한 무한 경쟁 시대에 중요한 화두가 된 ‘복잡성(complexity)’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복잡성은 ‘사회와 기술 발전에 따라 편리함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관리의 범주를 넘어서면서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져 문제가 생기는 것’을 뜻한다. ‘이코노미조선’이 이번 사고에서 드러난 복잡성 문제를 다섯 가지 관점으로 풀어봤다.


1│설계

“복잡성은 여러분의 적이다. 복잡하게 만드는 건 바보도 할 수 있다. 뭐든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

영국의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말이다. 버진그룹에는 민간 우주 탐사 기업 ‘버진 갤럭틱’과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 등이 포함돼 있다.

항공기 구조는 복잡하다. 737 기종만 해도 37만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자동차보다 10~20배 더 많다. 그러나 구조가 아무리 복잡해도 모든 것이 설계된 대로만 작동하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트럼프의 지적대로 항공기에 각종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구조가 복잡해진 건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조종은 오히려 쉬워졌다는 것이 조종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반대로 구조는 단순하더라도 설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변수를 꼼꼼히 따져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잠재된 복잡성이 불거지면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시스템공학에서 초기 설계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잉은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Fly By Wire, 전기신호로 비행을 제어하는 것)로 대표되는 항공 전자 시스템의 디지털화 흐름 속에서도 기계식(유압식) 조작 방식을 병행∙유지해 왔다. 경쟁사 에어버스가 FBW 도입에 적극적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보잉은 1995년 777 모델을 도입하면서 FBW 시스템을 처음 적용했지만, 전체 수익의 약 40%를 담당하는 ‘효자 기종’인 737 계열기종은 기계식 조작 방식을 고집해 왔다.

그런데 기계식 플랫폼인 737에 전자식 제어장치인 MCAS를 적용했는데 설계 구조의 아날로그 시스템과 디지털 시스템의 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예상치 못했던 AOA센서와 MCAS 오작동이 연이은 사고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보잉 737 맥스8 여객기 조종석. 사진 블룸버그
보잉 737 맥스8 여객기 조종석. 사진 블룸버그

2│비용

비용 절감과 경쟁의 압박은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복잡성을 키우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보잉도 예외는 아니었다. 설계의 복잡성이 커진 근본 원인도 당장 눈앞의 비용 절감 효과와 경쟁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NYT는 “보잉이 2011년 에어버스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737 맥스 기종의 개발을 지나치게 서둘렀다”고 최근 보도했다. 당시 에너지 효율이 높은 ‘A320네오’를 앞세운 에어버스의 공세에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발단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기종을 만드는 데는 보통 10년 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고객의 마음을 돌릴 조치가 필요했다.

보잉은 아메리칸항공 측에 “기존 737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최대한 빨리 내놓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6개월 만에 737 맥스의 밑그림을 완성했다. 보잉이 2011년 737 맥스 개발을 시작해 2015년 첫선을 보였으니 신기종 개발에 비해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한 셈이다. 737 맥스의 조종석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던 한 기술자는 NYT 인터뷰에서 “개발 일정이 극도로 촉박해 ‘서두르라’는 독촉뿐이었다”고 전했다. 서둘러 개발된 737 맥스는 사고 항공기들 외에도 곳곳에서 결함을 노출했다.

3월 26일 자유한국당 홍철호(경기 김포 을) 의원과 이스타항공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이스타항공에서 도입한 737 맥스8 두 대에서 이달까지 15건의 결함이 발생했다. 결함 내역을 살펴보면 운항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자동추력장치(auto throttle)’가 기체 상승 중 작동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공중추돌방지장치’ 고장과 기장석 ‘비행관리컴퓨터(HL8340)’ 결함도 보고됐다.

신형 엔진에 걸맞은 새로운 플랫폼을 도입하는 대신 MCAS라는 과도기적인 보조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도 비용 절감 효과 때문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최신형 기종의 경우 안전 검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에 조종사가 새로운 항공기에 익숙해지도록 기종을 전환하고 비행훈련받을 때마다 해당 항공사가 1인당 3만달러 내외의 교육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 분석기관들은 737 맥스 시리즈 운항 중단으로 인한 금전 손실이 최대 50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한 신뢰도 추락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두 건의 사고로 737 맥스 운항이 전면 중단되면서 항공사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졸속 개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아메리칸항공은 하루 약 90편의 항공편이 취소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로 인해 보잉은 그토록 신경을 곤두세웠던 에어버스와 경쟁에서도 수세에 몰리게 됐다. 투자회사 모건스탠리는 737 맥스가 보잉의 민간여객기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만큼 이번 운항 중단 사태가 ‘최악의 시나리오’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3│조직 구조

보잉은 항공기 제작사로는 세계 1위, 방위 산업체로는 록히드 마틴에 이어 세계 2위다.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본사가 있고,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 에버릿에 대규모 공장이 있다.

보잉은 두 조직으로 나뉜다. 방위 산업과 우주 산업을 담당하는 보잉 종합방위시스템(Boeing IDS)과 민간항공기를 제작하는 보잉 상업항공(BCA)이다. 1960년대에는 헬리콥터 제작사인 버톨(Vertol)을 인수, 보잉-버톨 헬리콥터 회사를 설립했다(이후 보잉 헬리콥터 시스템으로 개명). 1996년에는 록웰(Rockwell·옛 노스 아메리칸), 1997년에는 맥도넬더글러스를 인수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기업이 흔히 그렇듯 보잉도 상이하게 다른 조직 문화와 지역 때문에 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보잉과 맥도넬더글러스는 기업 문화에서도 민항기와 폭격기만큼이나 색깔이 뚜렷하게 갈렸다.

보잉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 중에는 맥도넬더글러스와 합병 이후 달라진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련 기록은 2015년 나온 책 ‘난기류에서 벗어나다(Emerging from Turbulence)’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잉과 오늘날 미국 일터에 대한 이야기(Boeing and Stories of the American Workplace Today)’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시애틀 인근에 있는 푸제사운드 대학의 두 교수가 36명의 보잉 직원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책은 맥도넬더글러스 합병 이후 달라진 조직 문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합병으로 나타난 부작용으로 보잉이 직원 개개인의 열정을 높이 평가하기보다 비용 절감에 목을 매면서 외주를 늘렸고, 강경하고 일방적인 인사 정책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보잉에서 30년을 근무하다 은퇴한 전직 직원은 “맥도넬더글러스 직원들이 합류했을 때, 그들과 보잉 직원들은 서로 본척만척 지나쳤다”고 회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 융합을 위해 경영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대안은 인사 발령을 통해 서로 다른 조직과 업무 분야의 직원들을 섞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항공 업계 전문가는 “보잉 내부에서 서로 다른 사업 부문 간 인사 이동이 잦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경우 조직 간 소통 강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전문가를 키우거나 업무 연속성과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방향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문제다.


4│초기 대응

“에티오피아항공 302편과 라이언항공 610편 사고는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으며, 전 세계가 유족과 한마음이 되어 깊이 애도하고 있다. 무거운 마음으로 모든 유족과 지인에게 다시 한번 진심 어린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홈페이지에 남긴 서한의 일부다. “안전한 운항은 절대적 약속이자 지속적인 가치”라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보잉 CEO의 메시지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지 8일이나 지나서 나왔다는 것이다.

사고 원인 조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CEO가 섣불리 입장 표명에 나서는 게 어려울 수 있다. 사과 성명 발표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사고 8일 만에 나온 공식적인 메 시지가 희생자 가족을 향한 위로의 입장 표명과 ‘안전 최우선’ 원칙을 천명한 것일 뿐 사과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운항 중단에 이르는 과정도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다른 나라의 눈치를 살피며 끝까지 버티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737 맥스8·9 운항을 즉각 중단하라는 비상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직원 14만 명을 헤아리는 보잉은 잘 짜인 위기 대응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진 건 30여 명의 사내 로비스트와 16개의 사외 로비 업체였다. 이들은 사고 직후부터 연방 정부를 움직여 자사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할 뮬렌버그 사장은 사고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737 맥스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운항 중단 명령이 나오고 말았다.

세계적인 위기관리 컨설팅 전문기업 레빅전략커뮤니케이션 리처드 레빅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이 위기 상황에서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무작정 대응을 늦춘다”면서 “이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괜히 나섰다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CEO가 침묵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악의적인 내용까지 담은 ‘카더라 통신’이나 ‘경쟁사 통신’이 정보 전달자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톰 행크스가 체슬리 설렌버거 역을 맡아 열연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포스터. 사진 트위터 캡처
톰 행크스가 체슬리 설렌버거 역을 맡아 열연한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의 포스터. 사진 트위터 캡처

5│인력 운영

2016년 개봉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양쪽엔진이 모두 고장난 US에어웨이스 여객기를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시켜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구한 체슬리 설렌버거(톰 행크스 분) 기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의 업적이 추앙받는 것은 강물 위에 매끄럽게 불시착함으로써 부상자를 내지 않은 뛰어난 비행 실력 때문이 아니다. 오랜 경험, 일을 대하는 자세와 고민, 사고대응 능력 등이 빚어낸 순간 판단 능력 때문이다.

2009년 1월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싣고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에어웨이스 1549편은 이륙 2분 만에 버드 스트라이크(조류가 비행기에 부딪히거나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 항공 사고를 일으키는 것)로 양쪽 엔진 동력을 모두 잃었다. 관제탑에서는 출발지로 회항할 것을 권했지만 42년 차 베테랑인 설리 기장은 고도와 속도를 고려할 때 가망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인근의 다른 공항 착륙도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결국 순간적인 판단으로 눈앞의 허드슨강 불시착을 결정해 탑승객 전원을 살렸다. 이후 시행된 사고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그가 몇 초만 판단을 늦췄어도 추락해 탑승객 전원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의 능력과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사건이다.

사고가 난 737 맥스8 조종사들의 부실한 교육은 그런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 개발을 서두르다 보니 조종사들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훈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새롭게 적용된 기능에 대해선 제조사에 교육 책임이 있지만, 두 시간가량의 아이패드 교육으로 대체했다고 NYT가 보도했다.

라이언에어 여객기 사고 당시 조종사들이 MCAS 오작동 해결에 사용할 수 있었던 시간은 40초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당시 상황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결과 드러났다. 짧은 시간이지만 해결 방법만 알고 있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라이언에어 사고 하루 전날에도 같은 항공사 소속 737 맥스8 여객기에 MCAS 오작동이 발생했지만 함께 탑승한 비번 조종사가 문제의 원인을 파악했기 때문에 추락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 생사를 가른 것은 교육과 문제 인식 그리고 판단력이었던 것이다.


plus point

[Interview] 리처드 레빅 레빅전략커뮤니케이션 CEO
“위기 대응에서 B2B·B2C 구분은 무의미”

이용성 차장

리처드 레빅(Richard Levick) 미시간대 커뮤니케이션 석사, 아메리칸대 로스쿨, 아메리칸대 공공리더십 프로그램 디렉터
리처드 레빅(Richard Levick)
미시간대 커뮤니케이션 석사, 아메리칸대 로스쿨, 아메리칸대 공공리더십 프로그램 디렉터

세계적인 위기관리 전문가 리처드 레빅에게 이메일을 보내 3월 18일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가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서한을 읽었는지 물었다. 그는 회신에서 “글을 쓴 의도가 너무 분명히 드러나서 인간미를 느끼기 어렵다”고 했다. 157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737 맥스 항공기 추락 사고가 발생하고 8일이나 지난 시점인 데다 졸속 개발과 부실한 교육 등 보잉측에 불리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마지못해 성명을 발표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레빅은 글로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개척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전략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기업 레빅전략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영국 에너지 기업 BP의 2010년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 등 굵직한 국제 사안과 관련된 기업의 위기 대응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현재 미국 100대 로펌의 절반, 전 세계 100대 로펌의 3분의 1가량이 그의 고객이다.


두 번의 추락 사고에 대한 보잉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악재인 데다 많은 부분에서 불확실성이 컸던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는 않았다. 사건 초기부터 장기적 안목에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거기에 맞춰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보잉이 엔지니어 마인드가 강한 기업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것이 사건 발생 초기에 ‘침묵의 시간’이 길어진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보잉의 위기 대응 방식이 주는 시사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위기관리 전략에서 B2B(기업 서비스)와 B2C(개인 서비스)를 구분하는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모든 기업이 B2C다. 보잉도 그런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항공 여행 시 비행기 모델에 신경 쓰는 고객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래야 한다.”

미국 항공 산업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진 않을까.
“지난 50년 동안 보잉에 큰 힘이 돼 준 연방항공청(FAA)의 위상 변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보잉은 미국 항공사지만, 두 건의 추락 사고에서 시작해 사고 항공기 모델의 전면 운항 중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와 SNS로 무장한 다국적 고객이었다.”

한국 기업의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시 위기전담팀의 가동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도 자동차와 담배, 주류, 무기 회사 등 위기가 잦은 기업들은 별도 대응팀을 두는 경우가 많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구의 규제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 간 무역과 해외 기업과의 파트너십이 잦은 만큼 국경 너머에서 위기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시 위기전담팀원에게 어떤 능력과 자질이 필요할까.
“SNS 활용 능력과 친화력도 필요하지만, 브랜드에 담겨 있는 철학과 비전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브랜드 이해도가 부족하면 위기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어렵다.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팀원들 사이의 신뢰와 이해는 기본이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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