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운행 55년째인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은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상(死傷) 사고도 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일본 효고현 고베의 신고베역에서 승객이 내리는 장면이다. 사진 블룸버그
올해로 운행 55년째인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은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상(死傷) 사고도 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일본 효고현 고베의 신고베역에서 승객이 내리는 장면이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 최초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은 올해로 운행 55년째다. 1964년 일본 3대 도시인 도쿄·나고야·오사카를 연결, 일본 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해 온 도카이도(東海道) 신칸센 개업을 기점으로 계산한 것이다.

신칸센이 유명한 것은 시작이 빨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 TGV(테제베·고속열차 ‘Train à Grande Vitesse’ 머리글자의 프랑스어 발음)는 1981년, 독일 ICE(이체에·도시 간 고속열차 ‘InterCityExpress’ 머리글자의 독일어 발음)는 1991년 도입됐다. 더 대단한 것은 반세기 넘는 운행에서 단 한 건의 사상(死傷) 사고도 없었다는 것이다(신칸센 운행 중 정신이상자의 칼부림으로 인한 사망 사고는 있었다).

TGV는 2015년 11명이 숨지고 11명이 크게 다친 사고가 있었다. 새 노선에서 시험운행 중 시속 350㎞로 달리다 탈선했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탈선과 승객 부상은 있었다. ICE는 1998년 시속 200㎞로 달리다 탈선해 10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ICE는 2010·2011·2017년에도 탈선 등으로 사람이 다치는 사고를 냈다.

철로 위를 고속으로 달리는 게 공학적으로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유럽에선 20세기 초부터 고속열차 기준인 시속 200㎞ 이상 시험운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시험운행 성공과 고속열차로 매일 수십만 명을 태워 나르며 장기간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여기에 신칸센의 본질이 담겨 있다. 1956년 일본 국유철도(현 JR)에 들어가 동일본(東日本)여객철도 회장까지 지냈던 야마노우치 슈이치로는 ‘철도 사고는 왜 일어나는가’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신칸센은 각각의 안전 시스템을 그저 모아놓은 게 아니었다. 하나의 통일된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이게 원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 사고 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신칸센은 충돌 위험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이를 확인해 멈추는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도입해 승무원의 신호 확인 실수에 따른 사고 가능성을 거의 완벽히 방지했다. 사고를 막기 위한 구조적 단순성도 추구했다. 신칸센은 처음부터 건널목이 전혀 없는 구조로 만들어 관련 사고를 원천 차단했다. 고속철로에 투입되는 열차 종류도 제한했다. 종류가 많아지면 운행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그렇게 되면 의도치 않은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보수(補修) 문제였다. 신칸센의 처음 계획은 아침부터 밤까지는 사람을 태워나르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는 화물열차를 운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선로와 열차 보수에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없게 된다. 결국 0시부터 6시까지 모든 열차를 멈추고 보수에 집중하도록 했다. 당장의 수익을 위해 야간에 화물열차를 투입했다면, 나중에 대형 사고가 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7년 시애틀~포틀랜드 구간 열차가 첫 운행에서 탈선해 3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쳤다. 과속이 원인으로 지목된 사고 열차에는 과속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PTC(속도제어시스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진 블룸버그
2017년 시애틀~포틀랜드 구간 열차가 첫 운행에서 탈선해 3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쳤다. 과속이 원인으로 지목된 사고 열차에는 과속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PTC(속도제어시스템)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진 블룸버그

인간의 실수로 책임 몰면 문제 해결 못 해

전문가들은 “안전 대책이란 결국 맹세의 말만 되풀이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실수로 사고라도 나면 마녀사냥에 나서기 일쑤인데, 사실 인간이란 성실하게 일하다가도 깜박 실수할 수 있다. 그걸 전부 범죄처럼 몰아버리면 안전 대책이 자칫 정신 무장의 문제로 편향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신칸센이 55년간 사상(死傷) 사고 제로를 이룬 것은 이전까지 발생한 철도 사고의 원인을 캐낸 뒤 전체 시스템에 어떤 약점이 있는지 철저히 분석했기에 가능했다. 신칸센은 그런 분석을 바탕으로 크고 멀리 보는 계획 아래 만들어진 ‘안전 시스템’ 그 자체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 열차에는 아직도 과속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PTC(positive train control·속도제어시스템)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경우가 꽤 있다. 2015년 필라델피아 열차 탈선 사고로 8명의 사망자와 2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는데, PTC가 없어 시스템적으로 과속을 막지 못했다는 것이 원인으로 제기됐다. 사고가 난 급커브 구간은 규정 속도가 시속 80㎞(약 50마일)이지만 열차는 171㎞(약 106마일)로 달렸다. 사고 구간은 1943년 79명의 사망자를 낸 악명 높은 구간이었다.

2017년에는 시애틀~포틀랜드 구간 첫 운행에서 열차가 탈선해 3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쳤다. 이 역시 과속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PTC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1969년 이래 145건의 철도 사고로 288명이 사망하고 6574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며 “PTC가 활용됐다면 피해 규모가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의회는 2008년 25명의 사망자를 낸 캘리포니아 열차 충돌 사고 이후, 2015년 말까지 모든 철로에 PTC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전면 도입이 계속 늦어졌다. 처음엔 2018년 말로 변경됐다가, 2020년 말로 다시 연기된 상태다.


plus point

737 사고와 ICE 탈선 공통점?

보잉 737맥스는 기체에 크고 무거운 신형 엔진을 얹고 여기에 별도 제어시스템(MCAS)을 덧붙이면서 복잡성이 증대됐다. 완전히 새로 설계·제작을 했으면 리스크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속열차 사상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1998년 독일 ICE 탈선 사고(101명 사망·사진)도 유사점이 있다. 사고 이전 ICE는 바퀴의 진동·소음을 줄이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 설계하자니 시간·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기존 바퀴 크기를 줄이고 거기에 금속 외피를 덧씌우는 방법을 택했다. 안쪽 바퀴와 외피의 두 금속 사이에 고무로 된 진동 흡수재를 끼워 넣어 진동과 소음을 잡았다. 그러나 금속에 피로가 누적돼 언제든지 파손될 위험이 있었다. 1998년 사고는 금속 외피가 부서지면서 탈선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사고 후 모든 ICE 바퀴는 단일재질의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plus point

흑자 경영, 안전에 직결

일본 철도, 특히 신칸센은 자체 승객으로 충분한 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흑자를 내기 때문에 안전과 서비스에 충분히 투자한다. 안전성과 서비스가 좋아지니 승객이 다시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다. 일본 수도권의 철도 대기업인 동일본여객철도는 작년에 매출 2조9502억엔(약 30조 4000억원), 영업이익 4813억엔(4조960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은 철도도 버스도 적자다. 코레일 누적적자는 2017년 말 현재 15조원 규모다. 시내버스 회사 대부분도 적자가 쌓이고 있다. 비용 압박은 안전·유지보수 부문의 투자 감소, 관련 고용과 근무 여건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2017년 시애틀~포틀랜드 구간 탈선 사고 때도 미 연방하원 공화당 의원은 다음 회계연도에 암트랙(Amtrak·미국 여객철도공사) 예산 2억5100만달러를 늘려달라는 민주당 요구를 거부했다. 방만 경영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암트랙은 2016년 32억달러 매출에 10억달러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부실이 심각했다.

최원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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