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스템공학과를 만들었다. 사진 아주대
아주대학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스템공학과를 만들었다. 사진 아주대

아틀라스, 타이탄, 토르, 미니트맨… 1950년대 미국이 소비에트연맹에 대항하기 위해 개발해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프로젝트 이름이다. 미국과 소련 간 우주·군비 경쟁이 한창이던 냉전기, 미 공군은 소련보다 1년 뒤처진 상태에서 ICBM 개발에 돌입했지만,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어 1961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아폴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역시 소련이 무인 위성을 최초로 쏘아 올리며 우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상태였지만, 나사는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은 덕분에 달 착륙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국이 지금의 초강대국 기반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 프로젝트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시스템공학이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폴로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부터 시스템공학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시작된 최초의 정부 주도 비군사 프로젝트였다.

20세기 초반 시작된 시스템공학은 학문적으로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항공·우주·방위 산업 분야에 뿌리를 둔 핵심 학문이다. 모두 ‘복잡성(complexity)’이 발현되는 대표적인 산업군이다. 시스템공학이 모든 복잡성을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이 문제를 제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사이먼 라모·리처드 부턴 교수는 1984년 국제전기전자기술자학회(IEEE) 학술지 기고문에서 “오늘날 모든 중요한 항공 군사 관련 프로그램은 시스템공학을 필수로 응용하고 있다”고 했다. 나사도 1995년 내부 자료집에서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하고 생성해 이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접근 방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의 시스템공학은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내에서 전문적인 단독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대학은 아주대학 시스템공학 대학원 한 곳뿐이다. 1993년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 지시로 정근모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원장이 힘을 보태 정식 학과가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외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기계·시스템공학과, 카이스트 산업·시스템공학과, 중앙대 기계·시스템 엔지니어링학과 등이 있긴 하지만, 다른 학문에 시스템공학을 결합한 형태다.

전문가들은 한국 시스템공학 발전의 토대가 약한 이유로 시스템공학에 대한 인식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산업공학과 시스템공학의 경계가 흐릿하다. 제조업 중심으로 발달한 한국은 전통적으로 제작·생산 단계의 최적화를 추구하는 산업공학이 발전했다. 산업공학이 제작·생산 단계에 관한 것이라면, 시스템공학은 이 단계에 앞서 ‘미래의 요구를 먼저 파악해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구체적인 모델로 발전시키는 과정’에 해당한다. 최근 KAIST 등 일부 대학에서 시스템공학을 과목으로 채택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또 개념 설계 단계 투자는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시스템공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한국의 공대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스템공학 분야는 성공 사례를 칼로 두부 자르 듯 판별해 내놓기도 어렵다. 한 대학 관계자는 “개념을 설계하는 학문이다 보니 결과가 다이어그램·도표 정도로 나오는데, 이 부분이 손에 잡히지 않으니 중요성이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업계도, 대학도 선뜻 힘을 보태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도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2012년 포스텍과 50 대 50 매칭펀드 형식으로 시스템엔지니어링을 철강, 화공, 플랜트 등에 적용하는 엔지니어링 대학원을 설립했지만, 계약 기간 5년이 지난 후 지원을 끊으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링 대학원이 철강대학원으로 흡수 통합됐다.


1971년 7월 30일 아폴로 15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이 달 표면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P 연합
1971년 7월 30일 아폴로 15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 제임스 어윈이 달 표면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AP 연합
미국의 ICBM 개발 프로젝트에도 시스템공학이 큰 몫을 했다. 사진은 1982년 8월 20일 미국 반덴버그 공군 기지에서 쏘아 올린 미니트맨 3 ICBM.
미국의 ICBM 개발 프로젝트에도 시스템공학이 큰 몫을 했다. 사진은 1982년 8월 20일 미국 반덴버그 공군 기지에서 쏘아 올린 미니트맨 3 ICBM.

4차 산업혁명 시대 과실의 핵심

하지만 최근 들어 시스템공학의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학계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주도권 잡기 경쟁에서 승기를 쥐려면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 발달로 복잡성이 확대되는 지금 상황에서 더 그렇다.

한국에 시스템공학 학문을 처음 도입한 인물인 박영원 전 아주대학교 교수는 ‘이코노미조선’에 “시스템공학은 컴퓨터·전자 부문에 한정된 학문이 아니다”라면서 “인문·사회·기술·경제 등 모든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교수는 1970년대 맥도넬 더글러스에서 나사 유인우주왕복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미국 시스템공학 초창기 현장을 생생하게 봐온 터라 누구보다 국내 발전이 더딘 것을 안타까워했다. 박 교수는 “당시 여러 우주 항공 프로젝트에 투입돼 일하면서 보니 기술 제안·설계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시스템공학이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4차 산업혁명 과실을 따기 위해서는 한국이 더는 뒤처질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계 관계자는 “우리 힘으로 창의적인 제품을 개발해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공학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스템공학의 발상지인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등 신흥국에서도 이 분야와 인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정부 차원에서 시스템공학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국방부 산하 핵심 연구·개발 조직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시스템엔지니어링협의체 SETA(Systems Engineering and Technical Assistance)를 두고 모든 개발 사업을 관장한다.

민간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에어버스도 생산 시스템에 시스템공학을 접목한 모델 기반 시스템엔지니어링(MBSE)을 도입해 각 파트를 아우르는 협업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재 시스템공학 국제 협의회인 인코즈(INCOSE·국제시스템엔지니어링학회)의 회원은 2만 명에 가깝다. 한국 시스템공학학회의 회원이 수백 명에 불과한 것과 비교된다. 또 미국만 해도 58개 이상의 대학원 과정이 개설돼 학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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