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윤 아주대 시스템공학 박사, 대우자동차 연구원, 에스이테크놀로지 대표, 한국시스템엔지니어링학회 이사(현) / 사진 이용성 차장
이중윤
아주대 시스템공학 박사, 대우자동차 연구원, 에스이테크놀로지 대표, 한국시스템엔지니어링학회 이사(현) / 사진 이용성 차장

“우리 기업들이 국제무대에서 언제까지나 ‘따라쟁이’ 역할에 머물 수는 없다. 독창적인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높은 수준의 시스템공학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중윤 포스텍 철강대학원(GIFT) 산학협력 전담 교수는 시스템공학을 ‘복잡성(complexity)을 해소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복잡성을 제어하지 못하면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늘면서 제품과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첨단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면서 제품 출시 주기도 짧아지고 업종 간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교수는 대우자동차 연구원 출신이다. 1993년 입사해 2000년까지 근무했다. 1992년 GM과 협력관계가 깨지자 위기감을 느낀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은 독자 모델 개발에 사활을 걸고 세 개 차종(레간자·누비라·라노스) 동시 개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김 교수는 “빠듯한 개발 일정에 ‘히트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던 개발팀 동료들은 주머니에 늘 사표를 꽂고 다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동료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어떻게 하면 개발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방법론을 찾기 시작했다. 대우차는 당시 개발된 고유 모델들의 인기에 힘입어 1998년 상반기 사상 처음으로 현대자동차를 누르고 국내 판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때의 경험이 김 교수가 이후 20년 가까이 시스템공학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갈수록 스마트해지는 세상에서 개발자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안전과 관련된 모든 변수를 상정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 기업의 경우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단계에서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교수를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밤일마을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했다.


한국의 시스템공학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시스템공학 관점에서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타당성 분석, 개념 설계, 기본 설계, 상세 설계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늘 개념 설계 단계에서 막힌다. ‘리버스 엔지니어링(완성된 제품을 분석해 적용 기술을 파악하고 재현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스타일의 개발 방식이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기술력이나 창의력 자체는 나쁘지 않다. 융·복합 시대의 엔지니어들은 미래의 요구를 파악해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모델로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잘 안 된다.”

‘개념 설계’란 무엇인가.
“신차 개발을 예로 들면, 우선 경제, 기술, 사회·문화의 세 가지 관점에서 타당성을 분석한다. 경제 타당성은 ‘잘 팔릴 것인지’의 문제이고, 기술 타당성은 ‘구현 가능성’이 핵심 이슈다. 사회·문화적 타당성은 환경 규제나 주 52시간 근로제에 따른 여가시간 증가 등 정책이나 트렌드와 관련이 깊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된 타당한 개념을 시스템 수준으로 전환하는 단계가 개념 설계다. 차로 치면 최대 탑승 인원과 트렁크 공간의 크기, 편의성 수준,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이르는 데 걸리는 시간) 세부적 요건부터 차량의 기본 콘셉트 등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기본 설계 단계에서는 이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엔진 등 서브 시스템의 최상위 규격이 정해진다.”

개념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타당성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분석하고 대책까지 수립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기본 설계 때는 기술적인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실제로 비용의 대부분이 집행되는 건 상세 설계 단계지만, 거기까지 가서 문제가 생기면 돌이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기본 설계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전체 비용의 20%에도 못 미치지만, 80% 이상이 그 과정에서 결정된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파레토의 법칙’이 적용된다. 복잡성을 줄이려면 (설계의) 앞 단계에서 돈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한다.”

개념 설계 역량을 키우려면.
“다양한 관점으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기술과 경영, 재무 등 다양한 전문분야의 사람이 모여 각자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균형 잡힌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 단계를 대충 건너뛰고 넘어가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작은 문제라면 모를까 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해결할 수 있다 해도 추가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예를 들어 인천국제공항을 처음 만들 때 공항철도 연결까지 함께 추진했다면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을 통한 시스템공학 역량 강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10~20년 전에는 미국에도 시스템공학 과정이 설치된 대학이 몇 곳 없었다. 지금은 수십 곳에 달한다. 메릴랜드주에 있는 스티븐슨대와 버지니아주의 조지메이슨대 등 워싱턴DC 인근 대학들이 강세다. 우리나라는 아주대와 중앙대 대학원 과정 등 손에 꼽는다.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통찰력이 중요해진 만큼 전자·기계 등 세부 전공에 관계없이 시스템공학적 안목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 공대 학부 1학년 과정에 교양 과목으로 도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 같다.”

시스템공학은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산업계에 처음 도입된 것은 프레데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1911)’으로 ‘테일러시스템’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테일러의 과학적 노동관리와 컨베이어 시스템을 결합한 새로운 생산방식이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면서 분업화를 통한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시스템공학이 하나의 학문체계로 등장한 것은 1960년 무렵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출신 품질경영의 대가 조지프 주란과 에드워드 데밍을 초청해 시스템공학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모든 공급망을 하나로 묶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공급받는 도요타의 JIT(Just In Time·적시공급체계)도 그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미국인 데밍은 일본에서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품질경쟁력을 끌어올려준 은인으로 추앙받았다. 그의 뜻을 기려 1951년 일본 산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데밍상(Deming Prize)이 제정되기도 했다.

기술 발달로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리스크 잡아내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건 아닌가.
“그렇다. 우주 시스템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실제로 미국의 시스템공학 역량이 급성장한 데는 우주 개발 프로젝트 추진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분석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시스템공학은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 등의 우주 개발 계획 추진과 함께 급속히 발전했다. 아폴로 계획에 의한 1969년 달 착륙 성공에 시스템공학의 모든 지식과 경험이 이용됐고, 이후 원자력발전, 도시 개발, 통신 시스템 등에 폭넓게 접목되면서 독자적 학문 분야로 자리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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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 ‘80 대 20 법칙’ 또는 ‘2 대 8 법칙’이라고도 한다. 결과의 80%가 원인의 20%에 몰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부와 소득에 대해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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