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가로지르는 송전선의 모습.
숲을 가로지르는 송전선의 모습.

한국전력공사의 해외 사업이 신통치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발간한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 글로벌 전력시장 규모는 22조달러(약 2경50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그러나 한전의 해외사업은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2017년 기준 한전의 해외매출액은 4조1784억원으로 2015년의 4조8026억원에 비해 12.9%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영업이익도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

2017년 한전은 해외에서 3707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는데 이는 2013년의 2050억원 이후 5년 만에 최저치다. 한전의 해외 매출 대부분은 발전소 운영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현지 정부에 파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현지에서 전기를 파는 가격은 이미 정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석탄가격이 올랐다고 판매가격을 따라 올리기 쉽지 않다. 한전 관계자는 “최근 화력발전 해외 순익이 감소한 건 화력발전 원료인 석탄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라며 “매출의 경우 UAE 원전 수주 시점이 지나면서 한전이 받는 돈이 점점 줄고 있어 전체적으로 감소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해외 사업에서 국내 다른 기업들을 선도해 타당성 조사, 설계, 감리, 기자재 조달, 건설, 운영, 금융 등 업무 전체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통합사업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또한 사업을 위해 투자자·금융기관, 기자재 공급자, 건설업체·운영 및 유지보수 업체, 원부자재 공급업체, 기타 각종 자문단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전체를 리드한다. 한전 관계자는 “해외 발전소의 경우 한전이 100% 소유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지분만 가진 곳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한전이 기존 노하우를 활용해 해외 매출을 늘리는 방법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송배전이 있다. 한전은 이미 해외 송배전 개발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캄보디아, 부탄, 필리핀, 스리랑카, 도미니카공화국, 자메이카 등에서 이 사업을 EPC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EPC란 설계(engineering)·조달(procurement)·시공(construction)을 합한 용어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나 인프라사업 계약을 따낸 사업자가 설계와 부품·소재 조달, 공사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사업을 뜻한다. 일괄수주를 의미하는 턴키(turn key)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러나 한전의 해외 송배전 매출 비중은 미미한 실정이다. 2017년 기준 송배전 분야 해외 매출액은 2645억원으로 전체 해외 매출의 6.3%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송배전 분야 해외 매출은 설치와 컨설팅 과정에서 발생한다. IEA는 2035년 글로벌 송배전시장이 7조2000억달러(약 8200조원)까지 성장할것으로 전망한다.

송배전 분야 진출이 어려운 이유는 발전 분야에 비해 해외 진출 문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송배전 설비는 발전소처럼 한 지역에 집중해서 짓는 시설이 아니라 국토 수백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인프라다. 장기간에 걸친 유지·관리도 필수다. 관련 업계에서는 정부와 한전이 동남아시아 송배전 분야 진출을 강화하면 더 많은 해외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조언한다.

한국 송배전 기자재 제조 업체들은 동남아에서 ABB(스위스), 지멘스(독일), 슈나이더(독일) 등 글로벌 전력 기업들과 입찰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는 LS산전, 현대일렉트릭, 두산중공업 등의 대기업이 있고, 한전에서 30년간 육성해온 실력 있는 중견·중소기업들도 많지만, 현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인증을 수월하게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배전 기자재 제조 업체들은 오랜 시간 한전 기준 인증에 맞춰 국내에서 사업을 수행해왔다. 문제는 이 인증이 국제 표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후진국일수록 자체적인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제표준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한국은 전력산업 발전과정에서 효율성을 우선시해 꼭 필요한 인증만 받도록 해왔다”고 했다. 한 공대 교수는 “한전은 대한민국의 압축적인 경제성장 과정에서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에 한전의 인증은 국제적인 인증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인증기관에서 요구하는 게 10개 항목이라면 한국에서는 7개만 받아도 됐기 때문에 추가로 인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하나의 인증을 더 받는 데는 3000만~1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이 해외 인증기관과의 교류를 강화해 국내 업체의 진출을 물밑에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적으로 KERY, KEMA, CESI 등 3대 인증기관이 인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례로 베트남은 KERY와 현지 정부기관의 합작으로 인증기관을 설치해 인증을 내주고 있다.

아울러 한전이 실시하고 있는 해외 인재교육도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실효성 있게 개선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전의 해외 인재교육에는 동남아 정부 관계자 등 핵심인물들이 참석하는데,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 보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인사들이다. 또 한전 해외 지부 근무자들도 ‘전방은 안 보고 후방(한국)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본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획재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공공기관 경영평가 배점 기준에 해외 수주 성과를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되 실무적인 지원은 한전이 적극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plus point

[Interview] 이규상 아시아네트웍스홀딩스 대표
“에너지밸리 모델 베트남에 수출해야”

“나주 빛가람 에너지밸리 모델을 베트남에 수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이규상 아시아네트웍스홀딩스 대표는 최근 ‘이코노미조선’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아시아네트웍스홀딩스는 베트남에서 현지 전력당국과 한국 기업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공동 연구·개발(R&D) △기술이전 등을 논의하고 베트남전력청(EVN)에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에너지자립섬) 실증사례 견학 등의 일을 한다.

에너지밸리는 광주·전남혁신도시와 인근 지역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 에너지 신산업 위주의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사업 모델이다. 한전은 올해 3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70개의 에너지밸리 연관기업 유치와 함께 에너지 관련 신생기업을 발굴·육성하는 ‘KEPCO 에너지 스타트업’ 사업을 추진한다.

베트남 정부가 전력 관련 제조업 육성을 갈망하고 있는데 이 모델을 수출하면 한전은 물론 국내 기업들이 누릴 수 있는 효과가 크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이 대표는 “베트남 정부는 전력을 포함한 특정 분야의 해외 기업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면서 “산업부와 한전이 에너지밸리 모델을 베트남 정부에 먼저 제안하면 베트남 정부가 세제혜택과 부지제공을 약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자본 및 기술 이전을 통해 베트남과 국내 기업이 ‘윈윈’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해외 대형 기업들은 베트남 현지기업에 기술 이전을 하지 않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 진출한 후 에너지밸리 안에서 현지 기업에 기술을 이전해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유지 보수까지 10년을 보고 베트남에 진출한 후 인근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이 사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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