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요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장, 주뉴욕총영사관 상무관, 지식경제부 산업인력팀장
윤요한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환경과장, 주뉴욕총영사관 상무관, 지식경제부 산업인력팀장

1887년 서울 경복궁 내 건청궁에 아시아 최초로 전등이 켜졌다. 1899년에는 서울 종로에 전차가 다니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종로 가로등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약 120년 전 종로를 거닐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처음 보는 이러한 생소한 모습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우리나라 전기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에는 발전량이 미약하고 전기 요금이 비싸 극소수의 부유층만 전기의 혜택을 누렸다고 하지만, 이제는 국민 생활과 경제 전반 어디 하나에 전기 혜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반도체가 통신기술(IT) 제품, 자동차 등 안 쓰이는 곳이 없어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지만 이러한 반도체 공장을 24시간 돌아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전기다. 이제 전기는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재가 됐다. 이렇게 우리가 전기에 익숙해져 오는 동안 국내 전력 산업도 양적, 질적으로 크게 성장해 왔다. 우리나라의 발전 설비 용량은 1945년 해방 당시 남한 기준 20만㎾(킬로와트)에서 현재 119GW(기가와트)로 무려 600배나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전기 품질은 연간 정전 시간, 주파수 유지율, 전압 유지율 등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발전 분야 기술도 상당 부분 자립화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전력 수요의 변동성 확대, 친환경적이고 안전한 발전원에 대한 대내외 요구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성장, 개도국 전력 시장의 급성장 등 새로운 기회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향후 우리 전력 산업이 보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당면 현안의 지혜로운 해결과 함께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전력 산업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다. 지난해 여름 110년 기상 관측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인해 전력 수요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전력 예비율은 7.7%까지 떨어졌다. 최근 들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이 같은 이상기온이 과거보다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어 전력 수급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력 수요 예측 모델의 보완, 혹한기와 혹서기 시나리오 대비, 새로운 전력 수요 관리 수단 개발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동북아 수퍼그리드(한국·중국·일본의 전력망을 연결하는 것)를 구축해 부족 전력과 잉여 전력을 국가 간에 거래함으로써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향후 전력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국민 수용성을 높이고 갈등을 조정하는 노력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기사업법 제3조에는 ‘정부의 전력 수급 기본 계획 수립과 전력 시장 및 전력 계통 운영 시 경제성, 환경 및 국민 안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발전원 구성, 전력 인프라의 입지 등을 결정할 때 경제성뿐만 아니라 환경성과 안전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무엇보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

전력 산업은 안정적 전력 공급의 수단이지만 관련 신산업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력 산업은 대규모 인프라 산업으로서 시장 규모가 크고, 네트워크 산업 특성상 타 산업과 융·복합을 통한 신시장 창출 잠재력도 크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이 확대되고, 전력망에 I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융합되면서 스마트그리드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 모델이 활성화하는 추세다.

정부는 한국전력공사를 통해 소비자의 전력 사용 정보 제공 절차를 간소화하는 전력 빅데이터 플랫폼을 운영하고, 소규모 전력 자원을 모아 거래하는 전력 중개 사업을 확대해 에너지 컨설팅, 에너지 효율 관리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 발굴을 유도할 계획이다.

스마트그리드 서비스 체험 단지를 구축해 태양광, 전기차 충전기와 같은 새로운 전력 설비를 실증하는 것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IT를 활용해 다수의 소규모 분산 전원을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기술,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로 활용할 수 있는 차량-전력망(V2G·Vehicle-to-Grid) 기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통합 제어 관리 시스템 기술 등 전력 신산업 기술 개발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서울 종로 보신각에 가설한 최초의 전기 가로등.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서울 종로 보신각에 가설한 최초의 전기 가로등.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불켜진 빌딩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불켜진 빌딩을 바라보고 있는 불상.

세계 전력 수요 60% 증가 전망…90% 이상이 개도국

끝으로 이제 우리 전력 산업계는 해외 시장에도 주목해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7~2040년 세계 전력 수요가 무려 60%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17~2030년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 증가율을 18%로 전망한 것과 비교하면 이는 매우 빠른 속도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중국 내 산업용 모터의 증가, 개발도상국 냉방 수요의 증가와 수송‧난방 부문의 전력화 확산 등으로 인해 세계 전력 수요 증가의 90%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전력 수요 증가 속도가 2040년까지 현재보다 두 배가량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력 수요 증가는 곧 신규 발전 설비와 전력망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소 건설 사업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소 건설, 변전소‧배전망‧마이크로그리드 구축, 화력발전소 운영‧관리 등 시장의 영역도 다양하다. 또한, 배관 단열재, 스마트계량기, 전기차 충전기 등 관련 시장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시장에 대한 관심, 면밀한 사전 타당성 조사, 우리 기업들의 동반 진출 등을 통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도 해외 잠재 프로젝트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지원하는 한편, 전력 분야 해외 인증 획득, 시장개척단 활동, 국내외 전시회 참가에 대한 지원, 해외 인사 초청 수출 상담회 및 콘퍼런스 개최 등 중소‧중견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과거 외국의 발전기를 들여와 전력 생산을 시작했던 우리 전력 산업이 현재는 해외 발전소 건설 사업을 수주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적기 투자, 전력 기술인들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20년 전 작은 가로등 불빛이 종로 거리를 밝혔던 것처럼 우리 전력 산업계가 머지않아 전 세계를 환하게 밝힐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윤요한 산업통상자원부 전력 산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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