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가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에서 요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의 음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 그랜드 하얏트 호텔
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가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에서 요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왼쪽).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의 음식을 시식하고 있다. 사진 그랜드 하얏트 호텔

적도 부근의 싱가포르는 언제나 그렇듯 후덥지근했다. 3월 28일 싱가포르의 유명 쇼핑가 ‘오차드 거리’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싱가포르 호텔 2층 대형 홀에서는 열전(熱戰)이 한창이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한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의 결승전이 열리고 있었다.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전 세계의 내부 셰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토너먼트식 국제요리대회다. 올해로 5회째다.

“아이보리, 빨강, 초록의 색감으로 타르트를 만들어 한국의 색동저고리를 표현해보려고 했습니다. ‘색동’이라는 한국적인 요소를 이곳 싱가포르에서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저의 어릴 적 꿈을 실현하겠다는 의미를 음식에 담았습니다.”

오세봉(40)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가 대회장에서 자신이 만든 요리를 심사위원들에게 한국말로 설명했다. 두 손에는 색동저고리 사진을 들고 있었다. 불과 3m 앞에 놓인 긴 테이블 뒤에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오 셰프가 이마에 흘리는 땀 한 방울마저도 선명하게 보이는 거리였다. 심사위원들 앞에는 타르트와 소고기 볼살로 만든 오 셰프의 스테이크 요리가 놓여 있다. 심사위원들은 사진과 음식을 번갈아 주시하다가 나이프와 포크를 들기 시작했다.

결승전에 진출한 6명의 셰프가 비슷한 방식으로 각기 두 가지씩 요리를 발표했다. 오 셰프를 포함해 릴리 라우 그랜드 하얏트 항저우 호텔 부총주방장, 린드로 마넬리 그랜드 하얏트 바하마 조리장, 조나단 파시온 안다즈 마우이 에일리아리조트 조리장, 토머스 프로기스 파크하얏트 파리 방돔 부총주방장, 로버트 슈헬리크 하얏트리젠시 아디스아바바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요리 재료부터 방식, 요리 메뉴에 얽힌 사연까지 5분가량 발표하면서 눈앞에서 바로 시식하는 심사위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날 결승전은 미국 대표로 참여한 조나단 셰프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필리핀식 소고기 볼살 구이를 선보였다. 질긴 소고기 볼살을 장시간 쪄서 부드럽게 만든 양념 스테이크다. 필리핀이 고향인 그는 “지금도 집에서 종종 가족들과 해먹는 요리”라고 설명했다.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 참가자들이 만든 음식. 사진 그랜드 하얏트 호텔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 참가자들이 만든 음식. 사진 그랜드 하얏트 호텔

결승전까지 대회 여정은 슈퍼스타K를 방불케 했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전 세계 지점에 있는 총주방장을 제외한 모든 셰프에게 메일로 참가 신청을 받았다. 41개국 200여 개 지점의 호텔에서 700여 명의 셰프가 참여했다. 이후 3번의 토너먼트를 진행했다. 호텔 내부에서 1인자를 뽑은 후, 국가 준준결승전을 진행했고, 미국, 아시아·태평양, 유럽·중동·아프리카·서남아시아 지역 단위의 준결승전을 치렀다. 이후 준결승전 1, 2위 우승자만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일정도 ‘반전’과 ‘미션’으로 가득 차 있어 예능감을 더했다. 결승전 진출 셰프들은 대회 3일 전부터 싱가포르에 도착해 회사가 준비한 행사 코스를 소화했다. 현지 호텔 음식을 즐기고, 바닷가가 보이는 안다즈 싱가포르 호텔 옥상에서 피로연을 벌였다.

행복감도 잠시, 해가 저물 즈음 갑자기 대회 관계자가 회장에 긴장을 불어 넣었다. 6명의 셰프들이 둘러싼 테이블에 의문의 블랙박스가 놓였다. 블랙박스 안에 있던 내용물은 의문의 QR코드. 스마트폰으로 인식하니 주재료 사진이 나왔다.

싱가포르에서 호화 여행을 즐기던 셰프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주재료는 생선 바라문디. 바라문디를 넣은 요리를 고안하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었다. 다음 날에도 미션은 이어졌다. 그랜드 하얏트 싱가포르 호텔의 옥상에 올라가 오전 9시부터 정해진 시간에 그곳에서 재배하는 허브들을 공수해 와야 했다. 다른 셰프들이 어떤 허브를 쓰는지 곁눈질하는 것은 기본. 마침내 대회날 오전 내내 41인분에 달하는 식사를 혼자 만들고 심사위원에게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발표했다.

심사는 심사위원과 초청객 60여 명이 함께 했다. 결승전에 초빙한 심사위원 셰프들도 요식 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었다. 넷플릭스 미식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했던 두아포 송비사바 셰프를 비롯해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유명 셰프들만 7명이 왔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셰프들 앞에서 우리 호텔의 최고 셰프들이 요리할 기회를 얻은 셈”이라며 “우리 셰프들이 한 발짝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 셰프에게 능력 발휘할 기회 주어져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 이런 예능 프로그램 같은 국제요리대회를 기획한 것은 호텔에서 일하는 젊은 셰프들에게 더 큰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번 대회를 주관한 안드레아스 스탈더 아시아·태평양 식음 총괄 부사장은 “기업의 성장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이 대회는 우리 사람들을 성장시키기 위한 플랫폼 역할”이라면서 “이 이벤트에 스노볼(눈덩어리 굴리기) 효과가 나타나면 좋겠다. 선배가, 후배가, 친구가 대회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기에 나가고 싶다!’면서 우르르 신청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대회가 혹독한 경쟁 체제를 상징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기업 차원에서 내부 직원들을 전 세계 규모로 경쟁을 붙이다니. ‘승자독식(Winner Takes it all)’이라는 말처럼 경쟁은 언제나 잔인한 모양새를 보인다.

그러나 호텔 주방의 체계를 이해하면 그와 정반대 해석이 나온다. 호텔 주방은 도제교육이 정착된 곳이다. 엄격한 직급 체계에 따라 업무도 정해져 있다. 직급 체계는 ‘주방 보조’ ‘조리사’ ‘부조리장’ ‘조리장’ ‘부주방장’ ‘총주방장’으로 이뤄져 있다.

주방은 위생 관념이 철저해야 하고, 화기 이용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를 방지해야 하는 곳이어서 질서유지가 중요하다. 과거에 ‘주방이 군대 못지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호텔의 군대식 문화가 사라지는 추세다. 스탈더 부사장은 “일일이 일렬로 세워 놓고 손톱 검사를 하는 식의 군대 문화를 호텔 주방이 버리지 못한다면, 살아남을 곳이 한 곳도 없을 것”이라며 “세상이 밀레니얼 세대에 맞춰 변화하듯이 호텔도 젊은 셰프들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가 결승전에 올릴 요리를 만들고 있다.
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가 결승전에 올릴 요리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직급이 낮은 셰프들은 호텔 주방에서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적다. 메뉴 개발에 목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수직적 직급 체계 때문에 제한적이다. 원하는 메뉴를 자유롭게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요즘에는 호텔 밖에도 기회가 널려 있다 보니 퇴사하고 창업하는 젊은 셰프도 늘고 있다. 일류 호텔들이 더 이상 고급 인력이 제 발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변화를 시도하는 이유다.

수직적 직급 체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경연대회다. 경연대회에서는 셰프들이 계급장을 떼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한다. 실제 준준결승전에 21세의 어린 일본인 셰프가 진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부 경쟁은 젊은 셰프들에게 업무 동기를 부여한다. 경쟁의 장에 서는 것만으로도 재야에 묻혀 있던 인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결승전에 오른 6명 가운데 우승자 한 명에게 주는 상금이라고 해봐야 3000달러(약341만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상금 액수보다는 젊은 셰프들에게 능력을 입증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 더 큰 보상이다. 호텔 주방의 경직된 분위기에서 벗어나 본인이 원하는 메뉴와 조리 방식대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결과가 좋으면 본인이 일하는 업장에서 그 요리를 신메뉴로 내놓을 수도 있다. 대회 진행 과정에서 진급한 사례도 있다. 이 대회가 도제교육 시스템하에서 젊은 셰프들에게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우회로를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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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한국 나이로 현재 20세에서 39세에 해당. 미국 역사·인구학자 윌리엄 슈트라우스와 닐 하우는 공통의 특징을 가진 세대가 일정 주기로 등장한다는 ‘슈트라우스-하우 세대 이론’을 주장했는데, 이들이 1980년대 후반에 이 용어를 처음 썼다. 당시에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기에 성년을 맞이한 세대라는 의미였다. 밀레니얼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시기’를 뜻하는 명사 ‘밀레니엄(millennium)’의 형용사형이다. ‘Millennial Generation’에서 ‘Generation’을 빼고 복수(複數)의 ‘s’를 붙여 ‘밀레니얼스(Millennials)’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보통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지칭하나 일부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이후 출생자로 한정하기도 한다. 디지털에 익숙하고 부모 세대보다 개성과 자기 만족,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도제교육 도제는 한자 ‘무리 도(徒)’ ‘아우 제(弟)’가 합쳐진 말로 제자 무리를 일컫는다. 한 장인이 여러 명의 제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친 데서 유래된 말이다. 도제교육은 유럽 중세 도시의 상인이나 수공업자의 동업조합이었던 길드(guild)에서 후계자 양성을 위해 채택한 제도에서 비롯됐다. 도제는 오랫동안 스승인 장인 밑에서 수련하고, 이후 발품을 팔아 영업을 하는 직인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독립된 장인으로 인정받는다. 보통 장인이 되면 다시 도제를 두고 후계자를 양성한다. 고정된 직급 체계가 있다는 점, 스승과 함께 지내면서 기술과 인격을 아우르는 전인적(全人的)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 도제교육의 큰 특징이다.

plus point

[Interview] 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
“만화책 보고 요리사 꿈꿔…후배 돕는 선배 되고 싶다”

김소희 기자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 대회의 결승에 진출한 오세봉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 셰프는 “후배들 생각해서라도 잘됐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6명이 겨뤘던 결승전에서 우승자를 포함, 3등까지 시상했는데 오 셰프는 아깝게도 그 안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700명이 참여한 이번 대회에서 최종 6명 안에 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실력은 이미 증명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결승전에서는 그가 1등이었다.

오 셰프는 늦깎이 요리사다. 고등학교 때는 킥복싱을 하면서 체대 입시를 준비했다. 대학은 컴퓨터공학과로 진학했다. 그런데 군대에서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보다가 문득 요리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됐다. 요리를 직접 해보면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제대 이후 결국 전공을 조리학과로 바꿨다.

이번 대회는 그에게 제2의 도약이었다. 결승 진출 과정에서 그는 조리사에서 부조리장으로 승진했다. 승진이 어려운 도제교육 시스템에서 대회 성적은 능력의 보증수표가 됐다. 그가 만든 레시피도 그가 일하고 있는 호텔에서 메뉴로 선정됐다. 지난 9개월 동안 그는 우승 트로피보다 값진 선물을 연이어 받은 셈이었다.


어떻게 요리를 처음 시작하게 됐나.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읽다가 운명처럼 요리가 내게로 왔다. 군 제대 후 컴퓨터공학과에서 조리학과로 전과했다. 미스터 초밥왕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같은 음식 100인분을 만들더라도, 1인분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100분의 1이지만 손님에게는 전부고 100이다.’ 같은 음식 100인분을 만들더라도, 1인분이라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이 책임감이 너무나 멋있어 보였다.”

호텔 셰프가 된 계기는.
“미스터 초밥왕을 재밌게 봤으니 자연스레 일식 셰프가 됐다. 압구정동의 일식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오전 7시에 요리 강습을 받고, 일하고, 퇴근하는 일정의 반복이었다. 매일 12시간 넘게 서서 요리를 만들었다. 하루는 피곤한 일과를 마치고 레스토랑 사장님과 술을 한잔했다. 그리고 사장님과 택시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건넜다. 저 멀리 산 위에 건물이 보이더라.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이 ‘하얏트’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다시 물었더니 ‘호텔’이라고 했다. ‘그래, 기왕 요리할 거면 더 좋은 데로 가보자’라는 마음을 그때 먹었고, 결국 하얏트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더 굿 테이스트 시리즈에 출전한 계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2018년 대회에서 전국 2위를 해 아쉽게 떨어졌다. ‘이제 안 한다’고 결심했는데 상사가 다시 나가보라고 부추겼다. 결국 떠밀리듯 나왔다. 그런데 일단 나가게 되니 또 승부욕이 생기더라. 대회 한 달 전부터 새벽 연습을 했다. 퇴근하고 오후 10시에 남몰래 업장에 나가서 새벽 2시까지 요리 대회를 준비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쪽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하는 하루를 반복했다. 생각해보면 그 피곤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대회 과정에서 좋았던 점은.
“자유롭게 원하는 음식을 만들었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판매를 염두에 두고 만들게 된다. 대회에서는 내가 스스로 메뉴를 정하고, 스토리를 담고, 창의성을 발휘한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은 값진 경험이었다.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고, 회사의 발전에 더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계속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내년에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찾아오는 후배들이 있다. 나는 ‘네가 나가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후배에게 내가 준비했던 레시피와 대회 출전할 때 유용했던 팁을 모두 전해주려고 한다. 젊은 친구들이 대회에 나가 활약할 수 있도록 ‘서포터’ 역할을 하고 싶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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