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항공 소속 에어버스 A350 여객기의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카타르항공 소속 에어버스 A350 여객기의 조종석에서 기장과 부기장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29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7년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사고와 역사상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된 ‘테네리페 참사(1977년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테네리페섬 공항 활주로에서 KLM네덜란드 여객기와 팬암 여객기가 충돌해 583명이 숨진 사고)’의 경우처럼 권위주의적인 조종석 문화가 사고의 빌미를 제공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 관련 조사 결과를 보면, 1950년에서 2006년 사이에 발생한 항공 사고의 53%가 조종사 과실이 원인이었고, 그중 25%에서 권위주의적인 기장-부기장 관계가 영향을 줬다.

괌 추락 사고 당시 상공에는 태풍 ‘티나’가 몰고 온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시야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항공기는 정상 고도보다 낮게 착륙을 시도했다. 언덕에 1차로 날개를 부딪친 비행기는 2.5㎞를 더 날다가 사고 지점에 2차로 충돌했고 동체가 세 조각으로 분리됐다.

연방교통안전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종사의 접근 방식과 (괌 공항을 관리하는) 미 항공 당국의 안전 고도 체제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전했다. 기장과 부기장 간 위계질서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착륙 과정 중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안 부기장이 “착륙을 포기하자”고 외쳤지만, 기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때 기장의 권위에 눌린 부기장이 조종간을 대신 잡지 않은 것이 참사의 원인이었다는 분석이다. 충돌 직전 상황을 파악한 기장이 조종간을 당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이 사고를 언급하며 “수직적 위계질서 문화가 빚은 참사”라고 썼다.

대한항공은 이후 미국 델타항공에서 안전 컨설팅과 종합진단을 진행하고 조종석의 업무 관련 공용어를 영어로 바꿨다. 존칭이 발달한 한국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면 수평적인 문화를 이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안전성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었다.

테네리페 참사도 관제탑의 이륙 허가가 떨어지기도 전에 활주로를 질주하기 시작한 KLM 기장의 즉흥적이고 독단적인 행동을 부기장이 ‘감히’ 제지하지 못한 데다, 때마침 교신 오류까지 겹치면서 일어났다.

사고가 난 로스 로데오 공항은 시골 변두리에 있는 매우 작은 공항이다. 그런데 카나리아 제도의 메인 공항인 라스팔마스 공항이 테러 위협으로 임시 폐쇄되면서 이곳으로 회항 명령이 떨어졌다. 활주로는 단 하나, 관제 레이더도 없는 공항에 보잉 747기 두 대를 비롯한 항공기들이 몰리면서 활주로를 제외한 곳곳에 비행기를 세워둘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필 사고 직전 테네리페 섬 근처의 화산 활동으로 인해 시야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베테랑 조종사였던 KLM의 야콥 벨드 휴젠 반 잔텐 기장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이륙을 감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테네리페 참사 당시 상황을 재현한 단편 영화의 한 장면. 사진 트위터 캡처
테네리페 참사 당시 상황을 재현한 단편 영화의 한 장면. 사진 트위터 캡처

조종사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583명 사망

KLM기의 슈뢰더 항공기관사는 “관제탑에서 아직 이륙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반 잔텐 기장은 이를 무시하고 안개 낀 활주로를 내달렸다. 스로틀을 끝까지 올린 KLM은 활주로에서 유도로로 빠져나가던 팬암기를 발견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KLM은 비행기를 띄우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륙하기에 충분한 속도가 나질 않았고 비행기 꼬리 부분이 지면에 닿으면서 불꽃이 튀었다.

KLM기는 충돌 직전 간신히 동체를 띄웠지만 290㎞/h의 속도로 달려가던 KLM기의 동체 아랫부분과 메인기어가 팬암기와 충돌하면서 두 비행기는 화염에 휩싸였다.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연료를 가득 채웠던 KLM기는 완전히 전소했고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248명 전원이 사망했다. 팬암기 조종사와 승객 일부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기체에 남아 있던 탑승객 335명은 화염 속에서 사라져갔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항공사 기장은 “첨단 기술 접목으로 항공기 메커니즘이 복잡해지고 제어해야 할 변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기장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없다”며 “기장-부기장 간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항공사 기장은 “과거 기장-부기장 간 위계질서가 엄격했지만, 이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협력 관계”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고 말했다.

국내 항공 업계 고위 임원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항공 운항은 매뉴얼과 프로세스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도제식 교육이 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장-부기장 조합이 운항 때마다 바뀌는 데다, 기장 중에서도 특별히 ‘훈련관’ 또는 ‘심사관’ 역할을 부여받은 경우가 아니면 공식적으로 부기장을 평가해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조종석 문화는 해당 국가와 조직의 문화적 특수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고, 복잡한 항공기 조종 기술을 실전 비행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 해도 권위주의 문화가 팽배한 국내에서 부기장과 기장이 온전히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아직 시기상조다. 장거리 노선의 경우 기장과 부기장이 10시간 넘게 조종석을 공유해야 하는 데다 군(공군) 출신 비중이 높은 만큼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항공사 기장은 ‘이코노미조선’ 인터뷰에서 “제주도에 갈 때는 내가, 돌아올 때는 부기장이 비행기를 조종하는데, 간혹 부기장들이 눈치를 보는지 내 비행 스타일을 흉내 내려는 경우가 있어 ‘안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도제식 교육의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는 아예 자체 승무원 양성을 위한 도제식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한 항공사도 있다. 지난해 여름 1년 과정의 도제식 승무원 양성 프로그램을 론칭한 영국 LCC 이지젯이 대표적이다. 대형 항공사 중에는 4~7주 과정의 승무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여럿 있지만, 입사가 확정된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과정이어서 16세 이상 항공 업계 종사 희망자를 대상으로 하는 이지젯의 도제식 교육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지젯 관계자는 관련 보도자료에서 “도제식 프로그램이 급성장하는 항공 업계의 인력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밝혔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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