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작 제조기인 슈퍼셀의 게임 개발팀은 ‘셀’ 단위로 이뤄져 있다. 회사 이름인 슈퍼셀은 여러 개의 셀이 모여 ‘슈퍼셀’을 이룬다는 의미다. 사진은 201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일카 파나넨 슈퍼셀 CEO. 그의 뒤로 슈퍼셀 직원들이 보인다. 사진 블룸버그
히트작 제조기인 슈퍼셀의 게임 개발팀은 ‘셀’ 단위로 이뤄져 있다. 회사 이름인 슈퍼셀은 여러 개의 셀이 모여 ‘슈퍼셀’을 이룬다는 의미다. 사진은 2013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한 일카 파나넨 슈퍼셀 CEO. 그의 뒤로 슈퍼셀 직원들이 보인다. 사진 블룸버그

“제임스 대표님은 아메리카노 드신대요. 브라이언님은 어떤 음료 주문하시겠어요?”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유지혜씨는 사내에서 동료들과 서로 영어 닉네임으로 부를 때마다 낯간지럽다고 한다. 회사는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지향한다는 이유로 3월부터 영어 닉네임 제도를 도입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대기업 등이 도입한 기업 문화 대세를 따랐다. 하지만 이름만 영어 닉네임을 도입했을 뿐 조직 문화는 여전히 구시대적이라는 게 유씨의 평가다. 그는 “호칭만 별명이나 ‘~님’으로 부를 뿐,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의사 결정 방식 등은 여전하다”고 했다.

최근 한국 기업에 경영 조직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시대 흐름에 맞게 형식에 얽매여 있던 기존 조직 문화를 버리고 성과 중심, 유연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대표적인 흐름이 직급 폐지, 자율 좌석제 도입, 복장 자율화 등이다. 보수적인 집단으로 유명한 현대차 그룹은 최근 정기 공채를 없애고 임원 직급도 축소했다. SK그룹은 본사 서린빌딩을 공유 오피스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런 조직 개혁 분위기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실제로 글로벌 인사 컨설팅 회사 머서의 ‘2019 글로벌 인재 트렌드 연구’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대다수 조직의 주요 관심사는 ‘조직 재구조화’였다. 2017, 2018년 2년 연속으로 응답자의 90% 이상이 조직 재구조화를 계획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조직 문화와 구조를 다시 짤 때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해외 기업 사례를 소개한다.


사례 1│스포티파이

스웨덴의 스포티파이는 현재 세계 81개 나라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업체다. 가입자 약 2억70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9600만 명이 유료 가입자다. 수익성도 좋아 지난해 4분기 사상 최초로 영업이익, 당기순익, 잉여 현금 흐름 모두 흑자를 기록했다.

스포티파이가 2008년 창업 이후 세계적인 음악 스트리밍 회사로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민첩한 조직 문화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스포티파이는 스타트업보다 더 빠르고 유연하게 의사 결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젝트 진행에 따라 구성원들이 뭉쳤다가 흩어지는 구조다. 창의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스포티파이 성장의 핵심인 개발 부서가 조직 재구조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개발 부서의 가장 작은 단위는 8인 이하로 이뤄진 ‘스쿼드(Squad)’다. 여기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등 다양한 업무 담당자가 한데 모여 있다. 독립성을 보장받기 때문에 어떤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등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일종의 스타트업이다.

업무 연관성이 높은 스쿼드가 여러 개 모이면 ‘부족(Tribe)’이 된다. 예컨대 7개 스쿼드가 하나의 부족을 이뤘다고 하면, 이 부족에는 총 7명의 디자이너가 모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부족 안에 같은 직군 여러 명이 모인 그룹을 만들 수 있다. 스쿼드 단위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다가 디자인 논의가 필요한 순간이 생기면 부족 내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부서에 구애받지 않고 구성원끼리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 결과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 경직된 상하 관계가 아니라 구성원이 기능과 업무에 따라 촘촘하게 묶여 있다.

최근 네이버와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공동 주최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2019’ 행사에서 백원희 스포티파이 유저리서처는 사내 문화에 대해 “재즈 밴드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재즈 밴드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면서도, 악기별 특색은 잃지 않는 매력이 있듯, 스포티파이도 구성원 개성은 존중하되 전체 방향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례 2│슈퍼셀

핀란드의 게임 회사 슈퍼셀은 ‘클래시오브클랜’ ‘클래시로얄’ ‘붐비치’ ‘헤이데이’ 등 세계적인 히트작 게임을 개발한 회사다. 신작을 출시하지 않은 2017년에도 기존 게임 4개만으로 매출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올릴 정도였다. 2년 만인 지난해 12월 내놓은 신작 ‘브롤스타즈’의 초창기 매출 규모도 5000만달러(약 570억원)에 달했다.

히트작 제조기인 슈퍼셀의 게임 개발팀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수 명에서 수십 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작은 단위의 ‘셀(cell·세포)’이다. 대표작인 ‘클래시로얄’ 개발팀도 17명의 ‘소수정예’로 구성돼 있다. 세계적으로 총 250명의 개발자가 셀 단위에 소속돼 있다. 회사 이름인 슈퍼셀은 여러 개의 셀이 모여 ‘슈퍼셀’을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발자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게임을 개발한다.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으며 결과물을 다듬어 가는 ‘좋은 논쟁(Good Argument)’ 방식을 따른다. 의사 결정도 최고경영자(CEO)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셀 단위에서 이뤄진다. 개발자 단위에서 낸 의견을 리더들이 취합, 선별하고 이를 최종 결정권자가 수용하는 방식이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가 내려가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라 ‘역삼각형’ 방식인 셈이다. 개인의 아이디어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일카 파나넨 슈퍼셀 CEO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10개 게임이 개발되면 그중 1개만 출시되는데, 출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CEO인 내가 아니라 게임을 만든 셀”이라며 “나는 회사 의사 결정 과정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lus point

협업 촉진하는 조직 만드는 네 가지 열쇠

스포티파이와 슈퍼셀의 사례에서 보듯 성공적인 조직 문화의 열쇠는 구성원 간 협력을 촉진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 노스웨스턴대 켈로그 경영대학원 연구진이 제시한 ‘협업을 장려하는 조직을 만드는 네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1│공간을 새로 디자인하라

스티브 잡스가 1999년 픽사 신사옥을 설계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중앙의 넓은 공간인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회사의 모든 동선을 연결하고, 이곳에 화장실·운동 공간 등을 모아놨다.


2│작고 민첩한 팀을 만들라

다슌 왕 교수는 작고 민첩한 팀에서 새롭고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한다. 따라서 팀 구성에 신중해야 한다. 브라이언 우지 교수는 “독특한 배경을 가진 팀원과 보통의 배경을 가진 팀원을 매칭시키면 생각하지 못했던 긍정적 결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3│협업 규칙을 세운다

책임 소재와 프로젝트 목표를 명확히 구분하는 규칙이 필수다. 규칙 없는 조직은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4│적절한 보상을 제공한다

조직 경영의 대가 키스 머닝한 교수는 “일관성 있게 조직에 기여하는 사람은 전체 집단을 변화시켜 상호 협력을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보상이 많을수록 조직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