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의 ‘향기 지구본’, 벤츠 코팀의 클라우디아 셈프. 사진 각사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의 ‘향기 지구본’, 벤츠 코팀의 클라우디아 셈프. 사진 각사

직장인 정모(35)씨는 최근 저녁 회식 후 종로 3가에서 택시를 탔다. 어렵게 잡은 택시를 타자마자 정씨는 불쾌감을 느꼈다. 좌석에 잔뜩 밴 담배 냄새 탓이었다. 정씨는 “안락한 퇴근을 위해 지하철보다 훨씬 비싼 요금을 내고 탄 택시가 오히려 고통을 줬다”고 토로했다. 대학생 이모(24)씨는 지난해 7월 여름방학을 맞아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에 탔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은 새벽 지하철에서 나는 정체 모를 불쾌한 냄새에서 한 번, 도착한 해외 공항(아프리카 모로코 마케라시 공항)에서 풍기는 정체 모를 향신료 냄새에 두 번 산산조각 났다.

택시, 버스, 지하철 그리고 비행기 내에서의 후각 경험은 때로는 고통스럽다.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체취는 물론 온도, 습도, 청결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냄새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동 수단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 형성으로 직결된다. 이에 따라 일부 항공·운송 업계에서는 향기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특히 해외 여행 시 첫발을 내딛는 장소인 공항이나 타국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국가별 항공사는 일찍이 그 중요성을 알아챘다. 철도와 자동차 업계도 각 브랜드와 공간의 특성을 반영한 마케팅을 시도하고 있다. 항공·운수 업계에서 활용되는 향기 마케팅 사례를 소개한다.


1│항공 업계

항공 업계에서 향기 마케팅의 역사는 상당히 긴 편이다. 여행 사이트 트립어드바이저가 지난해를 포함해 이미 4차례나 전 세계 최고 항공사로 선정한 항공 업계의 ‘모범생’ 싱가포르항공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항공사 중 가장 오래된 자체 시그니처 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완성된 ‘스테판 플로리디안 워터스(Stefan Floridian Waters)’라는 이름의 시그니처 향은 싱가포르 항공기에서 물수건을 사용할 때, 혹은 승무원이 지나갈 때마다 은은히 퍼진다. 2015년에는 미국 델타 항공이 라벤더 향과 캐모마일 향을 혼합한 시그니처 향 ‘평온(Calm)’을 소개했다. 항공사의 향기 브랜딩(scent branding)에 대한 욕구는 점점 확산되는 추세다. 현재는 일본 전일본공수항공, 홍콩 케세이퍼시픽항공, 터키 터키항공, 미국 버진애틀랜틱항공, 호주 콴타스항공 등 글로벌 항공사들이 자체 개발한 시그니처 향을 활용하고 있다.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제주항공은 향기 브랜딩 대열에 합류했다. 제주항공이 출시한 브랜드 시그니처 향수의 케이스에는 스튜어디스가 목에 걸고 있는 주황색 코르사주(작은 꽃다발 모형)가 달려있다. 이 향수를 조향한 정미순 지엔 퍼퓸 플레이버 대표는 “처음에는 바다 콘셉트의 향수를 생각했지만, 제주항공에서 바람 콘셉트를 요청해 시원한 향으로 조향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서비스 향상이 아닌 위기극복을 위해 향기 마케팅을 사용한 사례도 있다. 중국의 남방항공은 고객들이 ‘이렇게 더러운 기내 화장실은 본 적이 없다’는 등의 악평을 온라인에 남기는 것을 보고 해결책 마련을 고심했다. 남방항공은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재작년부터 특별 제작된 펄프지에 마린 향을 입혀 기내 곳곳에 배치하는 향기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기내에서만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해 김포공항 보안검색대에서 ‘스파 유칼립투스(Spa Eucalyptus)’ 향을 이용한 향기 마케팅을 시작했다. 보안검색을 기다리며 오랜 시간을 소요할 고객들을 위한 서비스다. 또 다른 독특한 향기 마케팅으로는 2014년 영국 히스로공항에 설치된 ‘향기 지구본(scented globe)’을 꼽을 수 있다. 히스로공항 이용객들은 거대한 지구본 앞에서 태국, 남아프리카, 브라질, 일본, 중국 등 지역별 고유의 냄새를 마음껏 맡을 수 있다.


2│철도 업계

철도 업계의 상황은 항공 업계와는 조금 다르다. 대도시 중앙역은 전 세계 어디서나 유동인구가 매우 많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철의 악취나 세균은 자연스러우며, 철도역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이나 불량한 이들의 집결지라는 인식도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철도 업계의 향기 마케팅은 브랜드파워 강화를 위해서가 아닌 불쾌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1998년 프랑스 파리 지하철에서 ‘마들렌(Madeleine)’이라는 이름의 향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어 홍콩 지하철에서도 같은 향이 사용됐다.

2001년 영국 런던 지하철은 도시 특색에 맞게 마들렌 향을 변형해 지하철역 3곳에 적용했다. 역사 내 도보 아래 비치된 마들렌 향수는 지하철 이용객들의 발걸음에 맞춰 공기 중으로 분사됐다. 장미 향, 자스민 향, 목재 향이 섞인 향이다. 이는 지하철 역사 내 모든 퀴퀴한 냄새를 덮기 위한 목적이었다. 다만 이 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승객들이 인지하는 향이 각자 달랐을 뿐 아니라, 건강이상증세를 보이는 승객이 무더기로 나타난 탓이다.

비슷한 시도는 2016년 독일에도 있었다. 지하철역이 아닌 지하철 자체에 향을 입힌 경우였다. 독일철도는 2016년 11월 향기나는 에스-반(S-Bahn·독일 통근열차의 일종) 두 량의 운행을 시작했지만 약 일주일 만에 이를 철회했다. 독일 알레르기·천식협회(DAAB)에서 ‘향기열차 내 사람들이 두통, 알레르기반응, 호흡곤란 등을 호소했다’고 밝히며 이런 시도가 위험하다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국내 철도 업계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향기 마케팅은 없다. 코레일 차량은 물론 멤버십 라운지에도 특정 방향제가 비치되지 않는다.


3│자동차 업계

일반 승합차에서도 향기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회사들은 각각 ‘코팀(nose team)’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의 아우디,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시트의 가죽냄새, 각종 내장재에서 나는 냄새, 심지어 스티어링 휠을 싸는 가죽 냄새까지 조사해 불쾌한 냄새를 제거한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1992년 자체개발한 냄새 테스트와 냄새 기준도 갖추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팀의 전문가 클라우디아 셈프는 자동차의 각 부품 냄새를 직접 맡아가며 모델에 알맞은 향기를 구상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냄새 선별 과정을 통해 각 차량모델에 맞는 가장 편안하고 중성적인 향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포드는 새 차를 공장에서 출하하기 전에 내부시트에 브랜드 향을 뿌린다. 새 차를 구입한 고객은 차 내에 풍기는 독특한 향을 맡고 브랜드에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는 GM과 크라이슬러도 활용하는 방법이다. 한편, 일부 향수 제조사에서는 고급 차량 브랜드의 느낌을 담아 조향한 향수를 판매하기도 한다. 일례로 장미의 강렬함을 담은 페라리 향수는 붉은색 케이스에 담겨 판매된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는 “자동차에 사용하는 시그니처 향기는 부모가 운전하던 차를 타던 자녀의 기억에 오랜 시간 각인돼 성인이 된 후 같은 브랜드의 차량을 구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공유승합차 시장에서도 향기 마케팅이 도입되고 있다. 지난해 말 브이씨앤씨(VCNC)가 도입한 공유승합차 ‘타다’는 승차 거부나 악취와 같은 불쾌한 경험으로부터 고객을 해방하겠다는 목표를 보였다. 현재 타다 전 차량에는 같은 향의 디퓨저가 비치돼 있다. 승객들은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쾌적한 향을 맡을 수 있다. 타다 관계자는 “호불호가 가장 적은 청량한 향의 아로마 오일 2가지를 혼합한 디퓨저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정예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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