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군자동 ‘초이고야’의 제빵 현장.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서울 군자동 ‘초이고야’의 제빵 현장.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서울 군자동의 동네 빵집 ‘초이고야’는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5일만 문을 연다. 만든 빵이 다 팔리면 그날 영업 끝이다. 빵이 오전 중에 동이 나서 오후에 온 손님들이 빈손으로 발길을 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면서도 3000만원가량의 월 매출을 꾸준히 올린다.

5월 10일 초이고야를 찾았다. 지하철 군자역 8번 출구로 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자 여느 서울 변두리와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노란색 간판의 주꾸미집과 호프집, 노래방이 눈에 들어왔고 조금 더 골목으로 들어가니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와 닭갈빗집이 보였다.

이제 막 문을 연 미용실 안쪽으로 분주히 청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500m 정도 걸어 들어가 군자동주민센터가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100m 정도 걷다 보니 초이고야의 간판이 보였다. 빵집 맞은편은 어린이집과 교회였다. 교회 앞은 보도블록을 다시 까는 공사로 포클레인 작업이 한창이었고 2차선 도로 위로는 연신 차들이 지나갔다.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외진 지역이라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빵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주민 강맑음(29)씨는 “외국에서 1년간 있다가 어제 귀국했는데, 외국에 있을 때도 이곳 빵이 계속 생각났다”고 했다. 유창현(27)씨도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색 있는 빵을 많이 먹을 수 있어 자주 간다”고 했다.

초이고야 매장 안에선 가게 주인인 최은영(35)씨와 직원인 남성 셰프 한 명이 빵 굽기에 여념이 없었다. 짙은 초록색과 노란색, 갈색 등 형형색색의 삼각형 스콘, 브레첼과 바게트 그리고 밤이 통째로 가운데 들어가 박힌 통밤팥빵이 진열돼 있었다. 네임텍에는 굵은 사인펜으로 큼지막하게 빵 이름이 쓰여 있었는데 단골인 대학생 손님이 직접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일본에서 케이크와 제빵 기술을 배웠다. 2010년 10월 일본어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에서 도쿄의 고급 주거지 니시아자부에 있는 케이크 전문점 ‘르 수플레(Le Souffle)’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 일본인 셰프 나가이 하루오(永井春男)는 “빵은 손으로 만드는 것이지 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본어를 못해도 된다”며 받아줬다. 최씨는 이곳에서 1년 6개월간 일한 후 도쿄의 일본과자전문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지금은 없어진 빵집 ‘라루칸세루’에서 제빵을 배운 후 귀국했다.

최씨는 밀가루가 듬뿍 묻은 앞치마를 입은 채 주방에서 빵을 굽고 있었다. 그는 “빵이 대기업엔 돈을 버는 수단이지만 제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빵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만 만들고 싶진 않다”고 했다. 오븐에 덴 왼쪽 팔 아래쪽에는 큼지막한 밴드가 붙어 있었다.

초이고야를 찾아간 것은 동네 빵집들의 경쟁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때 동네 빵집들은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고사 위기에 처했었다. 제빵 업계에 따르면 2003년 2만3000개에 달했던 동네 빵집이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2012년 1만 개로 줄었다. 현재는 그보다 더 줄어 8000개 정도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많은 동네 빵집이 문을 닫았지만 초이고야같이 나름의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해가는 곳은 늘고 있다. 영업점 수는 줄었지만 동네 빵집의 전체 매출 규모가 늘고 있다는 것이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발표한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16년 동네 빵집 매출은 2조3353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불과 3년 만에 2013년 1조2123억원보다 93%가 늘어난 것이다. 가장 최근 실시된 조사가 2016년 매출 현황인데, 업계에서는 현재까지도 동네 빵집의 매출 증가 추세가 계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지난 한 달 동안 10여 곳의 인기 있는 동네 빵집을 취재하며 그들의 영업 방식을 살펴봤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는 동네 빵집들은 어떤 경영 전략으로 생존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빵집 창업을 준비하는 많은 예비 제빵인들에게 미래 경영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취재가 진행된 빵집들은 빵 전문가의 추천과 SNS 등에서 화제가 된 곳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선정된 빵집에는 이미 이름난 이성당, 성심당, 김영모과자점 등 유명 빵집은 물론 최근 몇 년 사이에 명성을 얻고 있는 폴앤폴리나와 같은 빵집도 포함됐다.

성공한 빵집의 경영 방식은 제빵 산업 종사자뿐 아니라 다른 업종의 기업이나 일반 자영업자들도 되새겨볼 만하다. 제품(빵)을 차별화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아예 시장을 재창조해낸 곳도 있었다. 명란, 감태, 매생이, 서리태 등 전통 한식 재료를 빵 재료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빵의 기초 재료인 반죽조차 밀가루 반죽이 아닌 쌀 반죽을 활용하는 곳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빵과 같이 맥주를 팔아 ‘빵맥(빵+맥주)’ 시장을 개척하거나 지금까지 간식으로만 여겨졌던 빵의 소비 패턴 전환을 유도하며 한 끼 식사로 먹을 수 있는 ‘식사빵’ 시장을 열어가고 있는 젊은 셰프들도 있었다.

프랜차이즈 빵집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업(業)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동네 빵집 경영자들은 “빵의 영역을 간식에 제한하고 같은 빵으로 출혈경쟁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나가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 연희동 ‘폴앤폴리나’의 제빵 현장.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서울 연희동 ‘폴앤폴리나’의 제빵 현장.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1│매생이까지 빵 재료로 활용

인기 있는 빵집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식재료를 사용한 독특하고 특색 있는 빵이 있다는 점이다.

서울 안국동의 빵집 ‘어니언(ONION) 안국점’도 독특한 빵을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5월 14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곳을 찾아갔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공간적 특성을 살려 대형 한옥을 개조해서 빵집과 카페 영업을 하고 있었다.

어니언의 빵에는 이런 동서양의 조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인절미빵은 커스터드크림과 생크림으로 만든 빵의 겉에 콩가루를 묻혀 서양식 빵의 맛과 한국의 콩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보통 콩자반으로 먹는 서리태를 마스카포네 치즈를 활용한 스콘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했다. 숙취 해소용 국으로 먹는 매생이와 감태(미역과의 해조)도 빵 재료로 썼다. ‘허니 매생이+감태’ 빵은 매생이와 꿀, 감태를 재료로 했다. 빵 위에 감태와 매생이를 살짝 얹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사라(33)씨는 “다양하고 특색 있는 빵을 고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5시쯤 방문한 서울 신사동의 ‘뺑드빱바’는 2004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빵집인데 지금도 일 매출이 120만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다. 이곳에서도 다른 빵집에선 보기 힘든 이름의 빵이 눈에 들어왔다. 스펠트빵이었다. 스펠트는 기원전 5000년 전부터 경작된 식품으로 호밀과 유사한 식재료다. 밀가루보다 소화가 잘되고 동맥경화증과 담석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 이경숙(51) 뺑드빱바 실장은 “밀가루 알레르기로 빵을 먹으면 여드름이 나는 고객들도 스펠트빵은 그런 문제 없이 즐길 수 있어 인기가 좋다”고 했다.


초이고야(왼쪽)와 폴앤폴리나의 가게 전경.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초이고야(왼쪽)와 폴앤폴리나의 가게 전경. 사진 조우혜 객원기자

2│식사빵·빵맥 시장 여는 동네 빵집들

특색 있는 빵을 만드는 것은 기업의 제품 다각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 가는 빵집도 있다.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발휘해 다른 빵집에서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킨 빵집들이다.

초여름 날씨처럼 후덥지근했던 15일 오후 방문했던 서울 연희동 ‘폴앤폴리나’도 이런 곳이다. 이곳은 최종성·김선미 부부 셰프가 운영하는 빵집이다. 연희동이 본점이고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에 직영점이 있다. 본점은 한적한 주택가에 있었다. 이 빵집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공세로 동네 빵집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2008년 영업을 시작했다. 폴앤폴리나가 유명해진 것은 국내에서 버터브레첼, 치아바타 등을 대중화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은 빵집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2008년에는 이런 빵을 파는 곳이 거의 없었다. 달고 부드러운 빵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의 입맛과는 다른 심심한 맛의 빵 즉 ‘식사빵’이기 때문이었다. 최종성 셰프는 “일본 도쿄에 식사빵을 배우러 갔고 식사빵만 전문으로 다루는 빵집에서 1년 정도 일한 후 귀국해 빵집을 열었다”고 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국민 1인당 연간 빵 소비량은 90개였다. 2012년(78개)보다 12개가 늘었고 평균 4일에 한 번은 빵 1개를 먹는 셈이다. 특히 빵 소비 중 30.7%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 등 식사대용 빵이었다. 밥 대신 빵을 먹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최 셰프는 이런 음식 시장의 흐름을 미리 파악하고 빵도 식사(주식)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간식 빵이나 케이크는 달고 맛은 좋지만 매일 먹을 수 없다. 하지만 심심한 맛의 식사빵은 씹으면서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식사의 개념이 점점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고객에게 밥을 먹을 것인지 빵을 먹을 것인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초이고야의 시장 개척 방법도 흥미롭다. 이 빵집은 4년 전인 2015년 군자동에 자리 잡을 때부터 두 가지 영업허가를 받고 시작했다. 일반 빵집처럼 제과점업 영업허가만 받은 것이 아니라 주류판매업 허가까지 받았다.

빵이 맥주와 잘 어울리고, 유럽에서는 점심시간에 빵과 맥주를 함께 즐기는 소비자가 많은 것에 착안해 ‘빵맥’ 시장에 도전한 것이다. 매달 5~6종의 수제맥주를 선정해 빵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일일 매출이 100만원 안팎인 초이고야의 매출 절반가량이 빵맥에서 나온다. 최근 들어 빵과 커피를 함께 파는 베이커리 카페 형식의 영업은 보편화했지만 아직도 빵과 술을 함께 파는 곳은 거의 없다. 최 셰프는 “남들이 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맥주를 함께 파는 것에 도전했다”며 “맥주와 어울리는 짭조름한 맛의 올리브·소시지 등이 들어간 빵도 갖췄다”고 설명했다.


3│사랑방 마케팅의 힘

아무리 맛이 좋고 새로운 빵을 개발해 팔아도 손님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다. 강력한 유통·배송망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동네 빵집을 압도할 수 있는 이유다. 뚜레쥬르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전국에 케이크를 배달하고 있고, 파리바게뜨도 많은 매장에서 전화 한 통이면 배달 서비스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유통·배송망이 없는 대부분 동네 빵집의 마케팅 전략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동네 주민들에게 빵 맛을 인정받고 이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몇 시간이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가도 좋을 공간을 만들어주는 전략이 많았다. 빵집이 동네 사랑방처럼 편안한 공간이 되면 많은 주민이 그 빵집을 알게 되고, 한 번 경험해 본 빵 맛이 주민들에게 만족감을 주게 되면 자연스레 SNS를 통해 그 집이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서울 회현동에 있는 ‘벨기에 빵집’도 이런 사랑방 같은 곳이다. 회현동 골목길에 자리한 이곳은 벨기에에서 21년간 살다 지난해 귀국한 송세화(52) 셰프가 운영하는 곳이다. 송 셰프는 벨기에에서 한 번에 100t이 넘는 화물을 항공기에 싣는 업무를 관리하는 화물탑재관리사로 일했지만, 지금은 회현동 터줏대감이 됐다. 그는 “300종류가 넘는 빵을 팔고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과는 가짓수로 경쟁이 되지 않아, 빵 하나를 팔더라도 빵에 대해 주민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고 노력했다”며 “이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몇 시간씩 놀고 가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동네 주민에게 빵이 맛있다고 알려지면서 인스타그램 등에 사진이 오르고, 외지에서 빵을 사러 오는 손님도 생겨났다.

16일 오후 벨기에 빵집에서 만난 박민서씨는 강남 테헤란로에 사무실이 있는 직장인인데 두 번째로 이곳을 방문했다. 박씨는 “곤트란쉐리에 등 유명 빵집의 빵을 많이 먹어봤는데 여기가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면서 “특히 무화과빵이 독창적인 맛이라 다시 찾았다”고 했다.

동네 빵집, 시골 빵집, 변두리 제과점도 충분히 많은 고객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홍종흔(대한제과협회장·명장홍종흔 대표) 명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최상의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실천한다면, 동네 빵집도 프랜차이즈의 공세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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