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푸드빌 뚜레쥬르와 SPC 파리바게뜨 매출이 전체 제빵 시장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사진 각사
CJ푸드빌 뚜레쥬르와 SPC 파리바게뜨 매출이 전체 제빵 시장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사진 각사

토스터에 갓 구워낸 베이글과 뜨거운 블랙티. 올해 91세 지옥희씨의 단골 아침 메뉴다. 지씨는 ‘아침밥’으로 빵을 먹은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혼자 살 때부터 간단히 식사 대용 빵을 먹던 지씨는 노쇠해 딸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지금도 아침 메뉴로 빵을 고집한다. 그는 “밥은 오히려 속이 더부룩한데, 베이글은 간단하면서도 든든해 아침으로 안성맞춤”이라며 빵 예찬론을 펼쳤다.

한국인의 식탁이 변화하면서 제빵 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젊은층뿐만 아니라 지씨 같은 노년층까지 ‘밥 대신 빵’을 외친다.

식생활 서구화는 이미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69.8g이던 한국인 하루 백미 섭취량은 2016년 143.1g으로 16%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빵 섭취량은 18.2g에서 20.9g으로 15% 증가했다. 백미 대신 잡곡, 국수 등 대체 식품 소비도 증가했지만, 빵 섭취량 증가가 눈에 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은 나흘에 한 번꼴로 빵 1개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맛이 변한 만큼 시장 규모도 커졌다. 2012년 4조3000억원 수준이던 국내 빵 소매 시장(양산빵+베이커리빵) 규모는 2016년 6조4000억원까지 50% 가까이 증가했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일부 개인 빵집까지 포함하면 전체 빵 시장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빵류 수입 규모도 2013년 1910만달러에서 2016년 5580만달러까지 약 3배 증가했다. 부풀어 오른 2019년 한국 제빵 산업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1│올리브·마카다미아너트… ‘이색 식빵’ 전성시대

삼색콩 데니시 식빵, 블루베리 식빵, 브리오슈 식빵, 퐁당 쇼콜라 식빵…. 시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식빵 종류다. 잼을 발라 먹던 단순한 맛의 식빵이 다양한 스타일로 변신하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치즈, 견과류, 옥수수 알, 과일 등을 추가해 맛을 내거나 반죽 배합을 달리해 쫄깃하게 만드는 등 식감을 살리는 시도도 더해진다. 올리브, 마카다미아너트 등 재료도 이색적이다.

이색 식빵은 식사 대용 빵 수요가 늘면서 생긴 변화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2017~2018년 빵 관련 키워드 중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식빵’이었다. 실제로 지난 3년 사이 식빵 전문점이 유행하면서 20개 넘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생겼고, 일본과 한국에서는 ‘프리미엄 식빵’ 열풍이 불기도 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출에서 식사 대용 빵으로 분류되는 식빵과 샌드위치 매출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시장 점유율 40%에 달하는 SPC는 지난해 파리바게뜨 식빵·샌드위치류 매출이 전년보다 각각 6~7% 증가했다. CJ푸드빌 뚜레쥬르의 식사 대용 제품군 매출도 전년보다 15% 증가했다.


2│‘Product of France’ 밀가루 대세

안국동에 있는 개인 빵집 어니언에서 쓰는 밀가루는 프랑스 유명 제분회사 ‘비론’ 제품이다. ‘이코노미조선’이 취재를 위해 만난 개인 빵집 운영자, 대형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잘나가는 베이커리에서는 프랑스산 밀가루 사용이 기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제빵의 본고장 프랑스 본토 맛을 낸다 는 일종의 ‘증표’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바켄·르알래스카, 방배동의 리블랑제 등 베이커리들도 빵 진열장 옆에 프랑스산 밀가루 포대를 놔두고 있었다. 대기업 SPC도 2014년부터 프랑스산 원맥을 들여와 제분해 바게트를 만들고 제품 포장에 이런 내용을 홍보하고 있다.

99% 이상 수입산 밀가루를 쓰는 한국 제빵 업계에서는 그동안 세계 1·2위 밀 생산국 미국과 호주산 밀가루를 써왔다. 맛보다는 원료 공급 편의성에 초점을 둔 선택이었다. 하지만 소비자 입맛이 고급화되고 빵 소비가 늘면서 프랑스산 밀가루 수입도 함께 증가했다. 기타국(프랑스산 포함) 밀가루 수입은 2013년만 해도 통계상 제로(0)였지만 불과 4년 만인 2017년 7279t까지 치솟았다. SPC 관계자는 “프랑스산 밀가루는 미네랄 함량이 높고 단백질 특성이 달라 껍질이 바삭하고 속이 부드러운 프랑스 빵만의 독특한 식감과 풍미를 내기에 좋다”고 했다.


3│세계적 빵집, 아시아 첫 무대는 한국

지난 4월 한남동에 있는 ‘타르틴 베이커리’를 찾은 박지혜씨는 엄청난 대기줄에 놀랐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유명 빵집인 타르틴 베이커리는 해외에서도 ‘세계 최고의 빵’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다. 지난해 1월 한국을 아시아 진출 첫 무대로 선택해 화제가 됐다. 박씨는 “문을 연 지 1년이 넘어 어느 정도 열기가 가라앉았을 줄 알고 방문했지만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빵순이 빵돌이를 겨냥해 시장에 진출한 해외 빵집은 또 있다. 지난해 4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유명한 ‘B파티세리’가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열었다. 이곳 역시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분점을 냈다. 이 밖에 프랑스의 브리오슈도레·곤트란쉐리에·피에르에르메, 일본의 도쿄팡야·몽슈슈·몽상클레르·르타오 등도 한국에 진출해 있다.

유명 해외 빵집들이 한국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의 빵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데다, 소비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고 말한다. 김강성 용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만족스러운 한 끼, 작은 사치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한국이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골목 상권 출점 제한 규제 명과 암
“규제 공백 우려” vs “외국계만 득 봐”

올가을 정부의 첫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을 앞두고 제빵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 제도는 정부가 지정한 업종에 속하는 대기업들이 출점에 제한을 받는 제도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보호가 목적이다. 2011년부터 있었던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와 내용과 목적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처벌을 강화했다. 기존 제도가 권고에 그쳤다면, 새 제도는 벌금이나 징역 등 법적 처벌도 가능하다. 대한제과협회도 지난 2월 동반성장위원회에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 신청서를 냈다.

‘동네 빵집’ 상인들은 2013년 제과업이 중기 적합 업종으로 선정되면서 정부의 보호를 받아왔다. 실제로 파리바게뜨, CJ푸드빌 등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은 동네 빵집 반경 500m 이내에 새 점포를 열지 못했고, 연간 출점 속도도 제한을 받았다. 그 결과 대기업 빵집 매장 증가율이 2.6%에서 0.3%까지 떨어졌고,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제과 시장 규모는 3년 동안 90% 넘게 성장했다.

다만 대기업들은 외국계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를 짚고 있다. 제도 시행 이후 5년간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의 가맹점 수가 총 60개 감소한 반면, 규제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업체들은 빠르게 가맹점을 늘리고 있다. 프랑스 곤트란쉐리에는 2014년 국내 첫 매장을 연 이후 5년 만에 매장을 32개로 늘렸다. 일본 몽슈슈 매장도 3개에서 21개로 증가했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새 제도 시행 전까지 생기는 규제 공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중기 적합 업종 제도는 지난 2월 말 종료됐는데, 새 제도는 9월쯤 첫 지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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