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심당 본점. 사진 성심당
대전 성심당 본점. 사진 성심당

대전 성심당(聖心堂)은 올해 어린이날에 맞춰 그림동화책 ‘빵 더하기 빵 더하기 빵빵빵!(이유출판)’을 발간했다. 빵 굽는 냄새로 가득한 ‘빵빵마을’에서 매일 새로운 빵을 만드는 성심이와 소보로빵을 굽는 악어, 단팥빵 만드는 고양이, 도넛 튀기는 두더지 울퉁이가 서로 힘을 합쳐 ‘튀김소보로빵’을 개발한다는 이야기다.

올해 창업 63주년을 맞은 성심당은 대전의 상징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빵집. 그런 성심당에서 빵이 아닌 동화책을 내다니, 어찌 된 일일까. 튀김소보로빵은 오늘날의 성심당을 있게 한 대표 제품, 그리고 책이 말하는 협동과 나눔은 성심당의 창업정신이다. 성심당 김미진 이사는 “함께하는 데 서툰 우리 아이들이 튀김소보로빵 이야기를 통해 협동의 의미를 재미있게 익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사실 성심당은 동화책에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기업이다. 성심당의 경영 이념은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마서 12장 17절)’이다. 임영진 대표와 김미진 이사 부부는 새로운 공유경제를 주창하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포콜라레(Focolare) 운동’과 여기서 비롯된 ‘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의 영향을 받았다.

성심당은 EoC를 실현하기 위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 동료와 손님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베푼 직원을 매년 ‘사랑의 챔피언’으로 뽑아 인사고과에 40%를 반영한다. 매출 내역을 전 직원에게 공개하고, 세금을 100% 정직하게 내는 걸 회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다. 매일 생산하는 빵의 30%를 지역사회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데, 남는 빵을 주는 게 아니라 나누기 위해 일부러 굽는다. 그러고도 수익의 15%는 무조건 인센티브로 직원들에게 돌려주고, 그 인센티브의 20%에 해당하는 돈을 전 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금으로 기부한다.

이렇게 퍼주고 나누는데 망하긴커녕 오히려 쑥쑥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500억원을 넘었다. 전년 423억원보다 26% 증가했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단일 빵집으로는 첫 기록이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96억원, 81억원으로 전년 76억원, 59억원보다 각각 26%, 36% 늘었다.

사랑과 나눔, 베풂을 강조하는 경영 이념은 성심당 창업자 임길순(1912~97)에서 비롯됐다. 함경남도 함주에서 사과 농장을 하던 임씨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아내와 네 딸을 데리고 피란길을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흥남부두에 도착했지만, 피란민 10만여 명이 몰린 흥남부두는 아수라장이었다. 몇 척 되지 않는 배에 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씨는 나무 십자가를 들고 기도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을까. 십자가를 본 미군이 다가와 그와 가족을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타게 해줬다. 임길순 가족은 그렇게 12월 25일 성탄절, 거제도에 도착했다. 죽을 줄 알았다가 살아난 임길순은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성심당이 발간한 동화책 캐릭터. 사진 성심당
성심당이 발간한 동화책 캐릭터. 사진 성심당

재개통된 통일호 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임길순 가족은 기차가 고장 나 멈춘 대전에 내렸다. 대전 대흥동성당 오기선 신부가 내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팔았다. 1956년, 성심당의 시작이었다.

처음이라 서툰 솜씨로 만든 찐빵이었지만, 워낙 배고프던 시절이라 잘 팔렸다. 하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임길순씨가 찐빵 300개를 만들면 200개만 팔고 100개는 배고픈 이들에게 나눠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이어 성심당을 2대째 운영하는 임영진 대표는 “피란길에서 살아남은 순간, 여생은 남을 위해 살겠다고 기도하셨고, 그걸 지키려고 애쓰셨다”며 “빵집을 운영한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을 게 없는 사람에게 뭔가 나눠주시는 게 목적이었다”고 했다.

성심당은 임영진 대표가 개발한 튀김소보로빵이 히트하며 더욱 번창했다. 1983년 그와 결혼한 미술 전공 김미진 이사의 아트 마케팅이 더해지며 성심당은 대전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대전에 아파트 붐이 불면서 상권이 이동했고, 성심당이 있는 대전 원도심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약진은 성심당을 비롯한 동네 빵집들을 고사 위기로 밀어넣었다. 설상가상으로 2005년 본점 1층 매장과 3층 공장에 불이 나면서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재도약의 기회가 됐다. 직원들이 나서서 제빵기계를 고치고, ‘잿더미 속 우리 회사 우리가 일으켜 세우자’라고 써 공장 벽에 붙였다. 화재 발생 후 6일 만인 2005년 1월 28일, 임시 공장에서 앙금빵과 카스텔라를 구워냈다. 대전 시민은 그 빵을 모두 사줬다.

임 대표는 “성심당이 진짜 어떤 곳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전까지 우리는 남들처럼 세련된 빵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유행에 뒤처질까 걱정했고요. 잿더미가 된 가게를 보고 함께 마음 아파해 주는 동네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성심당은 처음에 투박한 찐빵집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래, 우리 빵집은 굳이 세련될 필요가 없겠구나. 촌스럽고 투박해도 따뜻함이 넘치는 곳이어야 하겠구나’ 하는 것을요.”

성심당은 정체성을 되찾았다. 프랜차이즈 자본과 경쟁하며 유행을 좇아서는 생존할 수 없음을 깨달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시식빵을 아끼지 않고 내놓고, 구운 지 4시간이 지난 빵은 팔지 않는다. 김강은 홍보팀장은 “가난한 사람들도 쭈뼛쭈뼛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 편안하고 따뜻함이 있는 빵집, 그게 성심당 같다”고 했다. “핵가족 시대가 되면서 주변 빵집들이 빵 크기를 줄였지만, 성심당 빵은 큼직하고 투박해요. 온 가족이 빵 하나를 나눠 먹는 정을 소중하게 지키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성심당은 ‘인심이 넉넉한 빵집’ ‘갓 구운 빵만 내놓는 가게’로 소문이 났다. 매출은 금세 화재 이전보다 30%가 올랐다. 서울 롯데백화점 등에서 입점 문의가 쇄도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빵집과 이탈리아 레스토랑, 경양식집 등 성심당이 운영하는 모든 매장은 대전에만 있다. 확장 욕심을 자제한 이유에 대해 김미진 이사는 “대전을 벗어나 서울에 자리 잡은 성심당을 과연 성심당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물론 돈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벌겠지만 그 대신 우리의 본질을 잃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어요. 대전에 와야만 만날 수 있는 빵집으로 그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성심당은 지난해 9월 ‘뚜띠의 모험(이유출판)’도 펴냈다. 뚜띠라는 외계 로봇 과학자의 모험을 다룬 환상 동화 그림책이다. 김강은 홍보팀장은 “‘빵 더하기 빵 더하기 빵빵빵!’이 요즘 아이들이 서툴어하는 협동정신을 나누기 위함이라면, ‘뚜띠의 모험’은 과학도시 대전을 빵이라는 친숙한 매개를 통해 알리자는 의도”라고 했다. 출간과 함께 뚜띠 캐릭터를 살린 파운드케이크, 앙금빵, 쿠키 등 네 가지 제품을 개발했다.

EoC 분야 권위자인 이탈리아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성심당의 철학과 경영 방식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100개의 중소기업이 된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경제 구조 자체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동화 같은 해피엔딩일 것이다.

김성윤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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