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개봉 외국 영화 역대 흥행 기록 1위를 차지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 이 영화는 1380만 관객을 모았다. 사진 마블
한국 개봉 외국 영화 역대 흥행 기록 1위를 차지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년)’. 이 영화는 1380만 관객을 모았다. 사진 마블

4월 24일 개봉한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어벤져스4)’이 한국에서 1380만 관객을 모았다(5월 31일 기준). 국내에 개봉한 외국 영화 흥행 기록 역대 1위로, ‘아바타(2009년)’의 아성이 10년 만에 깨졌다. 1000만 관객은 개봉 11일 만에 달성했다. 지난해 개봉한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기록은 1121만 명이었다. ‘마블민국(마블에 열광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한국 관객은 마블 세계관에 열광했다. 한국 영화까지 합친 기록인 전체 영화 흥행 기록에서 ‘어벤져스4’는 역대 5위다.

‘어벤져스4’의 인기가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모조에 따르면 ‘어벤져스4’는 세계에서 26억8871만달러(약 3조2122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가장 많은 돈을 번 영화다. 2위 역시 마블에서 제작한 영화인 ‘캡틴 마블’로, 11억2725만달러(약 1조3437억원)를 벌었다. 2008년 마블이 처음으로 제작한 ‘아이언맨’ 개봉 이후 11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

마블 영화는 마블 코믹스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다. 1939년 설립된 타임리 코믹스가 마블 코믹스의 전신이다. 이 회사의 편집인 스탠 리는 수많은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들이 같은 세계관 속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작품을 썼다.

스탠 리가 구축한 만화책 세계관을 영화로 재해석한 것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마블의 영화적 세계관)’다. 마블의 제작담당 사장 케빈 파이기는 MCU 팬 사이에서 세계관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아이언맨’의 주연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MCU의 개국 공신’이라고 불린다.

전 세계에 팬을 확보한 마블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났지만, 그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1989년 마블은 8250만달러(약 983억원)에 기업 사냥꾼 로널드 페렐만에게 인수돼 무리한 사업 확장을 하다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1995년 마블의 매출은 8억2900만달러에 달했는데도 4800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결국 1996년 12월 27일, 페렐만은 파산을 신청했다. 1997년 2월 법정은 마블 지분의 3분의 1을 보유한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을 마블의 운영자로 인정했다. 아이칸이 자신의 경영진을 회사에 포진시키는 동안, 이스라엘 출신의 이민자 사업가인 아이작 펄뮤터의 토이비즈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토이비즈는 1990년대에 마블 캐릭터로 장난감을 만들던 회사로, 저작권료 없이 상품을 제작하고자 아예 마블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펄뮤터는 현재 마블 엔터테인먼트 회장이다.

당시 펄뮤터가 마블을 인수할 때 들인 비용은 4억달러(약 4766억원)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마블은 다시 도약할 추진력을 얻는다. 펄뮤터는 다른 영화사에 마블 캐릭터의 판권을 팔고, 영화가 제작되면 관련 완구를 팔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엑스맨·판타스틱4·데드풀은 20세기폭스에, 헐크는 유니버설픽처스에 각기 매각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블은 회사의 운명을 바꾼 도전을 한다. 마블 만화책 속 캐릭터의 영화화를 다른 회사 손에 맡기지 않고,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20세기폭스의 ‘엑스맨(2000년)’이 마블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처음 성공을 거둔 후 다른 만화책 원작 영화들도 성공을 거두는 것을 지켜보다 내린 결정이었다. 마블은 2005년 메릴린치에 만화책 속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와 닉 퓨리를 담보로 5억2500만달러(약 6257억원)를 빌렸다. 이 돈을 바탕으로 마블은 영화를 제작했고, 그 첫 결과물이 5억8517만달러(약 6976억원)의 수입을 올린 ‘아이언맨(2008년)’이었다.

2009년 월트디즈니에 인수되면서 마블의 두 번째 도약이 시작됐다. ‘아이언맨’ 성공 1년 만에 디즈니는 마블을 42억4200만달러(약 5조원)에 샀다. 당시 시장에서는 ‘마블은 인기 캐릭터 판권은 다 팔아넘긴 빈껍데기 회사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마블 코믹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인 스파이더맨을 소니 픽처스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은 1989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인터뷰 중 “신문 연재만화들 중 “스파이더맨을 제일 좋아한다”고 언급할 만큼, 마블의 상징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은 마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마블 코믹스에는 8000여 개의 캐릭터가 있었다. 마블이 보유한 풍성한 캐릭터 판권은 ‘세계관 전문가 집단’ 디즈니를 만나 꽃을 피웠다. 1980년대부터 할리우드 주요 영화사의 시나리오 컨설턴트로 일한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디즈니는 일찍부터 비즈니스에서 세계관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회사”라고 평가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나선 제작진과 배우들. 사진 마블
‘어벤져스: 엔드게임’ 월드 프리미어 시사회에 나선 제작진과 배우들. 사진 마블

쿠키 영상으로 미끼 던져 MCU 알려

19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였다. 클리프행어란 연재소설의 끝을 등장인물이 아슬아슬한 위험에 처하거나 딜레마에 빠지는 장면에서 끝내는 방식이다. 독자가 등장인물이 어떻게 위기에 대처하는지 궁금하게 만들어 다음 편도 보게 하려는 일종의 미끼다. 1800년대는 소설을 여러 번에 걸쳐 연재하는 것조차 흔치 않았던 시기, 디킨스의 이런 시도는 충격이었다.

디킨스가 독자를 사로잡은 미끼가 클리프행어였다면, 마블이 MCU 작품을 관객이 연달아 보게 만든 미끼는 ‘쿠키 영상’이었다. 쿠키 영상이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전후에 추가된 1~2분 내외의 영상이다. 쿠키 영상의 시초를 서부극 ‘대열차강도(1903년)’로 보는데, 이를 대중에 널리 유행시킨 건 마블이다. 마블은 영화마다 속편에 대한 실마리를 주는 쿠키 영상을 덧붙인다. 속편에서는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이를 통해 관객에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고취시켰다.

쿠키 영상에는 영화에 등장했던 캐릭터뿐 아니라, 처음 보는 캐릭터가 소개된다. MCU의 시작을 알린 ‘아이언맨’의 쿠키 영상에는 본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던 MCU 속 평화 유지 기구 쉴드의 국장 닉 퓨리가 등장한다. 그는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에게 나타나 “당신이 유일한 수퍼 히어로(영웅)라고 생각하나”라고 말한다. MCU에 더 많은 수퍼 히어로가 등장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사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광고판 삼아 세계관 속 다른 캐릭터와 차기작을 홍보한 것이다.

쿠키 영상은 ‘아이언맨’에서 그치지 않았다. ‘인크레더블 헐크(2008년)’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져(2011년)’에서도 다른 캐릭터에 대한 암시, 또는 속편에 대한 예고를 담은 쿠키 영상이 이어졌다. 이렇게 수년간 마블은 MCU 속 캐릭터를 관객에게 알렸다. 친숙해진 MCU의 수퍼 히어로들은 마침내 ‘어벤져스(2012년)’를 통해 한 화면에 모였다. 마블은 ‘어벤져스’로 전 세계에서 15억1881만달러(약 1조8096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레드 카펫 행사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토르’의 주연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 사진 마블
레드 카펫 행사에서 팬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토르’의 주연 배우 크리스 햄스워스. 사진 마블

MCU의 신, 케빈 파이기의 원작 사랑

마블의 케빈 파이기 제작 담당 사장은 마블 코믹스 원작 만화책을 사랑하는 ‘마블 마니아’로 유명하다. 그는 2000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 제작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마블 코믹스에 빠져들었다. 그때부터 파이기 사장은 수많은 마블 코믹스의 만화책을 독파했다. 그리고 파이기 사장의 원칙은 하나였다. ‘원작대로 하자’는 것.

파이기 사장의 원칙에 따라 마블은 철저하게 원작 만화책의 설정을 살려 MCU를 설계했다. 북유럽의 신을 모티프로 한 ‘토르: 천둥의 신(2011년)’ 제작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먼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인 아스가르드에서 온 토르가 등장하는 배경은 현대 미국이다. 하지만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서 토르의 등장 배경을 중세 유럽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작품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파이기 사장은 “토르를 추후 ‘어벤져스’에 합류시키려면, 배경이 원작 그대로 현대 미국이어야 자연스럽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작품 속에서 토르는 현대 미국의 뉴멕시코 지역에 떨어진다. 자칫 한 작품에서 어설프게 설정을 바꿨다가는 추후에 제작할 영화의 세계관과 연결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블은 파이기 사장을 포함해 마블 코믹스 원작의 열혈팬 6명으로 꾸려진 ‘크리에이티브위원회’라는 부서를 2015년까지 뒀다. 이들은 만화책을 영화로 옮기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해 결과를 영화 제작에 반영했다. 이 위원회는 만화책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어낸 일등 공신이었지만, 펄뮤터 최고경영자(CEO)와 파이기 사장이 MCU의 방향을 놓고 대립하는 과정에서 결국 해체됐다.


plus point

현실 속 사회 문제 반영하는 MCU
‘팍스 아메리카나’ ‘남성 중심’의 한계 흑인·여성 캐릭터로 극복

MCU 최초 여성 캐릭터 단독 주연 영화 ‘캡틴 마블(2019년)’. 사진 마블
MCU 최초 여성 캐릭터 단독 주연 영화 ‘캡틴 마블(2019년)’. 사진 마블

MCU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비판 중 하나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적 평화)’와 ‘백인 남성 중심적 서사’라는 점이다. ‘미국이 온 우주를 구한다’라는 전제하에 세계관 속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기 때문이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등 마블의 인기 캐릭터들은 이런 비판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마블은 이런 비판을 의식이라도 한 듯, 10년 만에 흑인 배우를 주연으로 한 영화 ‘블랙 팬서(2018년)’를 내놓았다. ‘블랙 팬서’는 지구상 가장 강한 희귀 금속 ‘비브라늄’을 보유한 가상 국가 와칸다의 국왕인 블랙 팬서가 비브라늄을 노리는 적들에게 맞서면서 와칸다와 세계를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블랙 팬서가 MCU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16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였다. 세계 평화를 유지할 능력을 갖춘 국가가 미국이 아닌 와칸다로 그려지면서, 이 영화는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신화를 부쉈다는 상징성이 있다.

이어 마블은 여성 배우 단독 주연 영화인 ‘캡틴 마블’을 내놓는다. 그간 마블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 캐릭터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데 그쳤다. 니콜 키드먼, 나탈리 포트만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분한 캐릭터임에도 그들은 남성 캐릭터의 그림자 뒤에 있었다. 강한 전투 능력을 가진 캐릭터인 블랙 위도마저도 지난 11년간 MCU에서 서사의 중심인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성 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금, 마블은 ‘캡틴 마블’을 통해 우주선을 옮길 만한 힘을 가진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선보였다. ‘캡틴 마블’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브리 라슨은 처음에는 영화 출연을 고사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여성 배우와 어린 소녀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마블 임원의 말에 출연을 결정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plus point

세계관 없이 플랫폼만 장악한 넷플릭스
콘텐츠 제작에 작년 12조원 쏟았지만…

송현 기자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사진 블룸버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더 크라운’. 사진 블룸버그

4월 11일 뉴욕 증시 나스닥에 상장된 월트디즈니의 주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연초 이후 상승 폭이 2%대에 불과했던 디즈니 주가는 이날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올랐고, 5월 30일 기준 상승률이 24%를 기록했다. 이날은 월트디즈니가 자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기로 하고 출시일을 11월 12일, 구독료를 월 6.99달러로 공개한 날이다.

투자자들이 이 소식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은 디즈니의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 장악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스타워즈’ 시리즈를 보유한 루카스필름,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세기폭스 합병으로 ‘타이타닉’ ‘아바타’ 같은 대작과 ‘심슨 가족’ 같은 마니아층 콘텐츠까지 갖고 있다. 파급력 있는 세계관을 다량 보유한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아직 이렇다 할 세계관 없이 플랫폼만 장악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넷플릭스가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투자하고 있는 자체 제작 콘텐츠 ‘오리지널’이 열쇠다.

지난해 기준 넷플릭스는 120억달러를 콘텐츠 발굴에 투자했다. 앞서 테드 사란도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한 해 콘텐츠 투자의 85% 정도를 오리지널에 배분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으로 유추하면 지난해 102억달러(약 12조원)가 오리지널 제작에 투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 16억달러의 6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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