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탄소년단.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남준(RM)은 구치소에 갇히고, 정국과 윤기(슈가)는 죽고, 태형(뷔)은 친부 살해 용의자가 됐다. 타임리프(시간여행) 능력이 있는 석진은 이들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의 줄거리다.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이 어쩌다 잔혹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이 웹툰은 방탄소년단이 2015년 4월 발매한 ‘화양연화 파트.1’부터 지난해 8월 발매한 ‘러브 유어셀프 결 앤서’까지 이어지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마치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음 작품을 풀어내듯, 방탄소년단도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를 부여받고 서사를 풀어간다.


BTS의 ‘성장’, 엑소의 ‘초능력’

방탄소년단의 콘텐츠 중 세계관과 관련된 노래와 영상에는 ‘BU’ 로고가 붙는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는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지만, 팬들은 이를 ‘방탄소년단 세계관(BTS Universe)’이라 부른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 않고,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스메랄도 꽃, 모래, 가면, 불, 초코바 등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여러 뮤직비디오에 반복 등장해 흩어진 서사를 연결하는 모티브가 된다.

빅히트는 정답을 알려주는 대신 ‘떡밥’이라 불리는 힌트를 줘 팬들이 세계관 속에서놀게 했다. 2017년부터 발매된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앨범에는 ‘화양연화 더 노트’라는 얇은 책이 들어있는데, 여기엔 멤버들의 이야기가 일기처럼 실렸다. 예컨대 2010년 7월 23일 호석(제이홉)의 일기에는 “엄마는 내게 초코바를 건네며 말했다. 호석아, 지금부터 열까지 세고 눈을 뜨는 거야”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엄마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초코바는 ‘거짓’과 ‘불행’의 상징물로, 거짓 사랑을 깨닫는 내용의 노래 ‘페이크 러브’ 뮤직비디오에 초코바 더미가 등장하는 이유를 뒷받침한다.

문학 작품도 차용했다. ‘피 땀 눈물’ 뮤직비디오는 헤르만 헤세의 성장소설 ‘데미안’을 모티브로,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봄날’의 뮤직비디오는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에 수록된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인용했다. 이런 장치를 통해 전 세계 팬들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라인프렌즈 하라주쿠점에서 BT21 제품을 고르고 있는 고객. 사진 라인프렌즈
라인프렌즈 하라주쿠점에서 BT21 제품을 고르고 있는 고객. 사진 라인프렌즈

흩어진 세계관 맞추다 견고해지는 팬심

요즘 아이돌 그룹에 세계관은 필수다. 2012년 데뷔한 엑소는 ‘엑소 행성에서 온 초능력 소년들’이라는 세계관을 내세웠다. 각 멤버는 결빙, 치유, 공간이동 등의 초능력을 갖는다. 처음엔 난해한 콘셉트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세계관이 퍼지면서 대규모 팬덤을 보유하기에 이른다.

걸그룹 이달의 소녀는 멤버들을 다른 염색체를 가진 신인류로 설정하고, 각각의 멤버를 상징하는 동물과 색상 등을 부여했다. 보통의 멤버를 뽑아놓고 데뷔를 준비하는 것과 달리, 기획사 폴라리스엔터테인먼트는 세계관을 먼저 설정하고 이에 맞는 12명의 멤버를 뽑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려 2년간 진행된 데뷔 프로젝트를 지켜보던 팬들은 서서히 그들의 세계관에 매료됐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아이돌 세계관을 “서양식 팬덤 문화와 한국식 팬픽 문화의 결합”이라 짚었다. 팬픽이란 아이돌 그룹 팬들이 재창조한 2차 창작물을 통칭한다. 팬픽은 아이돌 그룹 팬들이 즐기는 오랜 놀이문화 중 하나다. 김작가는 “팬들의 놀이문화를 도입해 충성도를 높이는 장치로 활용한 것”이라며 “요즘 아이돌은 기획 단계부터 세계관을 설정하고 이를 암시하는 모티브를 콘텐츠에 심는다. 팬들에게 이는 아이돌을 더 즐기고 소통하게 하는 요소다. 앨범 준비나 해외 투어 등으로 활동을 중단했을 때도 팬심을 이어 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했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세계관이 먹힌 이유는 누구나 공감할 만한 ‘청춘’의 성장 스토리를 연작 형식으로 확장했다는 것이다. 데뷔 때부터 시작된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는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가상의 세계관은 방탄소년단의 실제 성공담과 만나 시너지를 냈다. 평범한 학생에서 빌보드와 그래미의 아이돌이 되기까지의 서사는 기획사가 만들어 낸 세계관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한 팬은 “술과 마약, 여자에 취해 말썽만 부리는 서양의 래퍼들과 달리, 방탄소년단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다”라고 평했다.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 사진 네이버 웹툰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 사진 네이버 웹툰

돈 되는 세계관, 등단작가도 기용해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당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피부색이 어떻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는 ‘스피크 유어셀프’ 캠페인으로 번졌는데 지난 4월 발매한 새 앨범 ‘맵 오브 더 소울: 페르소나’의 주제이자, 월드투어 콘서트의 제목으로 쓰였다. 잘 설계된 건축 같지 않은가? 기획사의 빈틈 없는 기획력에 팬들은 ‘배운 변태’라는 별명을 붙였다.

아이돌 세계관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방탄소년단은 세계관을 토대로 웹툰과 소설, 게임, 캐릭터 상품 등 파생상품을 내놨다. 세계관은 점점 가지를 뻗어간다. 라인프렌즈와 제휴해 만든 캐릭터 ‘BT21’은 최근 각 캐릭터의 친구, 가족 등을 추가해 세계관의 확장을 예고했다. 방탄소년단이 수다떨 듯 펼친 ‘BT21 세계관’ 영상 12편은 유튜브에서 총 1100만여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라인프렌즈는 굿즈(기념품)의 판매 호조로 지난해 매출이 55% 증가했다.

아이돌 그룹 기획사들은 탄탄한 세계관 구축을 위해 스토리텔링 팀을 운영한다. 빅히트는 등단 작가를 영입해 세계관을 만들고, JYP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스토리텔링 작가를 채용했다. 김작가는 “향후 아이돌 비즈니스는 콘텐츠 비즈니스로 발전할 것이다.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은영 조선비즈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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