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 (왼쪽부터) / 린이푸(林毅夫) 베이징대 신구조경제학연구원 원장 / 왕후닝(王滬寧) 이데올로기·선전 담당 정치국 상무위원 / 류허(劉鶴) 부총리
보수파 (왼쪽부터) 
린이푸(林毅夫) 베이징대 신구조경제학연구원 원장
왕후닝(王滬寧) 이데올로기·선전 담당 정치국 상무위원
류허(劉鶴) 부총리

“문명충돌, 냉전 사고, 제로섬 게임 등의 오랜 관념을 확실히 버릴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사흘간의 러시아 국빈방문을 하루 앞둔 6월 4일 타스통신 등 러시아 매체들과 가진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러시아와 동맹도 맺지 않고 제삼자를 겨냥하지 않는 건설적인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신형 국제 관계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한 부분에서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치한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중국의 일관된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류루이(劉瑞) 중국 인민대 경제학원 부원장은 “미·중 무역마찰이 최악으로 가는 건 미·소 냉전 시절처럼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가는 것”이라며 “이념 전쟁은 유혈만 남긴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외부의 입을 빌리면서까지 문명충돌론을 부정하는 배경이다. 중국이 5월 15일 베이징에서 개최한 제1회 아시아 문명대화 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은 “문명충돌론은 큰 오류”라며 “잘못된 이념을 외칠 게 아니라 소통의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시 주석의 문명충돌론 부정이 서방의 가치를 수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지난 3월 중국 CCTV 등 관영 매체들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만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길”이라는 시 주석의 6년 전 강연 내용을 일제히 다시 전파하는 여론전에 나섰다.

시 주석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지 무슨 다른 주의가 아니다”라며 “중화민족이 가난에 찌들고 약했던 시기에 각종 주의가 시도됐지만 자본주의는 통하지 않았고, 사회 다원주의, 개량주의, 무정부주의, 실용주의, 포퓰리즘 등도 모두 중국 앞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이 중국 인민을 긴긴밤에서 벗어나 신(新)중국을 세우게 했다”는 주장이다.

시진핑 국정 운영의 핵심은 당의 영도(領導·앞장서서 이끎)다. “당정군민학, 동서남북중,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黨政軍民學, 東西南北中, 黨是領導一切的)”는 마오쩌둥 시대의 구호를 부활시켰다. ‘시장’보다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보수파 핵심 브레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은 시장화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중국이라는 토양에서 고성장을 이룬 ‘중국 모델론’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반면 서방의 자유 시장경제를 보편 가치로 받아들이며 ‘중국 모델론’은 없다는 시장 중시형 개혁파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잦아들고 있다.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톈안먼 사태, 신권위주의 키워

정부 역할을 강조하는 브레인을 쫓다 보면 중국 개혁·개방 초기인 1982년 ‘조롱 경제론(鳥籠經濟論·새장 경제론)’을 주창한 천윈(陳雲) 전 부총리를 만나게 된다. 새장 경제론은 ‘새(시장)는 새장(계획경제)에 가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급한 시장화가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내재돼 있다. 중국의 경제 개혁은 계획경제를 위주로 하고, 시장경제는 보조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계획경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경제를 하면서 ‘중국 특색’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노선과 맥을 같이한다. 마오쩌둥 시절부터 계획경제를 진두지휘한 천윈은 1995년 사망할 때까지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의 발목을 잡았던 최대 정치 라이벌이기도 했다.

1인 권력체제 강화 등 신권위주의로 나타나는 시 주석의 통치 이론을 설계한 책사로 통하는 왕후닝(王滬寧·64) 이데올로기·선전 담당 정치국 상무위원은 30년 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지도부의 눈에 든 것으로 전해진다. 자유와 민주의 요구에 유혈 진압으로 맞선 중국 당국은 안정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사회와 경제의 깊은 변화는 이를 감독할 중앙권력을 필요로 한다”는 당시 왕후닝 푸단대 교수의 주장이 먹혀들었다. 1995년 출판된 그의 저서 ‘정치적 인생(政治的人生)’에선 “중국의 민주혁명은 걸출한 지도자 집단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고위급의 부패를 막지 못하면 옛 소련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2013년 시 주석 집권 이후 거세게 몰아붙인 반부패 캠페인의 뒤에 그가 있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1995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에 의해 공산당 싱크탱크인 중앙정책연구실 정치조 조장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한 그는 기업인까지 공산당이 포용해야 한다는 3대 대표 이론의 설계자로 불린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의 ‘과학적 발전관’과 시 주석의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그를 두고 서방에서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고문이자 공화당의 총설계자 칼 로브와 헨리 키신저를 합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지방행정 경험 없이도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예외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중국 대표로 뛰고 있는 류허(劉鶴) 부총리는 시진핑 시대의 ‘경제 책사’로 불린다. 중국 내에서 ‘미국 대변인’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큼 시장경제를 중시한다. 중국 인민대 공업경제과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라 미국 시턴홀대 경영학 석사,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은 다음 귀국 후 중국 경제 이론 수립과 정책 연구에 참여했다. 1991년부터 15년간 경제 개발 5개년 정책 수립에 참여하며 마오쩌둥식 계획경제에 의존해온 관료들에게 맞서 1990년대부터 시장에 기반을 둔 경제 정책을 주장해왔다. 2003년에는 중국 경제 정책의 막후 조율기관으로 통하는 당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이 됐고, 시진핑 집권 1기 초인 2013년 주임으로 올랐다. 2016년 초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낙관적인 거시경제관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인터뷰에 나오는 ‘익명의 권위 있는 인사’라는 설이 돌았을 만큼 막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청 박사(시니어펠로)는 류허를 중국의 로런스 서머스라고 평가한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를 물밑에서 움직여온 책사로 불린다. 시 주석은 2013년 5월 방중한 톰 도닐런 당시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만난 자리에서 류허를 소개하며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류 부총리는 경제의 3대 적(敵)으로 국수주의, 협의의 민족주의, 경제 문제의 정치화를 꼽는다. 시장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여온 리커창 총리와 각을 세웠지만 보수파의 공격을 받을 만큼 시장의 자원 배분 역할을 강조해왔다. 그런 그가 시 주석의 책사로 등용된 배경에는 1960년대 베이징 101중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이 컸다. 통치 방식이 과도하게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는 시 주석의 내심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류허는 미·중 무역충돌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9년 11월 9일 자 주중 미국 대사관 비밀 전문에는 류허가 로버트 호매츠(Robert Hormats) 국무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미·중 무역충돌은 끔찍하다. 작은 분쟁이 두 나라에 정치·사회적으로 중대한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리이닝(勵以寧·89) 베이징대 교수와 린이푸(林毅夫·67) 베이징대 신(新)구조경제학연구원 원장도 시 주석의 통치를 뒷받침하는 브레인이다. 작년 12월 중국 공산당이 개혁·개방 40주년 걸출 공헌 인사로 표창장을 수여한 100명에 들어간 경제학자 두 명이 바로 이들이다. 리커창 총리의 박사 지도교수로도 알려진 리 교수에게는 ‘경제 체제 개혁의 적극적인 창도자’, 린 교수에게는 ‘경제 체제 개혁 이론의 탐색자’라는 칭호가 부여됐다. 둘 다 개혁을 얘기하면서도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 시 주석이 2014년 정치국 집체학습에서 ‘보이는 손(정부)’과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협력 발전해야 한다고 제시한 양수합력(兩手合力)과 맥이 닿는다.

중국의 종합 국력이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고 주장했다가 미·중 무역전쟁 이후 비판 여론에 직면했던 후안강(胡鞍鋼·66) 칭화(淸華)대 교수는 시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설계에 참여한 관변학자다.

“전 세계가 힘을 합쳐도 중국의 굴기를 막을 수 없다”고 자신하는 옌쉐퉁(閻學通·67) 칭화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시 주석의 공격적 외교를 떠받치는 브레인이다. 옌 원장은 “미국이 원하는 타협안을 도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무역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지금의 무역전쟁이 없었더라도 중·미 갈등은 필연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양국 간 실력 차가 줄어들수록 경쟁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중국 제조 2025에 대한 미국의 견제를 두고 “중·미 무역전쟁은 과거 미·소 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른 기술 전쟁”이라고 말한다. 옌 원장은 “지식 경제 시대에 중국에 추월당하지 않으려면 중국의 과학기술 역량이 미국을 넘어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인식이지만, 중국 역시 미국이 반대해도 화웨이의 5세대 이동통신(5G) 기술을 세계에 밀어붙일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파 (왼쪽부터) /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교수 / 마오위스(茅于軾) 경제학자 / 우징롄(吳敬璉)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연구원
개혁파 (왼쪽부터)
쉬장룬(許章潤) 칭화대 교수
마오위스(茅于軾) 경제학자
우징롄(吳敬璉)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연구원

자유 시장경제 중시파는 고군분투

중국에도 서방의 시장경제 가치를 전파하는 인물들이 있다. 1989년 4월 본인의 사망으로 톈안먼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주인공인 후야오방 전 총서기는 지방분권과 시장경제를 중시한 대표적인 개혁파 인물이다. 톈안먼 사태로 물러난 자오쯔양 총서기도 국유기업에 이익을 상납하는 청부제를 없애고 법인세를 도입하는 개혁파로 분류된다. 1987년엔 당정 분리를 내세우고 정부기관에 설치된 당조라는 의사 결정 조직을 폐지했다. 하지만 공산당 독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당시 물가 급등과 지역 간 빈부 격차 확대가 개혁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당조가 부활하는 등 경제 활력을 위해 모색됐던 정치 개혁이 정체에 빠졌다.

우징롄(吳敬璉·89) 국무원발전연구중심 연구원과 장웨이잉(張維迎·60) 베이징대 교수는 리이닝, 린이푸와 대척을 이루는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로 통하지만 최근엔 언론의 조명에서 비켜 있다. 중국 관영 ‘중국경제주간’이 뽑은 2008년 개혁·개방 30주년 100명의 경제인에 들어갔던 이들이 개혁·개방 40주년 100명 표창 대상에서 빠진 것을 두고 중국의 시장화 개혁이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우 연구원은 덩샤오핑에게 개혁·개방 이론의 밑그림을 그려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년 전 자유주의 성향의 ‘중국 경제학자 50인 포럼’을 세운 우징롄은 작년 11월 중국 지도부에 정치적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 시장 지향 개혁을 추진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2001년 초 “중국 증시는 거대한 도박장”이라고 비판한 우징롄의 주장에 리이닝이 반박하면서 벌어진 증시도박논쟁은 중국 경제사의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 2016년 던진 ‘빅데이터 시대 계획경제 우월론’을 두고 우징롄은 “빅데이터가 있다고 계획경제에 기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건 웃기는 소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올 1월엔 자유주의 성향 싱크탱크인 후판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국가의 경제 통제를 추구하는 것은 쉽게 ‘정실 자본주의’로 빠질 수 있으며, 이는 개인 자산이 강제로 국가의 손에 넘어가고 결국 소련식 계획경제의 실패로 흘렀던 1950년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장웨이잉 교수는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 국가체제개혁위원회에서 현장 개혁의 정책과 이론을 만들었지만 톈안먼 사태 이후 학계로 밀려났다. 199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석·박사를 받은 뒤 베이징대로 돌아와 경영대학인 광화관리학원 원장까지 했다. 하지만 ‘중국 모델론’을 부정하는 그의 발언은 지도부를 자극해 평교수로 내려오게 했다.

장 교수는 “강력한 일당 통치, 막강한 국유기업, 정부의 현명한 산업 정책 등을 통해 중국의 급속한 발전이 이뤄졌다는 중국 모델론은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고 중국의 미래 발전에도 해롭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특히 “서구의 시각으로 볼 때 중국 모델론은 자유무역이나 세계 평화와 양립할 수 없는 국가자본주의와 같은 것이어서 중국과 서구의 충돌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면서 “중국이 현재 직면한 적대적인 국제 환경은 지난 40년간 중국의 성취를 잘못 해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40년간 중국의 고성장은 중국 모델 덕분이 아니라 시장 중심주의와 기업가 정신, 서구의 기술 축적 등 ‘보편 모델’에 기반한 것”이라며 “중국 모델론을 맹목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국영 부문 비대화, 국가 권력 팽창, 정부 산업 정책에 대한 지나친 의존, 시장 개혁 후퇴, 경제 성장 정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중국인 1호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린이푸 원장의 “중국은 독특한 환경에서 비교 우위를 살려 중국 모델을 만들어 성공했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장 교수와 린 원장이 2016년에 벌인 산업 정책 논쟁은 둘의 시각차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린 원장은 “중국 개혁의 성공은 시장화에 달려 있지만 중국 개혁 구조조정의 성공을 순전히 시장화·사유화·자유화에 기댈 순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 교수는 “인류 인지 능력의 한계와 보상 메커니즘의 왜곡으로 산업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우징롄과 장웨이잉 외에도 고군분투하는 자유 시장경제 중시 브레인들이 적지 않다. 쉬장룬(許章潤·57) 칭화대 교수는 시진핑 정부의 독재 회귀와 개인숭배를 비판했다가 올해 초 직무를 정지당했다.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을 공개 비판해온 원로 경제학자 마오위스(茅于軾·90)의 아파트 집 앞에는 그를 감시하는 파출소가 따로 있다. “국유기업은 겉모습만 기업이지 최고경영자(CEO)와 고위 공무원이 순환 인사를 통해 지배하는 거대한 이익 집단”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그는 2012년 미국 카토연구소가 자유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주는 ‘밀턴 프리드먼 상’을 받았다.

그가 공동창립한 톈쪄(天則)경제연구소는 지난해 폐쇄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전 총리가 쓴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는 “중국인의 머릿속에는 지난 5000년간의 역사를 통해 국가 통치의 중심 권력이 강력했을 때는 나라가 안정적이었던 반면, 그렇지 못했을 때는 혼란과 혼돈의 어지러운 시기였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모든 중국인은 국가가 이끄는 지도부가 강력해야 평화와 번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갈파한다. 하지만 이 같은 국가 중심 통치 기조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역전쟁의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다.

오광진 조선비즈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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