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 정미하 기자
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사진 정미하 기자

나 정미하의 고향은 창원이다.

나는 1981년 창원시 진해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창원 중심가 상남동에 사는 사촌을 만나러 가면 매번 길거리에서 회색 작업복을 입은 아저씨들과 마주쳤다. 마산구로 등교하던 고등학생 시절에는 회색 점퍼를 입고 마산자유무역지역 정문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볼 수 있었다. 진해 바닷가 횟집이 모여 있던 수치마을 인근에 STX조선해양이 들어오면서 회색 점퍼를 입은 무리는 진해 석동 일대에 생긴 신흥 유흥가를 휩쓸고 다녔다. 창원은 떠들썩한 엔지니어들의 도시였다.

그리고 나는 2012년 서울에서 기자가 됐다. ‘이코노미조선’ 커버스토리 취재를 위해 5월 26일부터 일주일간 동료인 김문관 차장과 창원에서 다시 살아봤다. 창원의 현재는 기억과 아주 달랐다. 지역 상인과 기업인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보다도 경기가 좋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들은 고용 인력을 축소했고, 거리 곳곳에는 공실이 보였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창원의 공장 가동률, 생산, 투자, 소비 등 모든 지표는 전국 평균 이하로 추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력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더해 중국 제조업의 추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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