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금주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보생명 비서실장, 중국주재사무소 대표, W20 한국 공동 대표 / 박정림 서울대 경영학과,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 여신그룹 부행장 / 이주은 서강대 광고홍보학과 석사, CJ제일제당 공채 1기, SOY·면·소스 브랜드 매니저 부장, HMR 마케팅 담당 사업부장 / 남정민 홍익대 경영학과, LG CNS 전략지원실 지식경영팀, 풀무원 정보기술실 IT기획팀장, 풀무원건강생활 디지털역량센터 센터장 (왼쪽부터)
허금주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보생명 비서실장, 중국주재사무소 대표, W20 한국 공동 대표
박정림 서울대 경영학과,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 여신그룹 부행장
이주은 서강대 광고홍보학과 석사, CJ제일제당 공채 1기, SOY·면·소스 브랜드 매니저 부장, HMR 마케팅 담당 사업부장
남정민 홍익대 경영학과, LG CNS 전략지원실 지식경영팀, 풀무원 정보기술실 IT기획팀장, 풀무원건강생활 디지털역량센터 센터장 (왼쪽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졌다지만 여전히 한국 경제를 이끄는 500대 기업에 여성 임원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여성이 기업의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선임되면 언론 매체에서 ‘여풍(女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 같은 현상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남성이 아닌 여성이 임원 자리까지 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희귀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유리천장을 깨고 탄탄한 커리어를 쌓으며 ‘일터의 여성들’의 귀감이 된 여성 임원들을 인터뷰했다. 2019년 6월 현재, 이들은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자신들이 사회 초년생이던 1990~2000년대와는 달리 기업들이 여성 인력을 육성하고 각 구성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허금주(55) 교보생명 전무는 1990년 교보생명에 입사해 사원 출신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전무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는 세계 주요 20개국(G20) 산하의 여성 정책 기구인 W20의 한국 공동 대표이자 여성가족부의 청년여성멘토링 프로그램의 대표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 타계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주의 비서실장, 중국주재사무소 대표, 법인 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허 전무는 한국어를 포함해 중국어·영어·불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하는 국제통(通)이다.

올해 1월 취임한 박정림(56) KB증권 사장은 국내 증권업 역사상 최초의 여성 CEO다. 그는 2017년부터 KB국민은행의 WM그룹 부행장과 KB증권 부사장, KB금융지주 WM총괄 부사장을 겸임하며 증권업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1986년 체이스맨해튼은행에 입사해 처음 금융권에 발을 디뎠다. 조흥은행(1996년)·삼성화재(1999년) 등을 거쳐 2004년부터 KB국민은행과 연을 맺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세계 리스크관리전문가협회 임원직을 역임했다.

이들과 나이가 10년 안팎 터울인 ‘새내기 상무’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이주은(47) CJ제일제당 상무는 CJ제일제당 공채 1기 출신으로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공채 1기 출신 임원 중 유일한 여성이다. 이 상무는 1994년 CJ제일제당 입사 후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마케팅 부서에서 보내며 경력을 쌓았다. 2012년에는 브랜드 매니저 부장, 2016년 HMR(가정간편식) 마케팅 담당 사업부장을 맡았다.

남정민(44) 풀무원 상무도 지난해 상무가 됐다. 1997년 LG CNS에서 IT 개발자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012년 풀무원으로 자리를 옮겨 IT기획팀장을 맡았다. 현재는 신사업을 담당하는 U-biz사업부를 이끌고 있다. IT 전문가가 비즈니스 담당 임원이 된 것이다. 풀무원의 새로운 무인유통이라는 신사업 영역을 개척하고, 그 공로로 풀무원 혁신대상을 받기도 했다.

6월 21~25일 ‘이코노미조선’은 이들을 만나 임원이 되기까지의 여정과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조언을 구했다. 이들의 답변을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주 52시간 근무, 여성이 활약할 기회

조직이 변하고 있는 것을 체감하나.

박정림 “아주 많이 변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시행 등으로 술 권하는 문화와 야근이 사라졌다. 이제는 여성이 일하기에 훨씬 좋은 환경이다. 그동안 많은 조직이 일과가 끝나도 회사 사람들과 술 마시고 야근해야 일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문화 속에서 여성 인력이 빛을 보기는 어려웠다.”

허금주 “승진 평가 기준이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교보생명의 경우 부장 승진 때 경영진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해야 한다. 수차례 지켜보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이주은 “요즘에는 기업들이 수평적 문화를 지향한다. 이런 수평적인 문화 속에서 조직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재를 찾기 위해 분주하다. 남성이라서, 또는 여성이라서 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성 중심 조직 문화에서 여성은 어떤 제약을 받았나.

이주은 “여성 직원들은 회사 내 소식에 늦었다. 남성들끼리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회식 자리에서 정보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여성 임원이 없어 사내에 ‘멘토’라고 칭할 만한 존재가 없다는 점도 제약이었다. 남성 상사에게 털어놓기는 조금 부담스러운 개인적인 고민을 속으로 삭여야만 했다. 회사에 다닐 때 ‘고독하다’는 감정을 종종 느꼈던 원인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상사라는 존재에 깊은 애정이 있다. 부장이던 시절에 여성 임원을 처음 봤는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회사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말문이 트인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분을 보자마자 ‘언니’처럼 편안했다.”

허금주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에는 여성 선배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여성 직장인이 회사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 건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모든 일을 직접 부딪혀가며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당연히 꿈의 크기도 작을 수밖에. 1990년 교보생명에 입사하면서 내 꿈은 대리가 되는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대리가 됐을 때 정말 행복했다. 회사 사람들이 모두 ‘교보생명 역사상 최초로 여자가 대리가 됐다’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대리로 승진하던 날, 회사는 대강당에서 ‘여성 대리 탄생’ 축하 파티를 열어줬다. 동료들이 나를 보면서 ‘여자가 아이 낳고도 직장에 다닐 수 있구나’라며 충격받았다고 했다.”

박정림 “임원이 될 만한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기업 문화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성차별을 경험한 적 있나.

남정민 “1997년 첫 직장 입사 면접 때 ‘커피 심부름을 시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당시 ‘조직의 막내고 업무상 도움되는 상황이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질문이지 않나. 그런데 그 당시엔 이 질문을 이상하게 느끼지 못했다.”

허금주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은 적은 많다. 2004년 중국주재사무소 대표이던 때의 일이다. 중국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내가 한국말을 아주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보면 화들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중에 이들은 당연히 내가 한국계 중국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기업인 교보생명에서 해외 주재원이라는 요직에 젊은 한국 여자를 앉힐 리 없으니, 이 여자는 중국 현지에서 채용한 사람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그동안 한국 기업의 해외 주재원인 여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2019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 독일 대사관에서 한독상공회의소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가 여성 멘토링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독일대사관
2019년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 독일 대사관에서 한독상공회의소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허금주 교보생명 전무가 여성 멘토링의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독일대사관

여성 친화 정책 도입하면 남성도 혜택

일하면서 자녀를 키우기가 쉽지 않았겠다.

남정민 “그렇다.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입학 전인 어린이집을 다닐 때다. 남편과 내 직장에는 각각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직원 한 사람당 아이 한 명만을 맡아줬다. 이 때문에 출근할 때 온 가족이 한 차에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돌았다. 처음에는 남편 직장에 들러 둘째와 남편을 내려주고, 다음에는 첫째를 내가 다니던 회사 본사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겼다. 이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서야 나는 사업장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이걸 다하고 나면 2시간이 걸렸다. 고된 일이었지만 당시에는 직장 내 어린이집 자체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맡아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했다.”

허금주 “시어머니와 남편이 육아를 분담해줘서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가사 도우미도 고용해 집안일을 줄였다. 아이들이 어려서 엄마를 필요로 할 때는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지킬 수 있는 직무를 지원해서 일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후에는 고객의 요청에 24시간 대응할 수 있는 부서로 이동했다. 다 크고 나서는 상대적으로 엄마를 찾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시행해 여성 임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남정민 “회사 내에 다양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이 살아남으려면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직원을 이끄는 전형적인 리더 외에도 여러 유형의 리더를 배치해야 한다. 꼭 ‘여성’ 리더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리더들이 있어야 기업이 더 잘될 수 있다.”

허금주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도입하면 남성도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육아휴직 등으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남성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가도록 하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육아는 여성만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렸던 W20에 참가해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W20 공식 발표문에 ‘부모 모두의 의무 육아휴직(mandatory parental leave)’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도록 했다. 그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인 조직 문화에 억지로 적응해야 했던 남성들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남성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들도 육아휴직을 하고 자식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열망이 적지 않다. 현재 우리 본부에는 남성 직원 2명이 육아휴직 중이다.”

박정림 “여성이 ‘주로 여성들이 했던 업무’가 아닌 다양한 업무를 하며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전에는 여성은 주로 지원 업무에 배치했다. 이제는 이들을 현장 부서에 등용하고 요직에도 앉혀야 한다. 여성들이 그간 남성들이 주로 담당했던 직무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여성이 굳이 여성성 부정 말라

일부 여성들은 직장에서 소위 ‘여성성’을 지우고 ‘남성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박정림 “억지로 남성처럼 굴 필요가 전혀 없는데, 안타깝다. 여성의 장점을 살려 회사 생활을 해도 충분하다. 내 사례를 들어보겠다. 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탁월하다고 자부한다. 남성들끼리 있을 때는 딱딱하게 진행되던 회의도, 내가 들어가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추구하는 사회 트렌드에서 사람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은 굉장한 장점이다. 혹자는 그렇게 하면 CEO로서 권위가 떨어지지 않냐고 묻기도 하더라. 리더의 권위는 그 사람의 자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리더 자신의 업무 집중도와 능력에서 나온다. 나는 내 업무 능력에 자신 있다.”

이주은 “여성이 굳이 여성성을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소위 ‘여성성’과 ‘남성성’ 둘 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디자이너나 광고 기획자처럼 감성을 발휘하는 직군과 소통해야 할 땐 여성성을 살리고, 남성 동료와 이야기할 때는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남성성을 발휘한다.”

허금주 “돌이켜 보면, 나도 사회 초년생 때는 남성들처럼 셔츠를 입고, 헐렁한 정장을 걸치고 다녔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남성들처럼 옷을 입고 행동하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행동은 스스로 여성성을 지우기 위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제는 있는 그대로 여성으로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허 전무는 인터뷰하던 6월 21일,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박정림 “여성들이 ‘일과 가정 모두를 챙기는 완벽한 엄마’라는 말로 자기 자신을 옥죄지 말아야 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돈으로 해결하는 게 일하는 여성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일부 성공한 여성들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들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지어 먹였다’는 식의 무용담을 말한다. 하지만 요리하는 데 쓸 시간을 줄여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가령 부대찌개를 끓이면서 재료를 하나하나 다듬어서 요리하느라 두 시간을 쓰느니, 재료는 다 다듬어져 있고 끓이기만 하면 되는 것을 사서 시간을 아끼고 그 대신 아이들과 더 놀아주라는 것이다. 기업을 경영할 때와 똑같이 생각하면 매우 쉽다. 기업의 한정된 자본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 내에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따져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남정민 “계속 일하고 싶다면 나 자신에게 투자하라. 내가 일에 집중하는 시간,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만드는 시간은 돈을 주고 사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가사나 육아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또 리더로 성장하려면 멘토링이 중요하다. 특정한 사람을 멘토로 정하기보다 상급자를 만나는 모든 순간을 ‘코치받는다’는 자세로 임하면 좋다.”

허금주 “기회를 발견하면 ‘내가 하겠다’고 나서라. 내가 중국 주재원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일단 손을 들었기에 가능했다. 중국어를 한마디도 못 했지만 그냥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 출국하기 석 달 전부터 중국어 학원에서 기초만 배우고 바로 중국으로 떠났다. 또 인사(HR)나 홍보(PR) 등 지원 부서보다는 숫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서로 가면 좀 더 쉽게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금융회사의 경우 현장 경험이 있는 것이 임원 승진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주은 “자기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자기 구성원들을 다독일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면 좋은 기회가 오는 것 같다. 직장에서 여성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과장급 이상 여성들과 식사 자리를 갖는다. 이들을 만나고 나면 ‘여성 후배들이 보고 있으니,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민아·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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