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하루노(吉田晴乃) 게이오대 인문학,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경영학, 모토롤라 재팬, NTT 아메리카, 버라이즌 비즈니스 본부장, BT재팬 CEO, 일본 정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요시다 하루노(吉田晴乃)
게이오대 인문학,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경영학, 모토롤라 재팬, NTT 아메리카, 버라이즌 비즈니스 본부장, BT재팬 CEO, 일본 정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내가 겪었던 아픔을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 똑같이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목표,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일본의 경제단체연합인 게이단렌(經團連) 70년 역사상 첫 여성 임원을 지낸 요시다 하루노 W20 공동의장에게 여성의 경제활동을 독려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가 공동의장으로 있는 W20은 G20(세계 주요 20개국의 국제기구)의 연계 조직으로, 여성의 경제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논의하고 제안하는 국제기구다. 3월 23~24일 일본 도쿄에서 각국 대표들은 다섯 번째 W20 정상회의를 가졌다. 이때 W20은 각국의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을 2025년까지 25% 이상 높이겠다는 2014년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점검하자고 G20에 제안했다.

요시다 공동의장이 게이단렌 이사진 부의장으로 취임했던 2015년 6월, 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중 한 명”이라는 찬사를 그에게 보냈다. 그는 한국만큼 단단한 유리천장이 있는 일본 재계에서 ‘여성 최초’라는 기록을 세워나간 인물이다. 2012년에는 통신 서비스 회사인 BT재팬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면서, BT재팬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기용한 여성 CEO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은 지난 2017년 ‘세계의 뛰어난 리더 50인’ 명단에 일본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요시다 공동의장을 올렸다.

요시다 공동의장은 5월 14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인터뷰룸의 문이 열리자마자 유창한 영어로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며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그는 “ALC에 등장한 다른 연사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점심을 걸렀다”면서 넉살 좋게 웃고는, 탁자에 놓인 과일을 먹어가며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냈다.

요시다 공동의장은 2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혼자 딸을 키웠다. 캐나다 사람인 전 남편과 결혼 후 북미 지역으로 건너간 뒤 얼마 안 돼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이내 이혼했기 때문에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는 “어린 딸을 혼자 키우며 직장을 다녔고, 아이의 존재를 회사에 숨기기도 했다. 그래야 직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내 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웃었다.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한 이유는.
“일본에서는 도저히 일을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는 ‘12월 25일 이후까지 빵집에 남은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여자도 25세를 넘어가면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없어진다’고 했던 옛날 분이었다. 어머니의 사고 방식은 당시 일본 사회의 일반적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던 시점에 생사(生死)를 넘나드는 병을 앓았다. 병을 치료하는 데만 3년이 걸렸다. 구직활동을 시작하려니 이미 스물일곱이었다. 기업에서 선호하는 어린 여자가 아니었던 데다, 일본 경제가 침체기였기에 도저히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안 나왔다. 우리 부모님조차도 혼란스러워했다.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 시집가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여성에게 기회가 더 많은 캐나다로 떠나 지역 통신 회사에서 직업을 구했다. 영업직으로 들어갔는데, 남자들을 다 제치고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실적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영업실적 1등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물론 어려웠다.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머니의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고객과 골프를 치고 밤늦게 퇴근했다. 집에 와보니 딸이 내 얼굴을 그려놓고 그 옆에 ‘엄마는 항상 내 가슴에 있어’라고 쓴 종이를 식탁에 놔뒀다. 그런데 그 종이가 딸의 눈물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던 거다. 그날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타지에서 혼자 딸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처가 깊었다. 직장에는 딸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아예 결혼하지 않은 척했다. 일과가 끝난 후 치는 골프나 저녁 식사 자리가 영업직에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 자체가 협상의 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딸은 나를 보면 항상 울었다. 아침에 회사로 갈 때마다 ‘가지 마’라고 소리치며 매달리던 딸의 얼굴이 지금도 가슴에 사무친다. 그래서 ‘여성의 희생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자식에 대한 죄책감이 있으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일을 하다가도 자식 생각이 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커리어를 챙기는 것과 동시에 부모 역할을 원 없이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죄책감을 덜어줄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을 높이겠다고 했다. 변화를 체감하나.
“물론이다. 2012년 취임한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한 갈래로 ‘위미노믹스(Womenomics·여성의 경제 활동 강화)’를 선언했다. 일본 여성들은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역사적, 문화적인 이유로 노동시장에서 역량을 발휘하는 데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그 뒤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일본에서도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강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여성의 경제 참여율을 높일) 때가 됐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올해 3월 일본에서 열렸던 W20 관련 행사인 국제여성회의(WAW)에는 1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콘퍼런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행사 당일, 여성들이 새벽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전에 없던 강력한 에너지를 느꼈다. 여성들이 이 에너지를 기회로 삼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거리에 나가 여성 인권에 대한 시위를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W20과 같은 자리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고 정책 변화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사회 전체의 번영을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베 총리는 집권 2년째였던 지난 2013년, 상장사 임원 중 최소한 한 명씩은 반드시 여성으로 기용하도록 재계에 요청했다. 그리고 2년 뒤인 2015년, 상장사 유가증권 보고서에 여성 임원 비율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줄어드는 경제 활동 인구를 보완하려면 여성들이 더 활약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위미노믹스가 실효를 거두려면 기업이 움직여야 할 텐데, 정부가 어떤 정책으로 지원해야 할까.
“일본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서 가장 크게 효과를 볼 수 있는 정책이 있다.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옳은 일을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다.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보상을 해줘야 한다. 공공광고를 통해 이들의 선한 영향력을 알리고, 마치 ‘영웅’처럼 대접해줘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이런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에게도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소비자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런 기업들의 상품을 더 많이 사주는 것이다. 공정무역이나 환경 보호를 하는 기업의 상품을 구매해주는 것처럼.”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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