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커틀러 조지워싱턴대 학사, 조지타운대 외교학 석사,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웬디 커틀러
조지워싱턴대 학사, 조지타운대 외교학 석사,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가정에 소홀할 때도 있고 직장에 실망을 안길 때도 있을 겁니다. 그건 누구나 인정해야 해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죠.”

2006~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측 수석대표를 맡아 성공적인 협상을 이끌었던 웬디 커틀러는 “여성이 가정과 직장에서 균형을 잘 잡기 위한 방법이 있느냐”는 물음에 “딱히 좋은 방법은 없다”며 담담하게 얘기했다. 대신에 “일과 가정의 완벽한 균형은 한국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어려운 일”이라며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조언했다.

커틀러는 1988년 이후 미국의 대(對)아시아 무역 정책 분야를 전담한 통상 전문가다. 전(前)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로, 한·미 FTA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맡아 온 명실상부한 여성 리더다. 현재는 민간 싱크탱크인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PI)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 커틀러는 5월 14일 조선일보 주최로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스스로 너무 높은 기대치를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했다가는 배우자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또 그는 일터에서 여성으로서 받는 부당함에 막무가내로 달려들기보다는 “전쟁해야 할 때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관망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실 직장 선배’의 지혜인 셈이다.


2006년 한·미 FTA 수석대표였다. 여성 협상가로서 당시에 어땠나.
“여성이란 점은 내게 강점이 됐다. 당시 한국은 USTR의 여성 협상가를 부정적으로 봤다. 언쟁만 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달랐다. 미국 입장을 한국 대중에게 알리면서도 그들의 고민거리에 귀 기울인다면, 효과적으로 협상할 수 있다는 걸 빠르게 습득했다. 한·미 FTA 협상은 꽤 쉽게 진행됐다. 자유무역 국가를 만들자는 데 한·미의 목표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또 협상 도중에 한 번씩 웃는 게 상대에게 나를 더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고, 과거의 여성 협상가와 다르다는 인식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알아냈다.”

여성이 좋은 협상가가 될 수 있나.
“물론이다. 여성은 경청을 잘한다. 한 번에 여러 일도 잘 해낸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동시다발적인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여성은 이미 가정과 일터에서 멀티태스킹에 단련이 돼 있다. 다른 사람 마음을 잘 읽는 것도 여성의 강점이다.”

여성 리더로서 협상 때 힘들었던 점은.
“한 고위직 남성이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하지 않고 내 옆에 있는 남성 부하하고만 이야기하려 했을 때다. 내가 협상 대표인데도 말이다. 수치스러웠다. 내 부하도 이런 상황을 힘들어했다. 그때 나는 부당하다고 항의하면서 소란 피우기보다는 눈앞에 있는 회의를 잘 견뎌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에게 불만을 내보이는 대신 최대한 그와 눈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더니 상황이 점차 나아졌다. 일터의 여성은 전쟁해야 할 때와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한·미 FTA가 타결됐을 때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한 가지 더 꼽는다면, 당시 여덟 살이었던 아들과 협상장에 같이 갔을 때다. 난 일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닐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아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또래 친구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에 아들이 학교에서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더라. 매우 기뻤다.”

아들을 협상장에 데려갔을 때, 어떤 상황이었나.
“여성은 일·가정 균형을 맞춰야 하는 순간에 자주 놓인다. 난 당시 엄청난 업무량과 이동 시간,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쉽지 않았다. 워싱턴에서 협상이 있었는데 눈보라 탓에 아들 학교가 휴교했다. 근처에 날 도와줄 가족이 없어 할 수 없이 아들을 협상장에 데려갔다. 운 좋게도 행사장 경호원과 내 비서들이 아들과 놀아주며 잠시 아이를 맡아줬다. 그날 아들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보면서, 내가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가정과 일터에서 균형을 잡는 비결은.
“딱히 좋은 비결은 없는 것 같다. 여성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건 어렵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때로는 가정에 소홀할 때도 직장을 실망시킬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자신을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어떤 여성은 이룰 수 없는 높은 목표를 세워놓고 절망한다. 그러고는 배우자로서,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의 자신에게 실망한다. 최선을 다하되 목표치를 너무 높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는 조직 내 지위가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급격히 줄어든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공기업·사기업 관계없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가정이 있는 여성 대다수가 고위직에 올라가길 꺼리기 때문이다. 가정에 집중하기 위해 쉬운 일을 선호한다. 또 (고위직에 오르고 싶어하는) 남성은 여성에게 높은 자리를 잘 권하지 않는다.”

‘유리 천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성실하게 일했고, 운이 좋아서 유리 천장을 깰 수 있었다.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보일 때 그 기회를 잡는 게 중요하다. 한·미 FTA 협상 때, 난 자율권을 많이 얻었다. 이로 인해 내가 협상의 틀과 전략을 짤 수 있었다.”

어떻게 기회를 잡나.
“어떤 (좋은) 자리에 공석이 나면 바로 신청해라. 남성은 자격이 좀 안 되더라도 바로 신청하지만 여성은 많이 고민한다. 바로 신청해야 위에서 ‘이 사람이 승진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안다. 그래야 다음 인사에 고려한다. 여성은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돼도 우선 기회를 잡고 봐야 한다.”

한국 여성 리더 육성에도 힘쓰고 있는데.
“내가 있는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에서 무역 분야에 관심 있는 젊은 한국 여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는 고위직 여성이 워낙 없어 젊은 여성을 이끌어줄 멘토가 부족하다. FTA 협상 당시 100명 가까이 되는 미국 대표단에는 여성이 꽤 있었지만 비슷한 규모의 한국 대표단에 여성은 두 명뿐이었다. 그중 한 명이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인 유명희다(유 본부장은 ‘한국의 웬디 커틀러’라고도 불린다).”

여성 리더가 많아지기 위한 사회적·제도적 조건은.
“회사 고위직·이사진·입법부 등에 여성 비율을 구체적으로 정해놓는 게 중요하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면 정치인은 말로만 여성 리더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의무화는 안 된다. 결국엔 성별을 떠나 최적의 인재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여성 비율을 정해 권장하자는 얘기다.”

이다비 조선비즈 국제부 기자, 오홍석 조선비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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