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민 서울대 경제학부, 인디애나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 / 사진 이민아 기자
이창민
서울대 경제학부, 인디애나 주립대학 경제학과 박사 / 사진 이민아 기자

6월 2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경영관에서 만난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의 관점에서 임원급에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유리 천장을 살펴보다: 한국의 여성 이사들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쓰고 있다.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소속의 여성 이사 19명에게 ‘유리 천장이 있다고 보냐’는 내용의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분석한 논문이다. 설문 응답자 19명 중 10명이 ‘내가 다니는 직장에는 유리 천장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아직 유리 천장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여성 할당제를 통해 여성 임원의 비율을 높여 이사진의 다양성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조선’은 이 교수를 만나 성차별을 줄이는 것이 기업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물었다.


한국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3%에 불과하다. 이런 편중된 성비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성이 부족해져 기업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꼽고 싶다. 기업 내 성차별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정치적 올바름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 가치 상승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임원이 강점을 갖는 직무가 달랐다. 여성들은 위험 관리, 인력 관리, 기업 지배구조, 준법, 사회적 가치 등에서 전문성이 뚜렷했다. 남성 임원은 재무, 인수·합병(M&A), 조직 운영, 기술 등의 직무를 맡았을 때 더 큰 성과를 냈다.”

기업 입장에서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폈을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여성 직장인에게 ‘당신도 임원이 될 수 있고 승진도 남성과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면 아주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경쟁하는 사람의 풀이 더 커지기 때문에 사내 경쟁이 더 치열해지도록 하는 효과를 낸다. 여성이 받는 동기 부여의 강도가 남성보다 낮다고 여긴다면 ‘그동안 여성이 진급에 제약받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해봐야 한다. 많은 직장인에게 승진은 매우 강력한 동기 부여이기 때문이다.”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단 임원급에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신입 사원 등 사회 초년생 단계가 아니라 임원급 말이다. 성차별이 있는 기업에서 임원급까지 올라간 남성들은 현재 특혜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여성이 승급에 제약받으면서, 남성은 원래 겪어야 했던 거센 경쟁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보호받았다는 얘기다. 다만 노르웨이처럼 여성 임원 비율을 지금의 네 배로 높이라고 강요하는 등 급진적인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급진적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르웨이 사례를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2003년 노르웨이는 상장 기업 이사진의 여성 비율을 40%까지 높여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불과 3년 뒤인 2006년부터 이 법을 시행했다. 2003년 당시 노르웨이 상장 기업 이사진의 여성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법 시행 초반에는 40% 할당 비율을 채우려고 나이가 어리고 경영 경험이 없는 여성을 이사회에 앉히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주가가 떨어지고 실적이 악화했다.”

한국에서 여성 할당제를 하면 남성들 반발이 심할 것 같다.
“그래서 신입 사원급이 아닌 임원급에 여성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젊은 세대에 남녀 갈등이 존재하는데 갈등이 악화할 수 있다. 20대 남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여성 친화 정책에 상당히 불만스러워한다. 자신들은 살면서 남성으로서 특혜를 누린 적이 없는데 어째서 여성 할당제 때문에 채용 등에서 불이익을 받아야 하냐는 것이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기업들이 남성의 육아휴직 의무화 등 비용이 들어가는 여성 친화 정책을 실시할 만한 유인은 없어 보인다.
“여성 친화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게 꼭 기업의 비용 지출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최근 업계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기업에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의 성 다양성(Gender Diversity)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 투자자들은 이런 문제에 무관심하지만, 외국 투자자의 경우 이를 엄격하게 따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 교수가 언급한 글로벌 투자자 사례 가운데 대표적인 곳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다. CPPIB는 1999년 설립된 운용 자산 3167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연기금이다. 김수이 CPPIB 아시아·태평양 대표는 지난해 강연하면서 “성 다양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업에는 ‘넛지(간접적 자극)’나 ‘푸시(직접 요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PPIB는 2017년 이사진에 여성이 한 명도 없던 캐나다 기업 45곳에 ‘여성 비율을 늘리라’며 이사회 의장 선임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승진 기준이 남성 위주인 기업도 많다. 회식 참여와 같은 업무 외적인 것들이 영향을 준다는데.
“회식 참여 등 업무 외적인 요인이 승진 기준에 들어가면 회사의 보상 체계를 왜곡시킨다. 일을 잘하는 직원에게 ‘일 잘하는 것보다 회식 참여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줄 가능성이 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구나’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일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면 그 직원의 업무 효율은 떨어질 것이다.”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은 또 어떤 게 있나.
“한국 사회는 ‘재벌’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대기업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다는 특성이 있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문제가 터지면 다른 모든 현안을 집어삼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 주주와 행동주의 펀드조차 한국 대기업에 대해서는 성 다양성 어젠다 제시가 어려울 때가 있다. 이는 이미 시장에서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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