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욱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UC버클리 MBA, 조선일보 기자, 라이코스 대표,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부문장
임정욱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UC버클리 MBA, 조선일보 기자, 라이코스 대표, 다음커뮤니케이션 글로벌부문장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 북유럽 순방단의 일원으로 핀란드를 방문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6월 11일 헬싱키에서 열린 ‘한‧핀란드 스타트업서밋’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한 다섯 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한국의 스타트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핀란드 사람들에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사실은 아주 활발하며 스타트업 선진국으로 알려진 핀란드 못지않다고 자랑하고 싶었다. 내가 발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벤처투자는 2014년 1조6000억원에서 2018년 3조4000억원으로 4년 만에 2배 이상 급증했다.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은 회사도 2014년 900개사에서 2018년 1400개로 급증했다. 예를 들어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10억원 이상 벤처투자를 받은 한국의 주요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그래픽 자료를 2015년부터 만들고 있다. 2015년 말 77개사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530개사로 늘어났을 정도로 좋은 회사가 많아졌다. 누적 100억원 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도 이제는 150개사가 넘었을 정도다.

1조원 이상의 기업 가치를 가진 유니콘 스타트업도 한국에는 많다. CB인사이츠가 집계한 전 세계 유니콘 스타트업 360여 곳 에 쿠팡‧우아한형제들‧크래프톤‧비바리퍼블리카‧L&P코스메틱‧옐로모바일‧야놀자‧위메프 등 8개의 한국 스타트업이 올라가 있다. 이 밖에도 BTS의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타다의 쏘카, 새벽배송으로 화제인 마켓컬리, 글로벌하게 성공한 영상메신저앱으로 유명한 하이퍼커넥트, 부동산앱 직방 등 머지않아 유니콘이 될 수 있는 스타트업이 많다. 이런 고성장 스타트업들이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한국의 거리를 다니거나 TV를 켜면 다양한 스타트업 광고가 보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렇게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된 이유가 뭘까.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들고 싶다.

첫 번째로 한국 정부의 강력한 스타트업 지원정책이다. 창조 경제로 창업을 강조한 박근혜 정권에 이어 문재인 정부는 스타트업 정책을 다루는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키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만드는 등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모태펀드 등을 통해 한국 벤처캐피털에 창업 자금 공급을 1조원 이상 늘렸다. 청년창업사관학교 등 공공에서 진행하는 각종 창업교육프로그램도 지원 기업 숫자를 늘리고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외에도 기존에 있던 TIPS타운, 창조경제혁신센터 외에도 서울창업허브 등 공공에서 만든 스타트업 지원 공간이 전국에서 계속 문을 열고 있다. 한국만큼 창업 생태계에 정부 지원이 쏟아지는 나라도 없다. 확실한 차별화 포인트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 커뮤니티의 활성화다. 한국은 6~7년 전만 해도 스타트업 불모지에 가까웠다. 예비창업자들이 창업에 대한 정보를 얻고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날 공간이나 행사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강남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스타트업 지원센터가 많이 생겼다. 디캠프, 마루180,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구글캠퍼스서울 같은 곳에서 매일처럼 스타트업 관련 행사가 열리고 IT 기업이 많은 판교테크노밸리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도 많다. 그리고 성수동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셜벤처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리고 이제는 서울 곳곳에 위워크‧패스트파이브‧스파크플러스 등 공유오피스가 100군데 이상 생겨서 스타트업의 둥지 역할을 하고 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인재의 스타트업 유입 현상이다. 초기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한국도 해외 유학파들의 창업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카이스트‧포항공대 등 국내 연구 중심 대학 출신, 삼성전자‧SK 등 대기업출신, 맥킨지‧베인앤드컴퍼니 등 글로벌 컨설팅 회사 출신 그리고 다양한 여성 인재들이 창업계로 유입되고 있다. 해외 유학과 컨설팅 회사를 거쳐 창업한 마켓컬리의 김슬아 대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의 핵심 임원들도 나와서 창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네이버 CTO(최고기술책임자)를 역임한 송창현씨가 올 초 코드42라는 기술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이렇게 창업계의 층이 두꺼워지면서 이미 창업을 경험한 사람이 다시 창업에 도전하는 연쇄창업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네 번째는 늘어나는 벤처투자사들의 존재다.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정부 자금 등이 많아지면서 벤처캐피털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창업투자사와 신기술금융사를 합쳐서 한국의 벤처캐피털은 약 200개에 육박한다. 티켓몬스터 창업자인 신현성 대표가 만든 베이스인베스트먼트처럼 성공한 창업자들이 창업투자사를 만들어 활발히 투자에 나서고 있다. 또 해외 투자사들이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온 알토스벤처스는 쿠팡, 배달의민족, 토스, 크래프톤 등 한국 유니콘 4곳에 투자한 미다스의 손으로 유명하다. 또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들도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마켓컬리 등 약 60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알펜루트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다섯 번째는 이런 새로운 스타트업 서비스, 제품 이용에 적극적인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다. 신선식품부터 일상용품까지 쿠팡‧마켓컬리에서 주문하고, 토스나 카카오페이로 송금하고, 타다를 불러서 이동하는 등 한국 젊은이들이 스타트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변화에 무심하고 기존 대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편리하다면 새로운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젊은이들이 스타트업이 급성장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


6월 20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는 스타트업 대표부터 액셀러레이터, 기관투자자 등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 250명이 참석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매년 참석자 수가 늘고 있다. 사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6월 20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한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는 스타트업 대표부터 액셀러레이터, 기관투자자 등 스타트업 생태계 관계자 250명이 참석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매년 참석자 수가 늘고 있다. 사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물론 과제도 많다. 모빌리티, 핀테크, 헬스케어 등 해외에서 유니콘이 즐비하게 나오는 신성장 분야에 대한 규제가 여전히 엄격하다. 올 초부터 시작된 규제샌드박스제도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비해 2년 동안 소규모로 허용해보고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규제샌드박스제도는 진척이 너무 더디다. 게다가 규제를 완화할 해당 부처 공무원들은 아직도 저항이 심하다. 스타트업 정부 지원이 세계 최고라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생태계의 정부 의존이 과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을 이 정도 공급했으면 됐고 이제는 정책보다 시장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는 민간 중심의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큰 IPO(기업공개)나 M&A(인수‧합병) 같은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가 많아져야 한다. 공무원이 되기를 선호하는 안정지향적인 젊은이들의 성향, B2B, 기술스타트업의 부족, 성공적인 글로벌 진출 스타트업이 많지 않은 점 등을 극복하는 것이 숙제다.

결국 유니콘급의 기업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고 이들이 그에 걸맞은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자연히 풀릴 수 있는 문제다. 성공이 성공을 낳는다.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털을 ‘과보호’하고 일일이 관리감독하기보다는 큰 기업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 등 걸림돌을 열심히 치워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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