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더데리안(John Derderian) 듀크대 로스쿨, LSE 노사관계학 석사, 스캐든 압스 M&A부문 변호사, 호건 로벨스 산업·금융 변호사, AMC네트워크 변호사, 넷플릭스 콘텐츠 구매 디렉터 / 사진 넷플릭스
존 더데리안(John Derderian)
듀크대 로스쿨, LSE 노사관계학 석사, 스캐든 압스 M&A부문 변호사, 호건 로벨스 산업·금융 변호사, AMC네트워크 변호사, 넷플릭스 콘텐츠 구매 디렉터 /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아시아 지역에서 주력 콘텐츠로 투자하는 장르는 한국 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이하 아니메)이다. 두 장르는 아시아에서 열렬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콘텐츠 역량을 활용해 넷플릭스의 아시아 지역 회원 수를 늘려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일본 아니메 산업에서 넷플릭스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넷플릭스의 일본 콘텐츠 전략을 듣기 위해 7월 3일 서울 종로구 넷플릭스 한국 사무소에서 존 더데리안 일본 콘텐츠 총괄 디렉터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더데리안 디렉터는 지난해 1월부터 넷플릭스의 일본 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과 라이선스 구매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일본 콘텐츠 가운데서도 그가 특히 주력하는 장르는 아니메다.

인터뷰할 당시 그는 7월 5~8일 열리는 ‘아니메 엑스포(Anime Expo)’ 참가를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체류 중이었다. 아니메 엑스포는 10만 명이 모이는 북미 최대 일본 대중문화 행사다. 이곳에서 실력 있는 크리에이터를 발굴하고 그들에게 넷플릭스와 협업을 제의하는 것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는 “현지 문화권의 정수(精髓)를 담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최고 실력을 갖춘 크리에이터’를 찾아 함께 일한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더데리안 디렉터가 아니메 업계 경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1997년부터 미국의 이름난 로펌들을 거치며 인수·합병(M&A) 등 금융 분야 경력을 쌓은 변호사다. 2013년 넷플릭스에 ‘콘텐츠 구매’ 담당 변호사로 영입됐다. 더데리안 디렉터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가슴 한 쪽에 언제나 아니메에 대한 열정을 품고 살아왔다”면서 “넷플릭스 동료들에게 아니메에 대한 나의 철학과 애정을 꾸준히 얘기했고, 마침내 아니메 관련 업무를 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더데리안 디렉터가 ‘최고 실력을 갖춘 현지 크리에이터’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 실력의 크리에이터들은 그들의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이야기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넷플릭스로 끌어와야만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콘텐츠를 회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돼 6월 21일 공개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일본 문화권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았던 콘텐츠의 대표 주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1995년 방영돼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TV 아니메 시리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1997년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두 편을 HD 화질로 재구성한 것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은 더데리안 디렉터의 야심작은 올해 하반기 공개 예정인 일본 제작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인 ‘야스케’다. 일본 문화권의 감성이 녹아든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기계와 마법으로 피폐해진 일본에서 은퇴한 무사 ‘로닌(주인공)’이 어둠의 세력이 노리는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다시 칼을 잡는다는 것. 작품의 배경은 일본이지만, 무사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흑인이다.

‘야스케’라는 애니메이션 제목은 실제 16세기 일본에서 사무라이(영주나 다이묘를 섬기는 무사)로 활동했던 흑인 남성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야스케는 예수회 선교사의 노예로 일본에 왔다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눈에 띄어 사무라이가 된 모잠비크 또는 수단 출신으로 추정되는 흑인 남성이다. 야스케는 오다 노부나가가 사무라이 신분을 주면서 붙여준 일본식 이름이다.

더데리안 디렉터가 처음부터 야스케라는 캐릭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흑인 무사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많은 일본인이 이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신기한 마음에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면서 “조사를 거듭하면서 일본 사람이 야스케에게 갖는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제작해야겠다고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화상 인터뷰를 하던 중 ‘한국식 손가락 하트’를 선보이고 있는 존 더데리안 디렉터.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화상 인터뷰를 하던 중 ‘한국식 손가락 하트’를 선보이고 있는 존 더데리안 디렉터.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日 아니메 제작사의 구원 투수, 넷플릭스

더데리안 디렉터가 이끄는 넷플릭스 일본 사무소는 일본 아니메의 제작 방식을 뿌리부터 바꾸고 있다. 기존 일본 아니메는 대개 ‘제작위원회(製作委員會)’를 통해 만들었다. 여러 투자자가 제작위원회라는 일종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작비를 대는 형식이다. 손실이나 이익은 투자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작품이 기대보다 흥행하지 못할 경우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해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주로 방송사, 콘텐츠 유통 업체, 게임·장난감 회사 등 2차 창작물 제조사, 음반사 그리고 아니메 제작사 등이 참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니메 제작사가 영세하다 보니 투자금을 많이 출연하지 못한다. 수익이 나더라도 투자금을 많이 낸 방송사와 게임·장난감 회사가 가져간다. 제작사가 손실로 인한 도산 위험을 피하는 대신, 큰 수익을 내는 것은 포기하는 구조다. 작품이 ‘대박’을 내더라도 제작위원회 방식으로는 제작사가 간신히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일본 아니메 제작사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계약 조건은 간단하다. 제작위원회를 만들지 않는다. 제작비를 제작사에 바로 준다. 제작위원회와는 달리 내용에 간섭하지 않는다. 대신 넷플릭스는 작품의 단독 방영권을 가져간다. 더데리안 디렉터는 “크리에이터가 여러 귀찮은 문제로 타협할 필요없이 대담하고 끝내주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크리에이터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아니메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작품 한 편에 대한 단기적인 계약을 이어 가는 것이 기존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이었다면, 넷플릭스는 5년 단위의 장기 계약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제작사들이 미리 장비를 갖추고 제작 인력을 채용할 것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데리안 디렉터는 “넷플릭스의 일본 진출은 일본 아니메 산업을 완전히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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