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훈 한양대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경영학 석사, 전 공군사관학교 경제경영학과 교수(전임강사)
강승훈
한양대 경영학과, 서울대학교 경영학 석사, 전 공군사관학교 경제경영학과 교수(전임강사)

한국 직장인은 늘 바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17년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019시간이었다. OECD 평균(1726시간)의 약 1.2배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독일(1360시간)보다는 1.4배 이상 일한다. 하지만 부지런함에 비해 생산성은 초라하다. 같은 해 기준으로 한국의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34.3달러다. OECD 평균(48.2달러)의 71%,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 등 선진 7개 국가 평균(56.5달러)의 61% 수준에 불과하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격언이 민망한 성과다.

이제 생산성과 비효율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봐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나태함과 부족한 의욕 같은 후진국형 비효율이 아니다. 하는 일은 많지만, 되는 일은 없는 ‘부지런한 비효율’을 살펴봐야 한다.


부지런한 비효율의 다섯 가지 모습

바쁘지만 실속은 없는 부지런한 비효율은 다양한 형태로 우리 곁에 숨어있다.

첫 번째, 성과보다 나의 과시에만 몰두하는 ‘보여주기’가 있다. 보여주기에 물든 조직에서는 실행보다 계획이, 실속보다 형식이 중시된다. 성과를 만들어 내는 일은 뒷전이다. 구성원들은 내용이 빈약한 보고서를 근사하게 꾸미고, 멋진 발표로 나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 열심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필요 없는 야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실행과 성과는 없다.

두 번째, 책임 회피를 위해 필요 없는 업무 뒤에 숨어 결정과 실행을 미루는 ‘시간 끌기’가 있다. 불필요한 보고서와 거듭된 회의, 복잡한 결재를 핑계로 시간을 끄는 것을 말한다.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보고서의 사소한 오류나 정보 부족을 탓하며 재작업을 지시해 시간을 끈다. 시간 끌기가 습관화된 조직은 결국 발 빠른 경쟁자에게 시장을 내주기 마련이다.

세 번째, 조직의 자원을 개인을 위해 사용하는 ‘낭비하기’이다. 과도한 내부 의전(儀典)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직을 향한 충성과 상사를 향한 충성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이 경우 의전은 흔히 ‘조직을 위한 업무’라는 탈을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전과 같은 내부 행사에 자원이 낭비되면 고객을 위해 쓸 자원과 시간은 줄어든다.

네 번째, 내부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동료의 앞길을 가로막는 ‘방해하기’를 들 수 있다. 외부 경쟁으로 얻는 이익보다 내부 경쟁으로 얻는 이익이 기형적으로 커지거나 내부 경쟁에서 밀리면 생존이 어렵다는 생각이 이런 모습을 만든다. 이 경우 동료가 경쟁 상대가 된다. 과도한 내부 경쟁 속에서 나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은 공동 목표를 무시하게 만든다. 또한 동료 간 협조와 의사소통이 저하돼 조직 구성원이 서로에게 총질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책임의 분산과 개인적 편의를 위해 타인의 시간을 나의 시간처럼 낭비하는 ‘분산하기’가 있다. 불필요한 이메일의 남발이나 안건과 관련이 없는 사람까지 참석시키는 회의가 대표적이다. 메일 확인과 끝없는 회의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지만, 실제 필요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메일과 회의가 묻혀버리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부지런한 비효율의 진짜 무서움은 그것이 비효율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지런한 비효율에 빠진 사람들은 게으르지 않다. 수없이 회의를 하고, 이메일을 뿌려대며, 끝없이 절차를 만든다. 상사의 의전을 철저히 챙기며 유능함을 인정받기도 한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비효율을 잡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더 주의해야 한다.


일본 교토에 위치한 니덱 본사. 니덱은 정밀모터 업체다. 니덱의 자회사인 니덱리드는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성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교토에 위치한 니덱 본사. 니덱은 정밀모터 업체다. 니덱의 자회사인 니덱리드는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성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사진 블룸버그

日 니덱, 업무 배분과 형식적 절차 고쳐

부지런한 비효율에 중독된 조직은 엔진이 큰 소리로 돌지만, 바퀴는 돌지 않는 자동차와 같다. 구성원이 투입하는 노력이 조직의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모두 바쁘게 뛰어다니고, 끊임없이 보고서를 만들고, 회의가 이어지는 겉모습에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주 52시간 근무가 본격화된 지금, 성과가 나올 때까지 일한다는 접근은 통하지 않는다. 이제 꼭 필요한 일만 하면서도 원하는 성과를 창출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조직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우선 투입보다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찍 일어나서 늦게까지 일하는 것을 중시하던 ‘농업적 근면성’을 탈피해, 덜 일하면서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과정보다 위대한 성과에 초점을 둔다’는 넷플릭스의 가치관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최근 일하는 방식의 개혁으로 주목받는 일본 기업을 보자. 니덱(Nidec‧일본전산)의 자회사인 니덱리드(Nidec Read)는 영업사원들의 과도한 잔업과 생산성 저하로 고민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관행적으로 해오던 업무 배분과 형식적인 절차를 개선했다. 영업사원의 관할 구역을 나누던 기준을 거리에서 이동 시간으로 바꿨다. 또한 회사에서만 서류 작업을 하도록 했던 절차에 변화를 줬다.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정기 수주 관련 서류 작업은 내근직원이 영업사원을 대신해 할 수 있도록 한 것. 개선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영업사원 한 명당 평균 고객 방문 건수는 2016년 기준 한 달에 17건이었다. 하지만 2017년부터는 한 달에 100건 이상으로 많아졌다. 고질적인 잔업도 사라졌다.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절차를 없애 영업의 효율을 몇 배로 높인 것이다. 밤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직원의 성실함과 근면성만을 높이 사는 문화를 바꾸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성과였다.

그러나 불필요한 제도와 규정을 걷어내는 것만으로 일하는 방식이 성과 중심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없어진 규정과 절차의 빈자리를 또 다른 규정과 절차가 채우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이보다 조직과 개인 간의 관계가 달라져야 한다. 조직과 구성원의 관계가 단기적인 이해에 기반할 때, 구성원들은 조직 목표보다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비효율은 언제나 조직과 구성원 사이에서 벌어진 틈, 그곳에 뿌리를 내린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은 몇 차례의 경제위기 과정에서 잦은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조직과 구성원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효율을 없애기 위해서는 구성원과 조직이 이익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과거처럼 종신고용과 같은 관행을 그대로 적용하긴 어렵다. 그러나 나의 성과가 조직의 성과와 일치한다는 인식을 확대하기 위해 조직 성과에 기반한 보상 구조를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노력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조직과 구성원의 이해가 점점 일치하게 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절차와 형식, 나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 행위도 줄어들 것이다. 구성원 각자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조직을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루기 어려운 꿈이겠지만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강승훈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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