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스타 인문학자’들에게 강연 요청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기업들은 ‘스타 인문학자’들에게 강연 요청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인문학자들이 방송 출연과 책 출간 등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인문학이 ‘돈 버는 법’을 알려주는 학문은 아니지만, 최근 정치·사회·경제·산업 전반에서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를 원하는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특히 주목하는 분야는 고전이다. 고전에는 당대 권력자들이 펼쳤던 전략과 모험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일화를 통해 기업인들이 조직관리와 리더십 등 경영에 참조할 만한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리더의 옥편’의 저자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최근 출판업계와 기업 등에서 주목받는 스타 인문학자다. 그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 기관, 군대 등 다양한 곳에서 강연 요청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2017년 ‘EBS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한시기행’ 특강으로 이름을 알렸다. 김 교수는 고사성어를 주제로 세리CEO에서 한 달에 한 번 동영상 강의도 한다. 세리CEO는 경영자를 위한 온라인 강의 사이트로, 삼성그룹 내 기업교육 회사 ‘멀티캠퍼스’가 운영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세리CEO에 올라와 있는 그의 강연은 약 90편이다.

김 교수는 “고사성어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 당시는 여러 나라가 생존을 위해 각축하던 시기였다”면서 “지혜를 갖춘 인재들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며 활약하는 이야기는 기업인들의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사회 각층의 리더들이 고사성어를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지혜로 꼽은 것은 ‘자기반성’이었다. 김 교수는 “인문학은 ‘자기반성의 학문’”이라면서 “리더들이 자신의 행보를 돌아보게 만드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도 대표적인 스타 인문학자다. 동양철학에 조예가 깊은 박 원장은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국회 인성함양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KBS 1라디오에서 ‘3분 고전’을, EBS에서 ‘손자병법과 21세기’ 44편을 방영한 이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는 네이버에서 ‘고전의 대문’이라는 오디오 클립을 녹음하고 있다. 기업은 물론 각종 지방자치단체와 전문가협회 등도 그에게 강연을 해달라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박 원장은 기업에서 고전 인문학 강연을 요청하는 이유로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가르침을 경영자들에게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전을 통해 난세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노장 철학의 화두 ‘잘나갈 때가 위기’

그는 ‘노장 철학과 위기관리’를 사례로 들었다. 노장 철학이 던지는 화두는 ‘당신이 잘나갈 때, 이겼을 때가 위기’라는 것이다. 잘나가는 때에는 방심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구멍이 생겨 몰락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경고다. 기업이 실적이 좋을 때 자금을 펑펑 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경영자가 노장 철학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이 같은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과 건축이 번성했던 르네상스도 고전에 대한 재해석 덕분에 가능했다고 했다. 박 원장은 “당대의 예술가들은 중세 암흑시대에서 탈출할 방법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고민했다”면서 “결국 그리스·로마 시대 고전을 재해석해 ‘이성’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만들어 근대의 문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인문학자들은 대안 교육기관을 세워 수강생을 받는 등 대학이나 연구소를 벗어난 제3의 교육기관을 만들기도 한다. 1998년부터 서강대 철학과 교수로 일하다 지난해 대학을 떠난 최진석 건명원(建明苑·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라는 뜻) 원장이 대표적이다. 최 원장은 중국 도가 철학 강연으로 이름값이 높은 스타 인문학자다.

그는 뜻이 맞는 학자들과 손을 잡고 ‘세상에 없던 학교’를 꿈꾸며 건명원을 기획했다. 당시 뇌과학자로 유명한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김개천 국민대 공간디자인학과 교수, 배철현 전(前)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등이 의기투합했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서울 북촌에 있는 한옥 2채와 100억원을 선뜻 출연하면서 건명원은 2015년 3월 문을 열었다.

오 이사장은 당시 건명원 개원사에서 학생들에게는 “깨어나라. 이 시대를 버려라. 너부터 변화시켜라”라고, 그리고 교수진에는 “이 학생들을 이 시대의 반역자로 키우십시오. 이 시대를 거역해야 다음 시대의 중심에 섭니다. (그렇게) 해서 건명원이 이 사회에 커다란 울림이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당부했다. 인문·예술·과학 등을 가르치는 건명원은 매년 만 19~29세 학생 30명을 뽑는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학생들은 한문으로 된 노자의 ‘도덕경’과 라틴어로 된 키케로의 ‘국가론’을 암송해야 한다.


plus point

인문학자 출연한 ‘인문학 예능’도 인기

‘알쓸신잡’ 시즌3 출연진. 사진 tvN
‘알쓸신잡’ 시즌3 출연진. 사진 tvN

인문학자들이 출연했던 ‘인문학 예능’ 프로그램들도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인문학 예능 프로그램의 포문을 연 것은 CJ ENM의 채널 tvN에서 방영했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KBS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1박2일’을 제작했던 나영석 PD의 작품이다.

‘알쓸신잡’의 내용은 간단하다. 패널들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단, 패널들은 역사·문학·과학·철학·건축 등에 상당한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2017년 6월 시즌1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지난해 시즌 3까지 제작됐다. 시즌1~3에 유희열 작곡가, 유시민 작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김영하 작가,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김진애 건축가,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등이 출연했다.

tvN에서 2015년 9월~올해 5월까지 방영했던 ‘어쩌다 어른’은 이른바 ‘특강 쇼’다. 총 174부까지 방영됐다. 문학·역사·철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출연해 패널들에게 특강하는 형태의 프로그램이었다. 2016년에는 수능 사회탐구 스타 강사 최진기씨가 엉뚱한 작품을 장승업 그림으로 소개했다가 ‘인문학을 수험생들에게 수능 공부를 가르치듯 암기용 지식으로 전달하는데, 그 방식이 가볍고 내용에 오류까지 있어 문제다’라는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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