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음사의 2015판 사기열전 표지. / 2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1 민음사의 2015판 사기열전 표지.
2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초상화. 사진 위키피디아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추천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82년부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16대 고려대 총장을 지낸 경영학자다.

이 교수는 “불의와 모순이 가득한 역사의 현실에서 삶의 본질과 올바른 가치를 추구해 영원한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고전”이라며 추천 이유를 밝혔다. ‘사기열전’은 사마천이 중국 전한(前漢) 왕조 무제(武帝) 시대에 저술한 역사서 ‘사기’의 일부다. ‘사기’의 원제는 ‘태사공서(太史公書)’다. 태사공은 사마천이 자신을 지칭한 말로 ‘태사공서’는 ‘태사공이 지은 글’이라는 뜻이다. 300여 년 후인 위진(魏晋)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이 책을 ‘사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사기열전’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제왕이나 제후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한 개인들이다. 정치인이나 학자, 군인, 자객은 물론 광대와 백정까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살다 간 인물들 중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판단한 사람들의 일생을 수록했다. ‘자객열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홀로 적지에 뛰어들어 왕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왕도 두려워할 정도로 직언을 해 나라를 바른길로 이끌었던 충신인 급암과 정당시의 일생(급·정열전)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말과 행동을 하고 그들이 바라는 정책과 제도, 법을 만드는 공직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수는 “지식인들이 지식을 출세를 위해서만 이용하다 보니 사회와 국가가 잘못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학문을 연구해야 하는데 사마천이 ‘사기열전’을 통해 지식인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도 진정한 학문을 하라는 요구 같다”고 했다.


plus point

사마천“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다”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에 중국 섬서성 용문시 하양에서 태어났다. ‘사기’ 집필 도중 흉노족을 토벌하러 갔다 항복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샀다.

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죽음과 궁형(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한나라 법을 따르면 50만전(제후와 비슷한 부를 가진 부자가 2년 6개월간 한푼도 쓰지 않아야 모을 수 있는 돈)을 내면 형벌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돈이 없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택했다.

그는 궁형 이후 목소리가 여성처럼 변하고 수염이 없어져 외출도 힘들어졌다. 사마천은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하루에도 아홉 번이나 장이 뒤틀리고 집에 있으면 망연자실 넋을 놓고 무엇을 잃은 듯하다. 치욕을 떠올릴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다”고 썼다. 그는 죽을 수도 있었지만 역사서를 완성하기 위해 죽지 않았다며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사기’를 완성하는 것이 치욕을 피하기위해 깃털같이 가볍게 죽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기에 궁형을 받았다는 것이다.

사마천은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해 사성(史聖)으로 추앙받는다. 중국의 소설가 루쉰은 ‘사기’를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문장”이라고 했고, 마오쩌둥은 전쟁터에서도 항상 ‘사기’를 들고 다녔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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