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CES 2019’에서 한 참가자가 슬립테크 기기를 체험해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1월 ‘CES 2019’에서 한 참가자가 슬립테크 기기를 체험해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은 세계적으로 ‘잠 못 드는’ 나라다.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하루 평균 461분(7시간 41분)으로 일본(442분)에 이어 두 번째로 짧다. 회원국 평균 수면 시간(502분)은 물론 미국(525분), 멕시코(479분)보다도 짧다.

하루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슬립테크’로 이어지고 있다. 슬립테크는 수면(sleep)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잘 자도록’ 돕는 첨단 기술을 말한다. 특히 최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발달하면서 슬립테크 제품·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도 2019년 뜨는 신조어 중 하나로 슬립테크를 꼽기도 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슬립테크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수년 전부터 이 시장에 진출했다. 삼성전자는 2015년 이스라엘 IT 헬스케어 벤처기업 얼리센스에 2000만달러 투자해 ‘슬립센스'를 개발했다. 사용자 수면 패턴과 질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도록 한 센서였다. 또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 시리즈 기어S3부터는 수면 상태를 분석하는 기능이 들어가있다.

애플도 2017년 핀란드의 수면 추적 센서 제조업체 베딧을 인수했다. 베딧이 개발한 필름 형태 센서가 부착된 수면 추적기를 침대 밑에 설치하면 사용자가 언제 코를 골고 언제 깊은 잠에 빠졌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이 기술은 애플 워치에 적용돼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생명과학 계열사 베릴리도 센서로 수면 패턴을 추적하는 기술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최신 슬립테크 제품을 보려면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제품 행사 ‘CES’를 주목하면 된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는 슬립테크관이 따로 마련돼 각종 수면 관련 제품이 소개됐다. CES 행사는 올해로 52회째인데, 슬립테크관은 3회째 열리고 있다. 올해도 대표적이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슬립테크 제품으로 웨어러블 기기가 많았다.

외신들은 올해 CES 슬립테크관의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로 뇌파를 측정하는 ‘뇌파전위기록(EEG) 센서’를 꼽았다. EEG는 두피에 부착된 작은 센서를 통해 뇌에서 생성된 전기 활동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캐나다 뮤즈가 만든 ‘뮤즈2’는 이용자가 머리를 감싸는 밴드를 두르고 헤드폰을 연결하면 뇌파를 자극해 스트레스를 가라앉히고 잠들기 직전의 마음 상태로 이끈다.

수면마스크도 인기를 끌었다. ‘드림라이트’의 넓은 안대같이 생긴 마스크를 쓰면 마스크 안의 조명이 수면 상태에 적절한 빛과 색상으로 바뀐다. 잠들기 적절한 수준으로 마스크 온도가 변하는 것은 물론 코골이도 완화시킬 수 있다. 숙면을 돕는 수면 로봇도 나와 화제였다. ‘섬녹스’는 베개 모양의 푹신한 로봇을 내놨다. 사용자가 인형처럼 안고 잘 수 있는데, 이 로봇에는 가속도계, 오디오 센서, 이산화탄소 센서 등이 부착돼 있다. 숙면에 도움을 주는 심장 박동 소리나 자장가 소리를 들려주거나 빛과 알람 소리로 잠을 깨워주기도 한다.

한국의 스타트업 아모랩이 만든 수면 개선 웨어러블 기기 ‘아모플러스’도 CES에서 주목받았다. 목걸이 형태의 기기를 목에 걸고 자면 미세한 전자기 신호가 신경을 자극해 자율신경계 균형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신체 반응을 일으킨다. 혈관 확장과 심신 이완 효과가 있어 수면의 질(質)이 개선될 수 있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 아모랩의 슬립테크 기기 아모플러스. 수면 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사진 아모랩
한국 스타트업 아모랩의 슬립테크 기기 아모플러스. 수면 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 사진 아모랩
침대 회사 템퍼실리의 스마트베드. 자는 동안 심장박동수와 호흡 등을 측정한다. 사진 템퍼실리
침대 회사 템퍼실리의 스마트베드. 자는 동안 심장박동수와 호흡 등을 측정한다. 사진 템퍼실리

자는 동안 스스로 움직이는 스마트 침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형태로 있어왔던 침대도 기술 발달과 함께 첨단 옷을 입고 변신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침대’다. 사용자가 버튼 하나로 매트리스 각도를 이리저리 맞추고 인체 굴곡에 맞춰 형태를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IoT 기능을 접목해 잠자리 위치와 온도 등이 조절된다. 대표적인 스마트 침대 브랜드가 템퍼실리, 레스트, 슬립넘버, 매그니플렉스 등이다.

최근 스마트 침대 기능은 더 진화해 코골이를 완화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수면자가 코를 골기 시작하면 침대는 이 미세한 진동을 자동으로 감지해 매트리스를 움직인다. 머리 부분의 매트리스를 살짝 들어올려 기도를 확보, 코골이를 완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혈액순환을 도와 빠르게 잠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 놓는 부분을 미리 데워놓거나 스마트폰 앱과 연동돼 매일 아침 간밤의 수면 질과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해놓기도 한다.

다른 분야의 기업이 슬립테크와의 접점을 찾아 산업에 발을 들여놓기도 한다. 음향 전문 브랜드 보스는 수면을 유도하는 이어버드를, 통신사 LG유플러스도 수면상태를 체크하는 IoT 제품을 팔고 있다.


plus point

도쿄의 잠 못 드는 밤…슬립테크로 기회 찾는다

한국보다 더 ‘잠 못 드는 나라’ 일본에서는 슬립테크가 이미 많은 기업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일찌감치 수면 부족의 위험성과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본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인 442분(7시간 22분)이다. 끝에서 두 번째인 한국(461분)보다도 19분 적다. 범위를 좁혀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대 이상 성인의 40%만 놓고 볼 때 국민의 40%가 평균 수면 6시간 미만을 기록했으며, 총무성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직장인의 평균 수면 시간도 40년 전과 비교해 10% 감소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RAND)코퍼레이션은 수면 부족으로 일본이 입는 경제적 손실을 약 15조엔(약 171조원)으로 추정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3%에 달한다.

대표적인 곳이 수면 컨설팅 회사 ‘뉴로스페이스’다. 이 회사는 이불이나 매트리스에 설치해 이용자 심장박동수, 호흡, 수면 중 움직임 등을 측정해 데이터화하는 제품을 판다. 여기에서 얻은 데이터로 에어컨, 조명 등을 자동으로 조절해 쾌적한 수면을 돕는 서비스도 얹었다. 지난 4월부터는 전일본공수(ANA), 24시간 프랜차이즈 음식점 요시노야 등 기업을 대상으로 종업원 수면 개선 프로그램도 팔고 있다.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지난 4월 수면을 돕는 자사 제품들로 이뤄진 방을 ‘궁극의 침실’이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다. 시간대에 따라 색과 조도가 바뀌는 조명을 비롯해 센서로 이용자의 수면 상태를 파악해 온‧습도를 조절하는 기능까지 갖춘 방이다. 노키아도 매트리스 밑에 설치해 수면 패턴과 심장박동수를 분석해주는 기기 ‘노키아 슬립’을 팔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 정책이 일본 수면 산업을 키우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일본 사회는 초과 근무와 잔업, 과로가 만연했던 과거 기업 문화가 바뀌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고충성 코트라 후쿠오카무역관은 “일본과 함께 수면 시간이 짧은 한국에서도 질 좋은 수면에 대한 수요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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