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현 한국수면산업협회 회장·지오엠씨 대표
임영현
한국수면산업협회 회장·지오엠씨 대표

엠씨스퀘어는 1990년대 유행했던 학습 보조기다. 워크맨처럼 생긴 손바닥만 한 기계에 이어폰과 까만 눈가리개 장치를 연결하면 리드미컬한 빛과 소리가 나와 이용자의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 획기적인 콘셉트는 수험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고, 제조사 지오엠씨(당시 대양이엔씨) 주가도 코스닥시장에서 승승장구했다. 지오엠씨의 매출은 2002년 164억원까지 늘었지만, 이후 스마트폰의 등장과 유사 제품 난립으로 사세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2019년 지오엠씨는 수면 테크 기업으로 변신해 뜨고 있는 수면 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기존 엠씨스퀘어에 쓰인 기술을 응용해 목베개, 안마의자 등에 접목했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내장된 스피커에서 숙면을 유도하는 소리가 나오거나, 자동차 헤드레스트(머리 받침대)에 내장된 기기에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도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식이다.

임영현 지오엠씨 대표는 한국수면산업협회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 협회 회원사는 수면과 관련한 제품, 서비스를 내놓는 기업들이다. 에이스침대, 이브자리 등 수면용품 관련 제조사들이 주축이던 회원사 리스트는 올 초 통신 회사 LG유플러스가 합류하며 구성이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숙면 유도 웨어러블 기기 제조사 리솔, 블루투스 헤드셋 제조사 엠아이제이 등 벤처기업도 있다. 임 회장을 7월 23일 서울 금천구 한국수면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오엠씨가 만든 수면을 돕는 제품들. 1990년대 유행했던 학습보조기 엠씨스퀘어에 쓰인 기술을 응용해 목베개 등을 만들었다. 사진 지오엠씨
지오엠씨가 만든 수면을 돕는 제품들. 1990년대 유행했던 학습보조기 엠씨스퀘어에 쓰인 기술을 응용해 목베개 등을 만들었다. 사진 지오엠씨

학습을 돕는 회사에서 수면을 돕는 회사로 변신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나.
“그 이야기를 하려면 34년 전 엠씨스퀘어를 개발하게 됐던 때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미국에서 온 남편의 지인을 만나러 강남의 한 호텔을 찾았는데, 그 사람이 로비에서 이어폰을 끼고 단잠을 자고 있는 거다. ‘사람들이 오가고 어수선한 호텔 로비 한복판에서 어쩌면 저렇게 잘 자나’ 싶었다. 무엇을 듣고 있는지 물어봤더니 잠을 잘 오게 하는 소리가 나오는 기계라고 했다. 워킹맘이라 잠이 항상 부족했고 솔깃한 마음에 제품을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만든 게 엠씨스퀘어다.”

집중력 향상 기기인 줄 알았는데 잠을 잘 자게 하는 제품이었다니, 조금은 속은 느낌인데.
“잘 자면 집중력이 좋아진다는 개념에 착안한 것이 엠씨스퀘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살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집중력 향상 기능을 앞세웠다. 엠씨스퀘어는 흔히 집중력과 기억력을 도와주는 기능만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본래 엠씨스퀘어는 수면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숙면을 도와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준다.”

지금도 시중에 엠씨스퀘어가 있나.
“그렇다. 지난 30년 동안 300만 대를 팔았다. 지금은 크기가 작아졌다. 엠씨스퀘어에 들어가는 칩을 넣은 목베개도 나왔다. 안마의자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뉴스는 2006년 엠씨스퀘어가 학생들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 워싱턴대학 토머스 버진스키 교수가 학생들에게 빛과 소리가 나오는 장치를 착용하게 했더니 성적이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연구에 엠씨스퀘어가 쓰였다.

한국수면산업협회를 만들게 된 계기는 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출렁거렸다. 극심한 불황 속에 무너지는 회사가 속출하면서 사람들이 과다 경쟁과 스트레스에 그대로 노출됐다. 사람이 급격하게 변하는 환경에 처하면 바로 수면이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수면의 질과 양이 나빠지면 낮 동안 업무에 영향을 준다. 그즈음부터 수면을 돕는 제품을 본격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협회도 세웠다.”

협회는 어떤 역할을 하나.
“대한수면학회와 협력해 잠에 대한 세미나를 연다. 수면과 관련된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모인 만큼 잠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다. 과장·허위 광고를 막기 위해 자정 노력도 기울인다. 과학적 근거 없이 ‘이 제품을 쓰면 무조건 꿀잠을 잘 수 있다’ 등의 광고를 하면 회원사가 서로 자제하자는 목소리를 낸다. 실제로 협회 회원사 한 곳이 자사 베개 제품의 기능을 과대 포장해 내부에서 경고 조치를 했다.”

우리나라에서 수면용품의 성능을 인증해주는 마크는 한국수면산업협회에서 발행하는 ‘굿 슬립마크’가 유일하다. 국내에 다른 인증기관은 없으며, 품질 보증제도가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다. 그만큼 수면 산업이 시작 단계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생산성본부와 ‘수면환경관리사’ 라는 자격증을 만든 이유는.
“학교와 기업에 학생과 직원의 건강을 살피는 전문 의료진이 상주하듯 수면 상태를 관리하는 수면 전문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면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잠이 부족하면 심혈관계 질환 발병률은 8배, 치매와 당뇨는 5배, 우울증은 3배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면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이들이 주변에 많아지고 이를 통해 숙면을 취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다.”

수면 산업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는가.
“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는 제품부터 문제없이 잘 자는 사람이 쓰는 제품까지, 잠과 관련된 제품과 서비스를 총괄한다고 보면 된다. 침대, 베개, 매트리스는 기본적인 수면 제품이다. 수면 장애 환자를 치료하는 수면 전문 클리닉과 수면 관련 의료 기기, 숙면을 유도하는 조명·소리·향기 제품이 들어간다.”

우리나라 수면 산업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2011년 4800억원이었던 국내 수면 시장 규모는 2015년 2조원으로 커졌다. 올해는 3조원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수면 부족이 졸음운전 등 사회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수면 산업은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했다. 잠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동통신 회사 LG유플러스가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측정하는 제품을 내놓을 정도로 기업들이 질 좋은 수면을 돕는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수면 산업의 방향을 예측한다면.
“침대 회사가 IT 업체와 협력하는 등 산업 간 융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장에는 리모컨으로 등받이를 상하로 조절할 수 있는 가정용 전동 침대(모션베드)가 나왔다. 전통적인 수면 제품인 베개, 매트리스에도 IT 기술이 접목될지 모를 일이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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