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평 호세이대 경제학과,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 LG경제연구원 / 이지평 위원이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정재형 선임기자
이지평
호세이대 경제학과, 고려대 경제학과 대학원, LG경제연구원 / 이지평 위원이 8일 서울 여의도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정재형 선임기자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적용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이외에도 부적절한 사례가 나오면 개별 허가 대상으로 추가하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마치 수도꼭지를 잠갔다가 살짝 풀고 맘에 안 들면 또 꽉 잠그고 하겠다는 것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일본은 앞으로도 한국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계속 수출 규제를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이 위원은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에서 자라 대학 졸업 후 한국에 정착했다. LG경제연구원에서 31년 동안 일했고 격월간지 ‘재팬 인사이트’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통상·산업 관계를 연구해왔다. 이 위원에게 최근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해 여러 얘기를 들어봤다.


일본이 경제 보복에 나선 배경은.
“크게 세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한 전략 물자를 다른 나라로 보내지 않았나 하고 일본이 의심한다. 표면적인 이유일 수는 있지만 전략 물자가 다른 나라로 갔다는 증거가 있다고 하니까. 물론 북한으로 간 건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두번째는 징용 판결 문제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데 한국은 그 해석을 달리한다. 일본에서 볼 때는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정신을 부정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체제에서 양국이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이렇게 발전해왔는데 이 체제를 한국 정부가 깨려고 하는 것 아닌가 불안해 한다. 한국 정부가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을 보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징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서 한국 정부에 보상했으니까 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돈을 내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물론 이후 관련 일본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근데 지금 정치적으로 일본의 참여는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대일 청구권 혜택을 많이 본 포스코가 있으니까 한국 정부가 나서서 기금을 만들고 포스코 중심으로 관련 한국 기업들을 먼저 참여하게 하고 나서 일본 기업들을 참여시키는 방식 말인가.
“그런 방식으로 해서 뭔가 해결해야 하는데 한국 기업이 많이 내야 하느냐, 일본 기업이 많이 내야 하느냐,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하느냐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있을 것 같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도 물밑에서 뭔가 논의하긴 할 텐데 쉽지 않은 문제다.”

세 번째 배경은 뭔가.
“일본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한국 산업을 경계하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을 것 같다. 한국의 차세대 산업 성장 가능성을 기술 수출 규제로 차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 외교, 통상 등을 총망라해 모든 것을 동원하면서 전략적인 이득을 추구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일본은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겠지만 과연 트럼프 대통령처럼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움직였을까, 한국 정부의 행동에 너무 화가 나서 즉흥적으로 대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준비는 많이 했지만, 산업계 쪽을 설득한 것 같지 않다. 산업계는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방침을 전혀 몰랐다는 거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일본 입장도 생각해 달라는 일회성 조치일까, 아니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을 빼고 가겠다는 걸까.
“일본은 기초가 탄탄하니까 자성반도체, 양자 기술, 로봇, 헬스케어 등 차세대 산업이 구축돼 가는 단계다. 한국은 일본과 협력해야 할 게 많다.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등 많은 산업이 일본 기술의 도움을 받은 거라고 본다. 기술을 베꼈다는 생각도 있다. 차세대 산업은 한국이 쉽게 못 할 텐데, 이번에는 예전처럼 기술을 유출하지 않겠다, 견제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뺄 수는 없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시장 점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타격이 있어서 한국을 뺄 수는 없다.”

어쨌든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적용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중 일본 기업이 수출 허가 신청한 1건을 허용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이 그걸 발표하면서 한 말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3개 품목 이외에도 개별적으로 부적절한 사례가 나오면 개별 허가 대상으로 추가하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했다. 수도꼭지를 잠갔다가 살짝 풀고 맘에 안 들면 또 꽉 잠그고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우리(일본) 말 좀 들어라’고 하는 건가. 강제징용 판결 나고 일본 정부가 협의하자고 했는데 우리 외교부는 삼권분립을 얘기하면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고 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 잘해야 한다. 우리 정부 대응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안보, 외교, 통상 등을 망라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것은 잘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딜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진다. 일본은 정치 문제에 경제를 이용했지만 우리는 경제 문제에 정치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언급한 것도 한 예다. 북한 상황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받을 정보가 더 많다.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분석하는 레이더 부문은 더 앞서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수입선 다변화, 소재 산업 육성을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도 있고 반론도 있는데.
“기술 문제보다는 수익이 나느냐, 즉 경제성의 문제다. 불화수소의 경우 대기업들은 품질 문제도 있다고 한다. 국산 제품이 현재는 일본 수준을 못 따라오니까. 대기업들은 일본 소재 기업들에 맞춰 설비투자를 했다. 무슨 말이냐면, 반도체 공정이 1000가지가 있다면 불화수소는 이 중 10% 정도에 사용된다. 10%인 100개 공정에 들어가는 불화수소의 순도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공장 현장에서 축적된 제조과정이 있다. 소재를 바꾼다면 해당 설비에 써보면서 맞춰가야 한다. 100가지 공정이라고 하면 시행착오 등의 과정이 2~3년 걸린다. 그래서 겨우 맞춰 놨는데 일본 기업이 낮은 가격으로 들어오면 그것도 문제다. 일본 기업들은 설비투자의 감가상각이 거의 끝났으니까 가격을 낮출 수 있는데, 우리 중소기업들은 초기 설비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이걸 경제성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경제성이 떨어지니까 국산화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한·일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까.
“해결 안 되는 상태가 좀 오래 지속되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장기적 해결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강제징용 문제 등이 당장 해결은 안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약간 좋아지면서 그렇게 나가야 하지 않겠나. 정치권에서 양국 정상 간의 물밑 협상으로 서로 퇴로를 만들어 주면서 대화를 해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도 2020년 도쿄올림픽이 있으니까 그 전에 해결하려 하지 않을까.”

낙관적으로 보는 것인가.
“쉽지 않다. 희망 섞인 기대다. 어쨌든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발표했던 7월 1일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스스로 대비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정재형 선임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