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 와세다대 광산과, 캐나다 앨버타대 수학 박사, 한양대 수학과 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 서초동 수학문화연구소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용운
와세다대 광산과, 캐나다 앨버타대 수학 박사, 한양대 수학과 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6일 서울 서초동 수학문화연구소에서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김용운(93) 한양대 명예교수는 1969년부터 1993년까지 한양대에서 수학사를 강의한 학자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광주제일고에서 수학 교사로 교편을 잡았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광주제일고 당시 제자다. 하지만 그는 수학자로서뿐 아니라 일본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고 고베대학과 도쿄대학, 일본 국제문화연구센터 객원교수를 하면서 일본을 연구했다. 1989년 출간된 저서 ‘일본의 몰락’에서 거품 경제의 붕괴를 예측하기도 했다.

8월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김 교수의 개인 연구실인 수학문화연구소를 찾아 갈등을 겪고 있는 한·일 관계의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33㎡(10평) 남짓 크기의 연구소는 사방에 빽빽하게 책들이 꽂혀 있었다. 아흔을 넘긴 노학자는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일본과 갈등 관계를 조장하는 정치인들의 언행, 그들의 외교 방식은 이성을 잃어버린 것”이라며 “이제라도 이성을 되찾고 어떤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한·일 관계가 갈등에 빠진 원인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인 ‘원형(原形‧집단적 무의식의 근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일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 정반대다. 일본인에게 있어 역사는 강(江)이다. 강물이 계속 흐르듯 과거는 물에 흘려보내고 미래의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즈니 나가스(水に流す)라는 표현은 원래 뜻이 ‘물에 흘려보낸다’는 의미지만 ‘과거에 있었던 갈등을 모두 없던 일로 한다, 앙금을 풀어버린다’는 뜻으로도 쓴다. 반면에 한국인은 역사를 흘려보내지 않고 계속 되짚어 반복적으로 기억한다. 양국이 친해지기 위해선 이런 원형의 차이를 알고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원형의 차이에도 지금까지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최근 갈등이 심해진 이유는.
“한·미·일 3국의 협력 관계를 이루던 패러다임이 깨졌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한·일 관계 형성에는 미국이 큰 영향을 줬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일 3국이 협력 관계를 이룬 것이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일본의 기술력과 미국의 시장, 한국의 생산성, 이 세 요소를 활용해 협력했다.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높은 생산성이 있는 우리가 일본의 기술력을 활용해 (반도체 등)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미국 시장에 팔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 국교 정상화를 수용했던 것도 이런 한·미·일의 협력 방식을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을 고려해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를 덮고 일본과 협력하자는 패러다임이었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를 계승했다. 하지만 한국이 경제 성장을 이루면서 일부 정치인이 이제는 일본과 협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면서 일본과 협력하는 패러다임을 깼다. 일본이 반발하는 이유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이후 패러다임에 금이 갔고 지난해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로 완전히 깨졌다. 문제는 일본과 협력해 온 한국 기업들이다. 지금 상황은 정부가 일본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혀 합의하지 못하고 깨기만 한 것이다. 준비도 없이 저질러버렸으니 기업들은 어떻게 하나.”

정부는 북한과 협력하면 단숨에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소위 평화경제다. 실현 가능성은 있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 미국은 정부가 개성공단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데, 어떻게 더 많은 협력을 하나. 앞으로 북한과 경제적으로 더 가까워지려고 하면 미국에서 강한 압력을 가할 것이다. 평화경제는 현실성이 없다.”

한·일 갈등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나.
“반일 감정을 선동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안타깝다. 양국 간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이 일어나면 자제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데 국민을 선동하고 그것을 이용해 외교하고 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이다. 떨어지면 크게 다친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여당 대표가 일본산 정종(사케)을 마셨는지 한국산 청주를 마셨는지를 놓고 국회에서 싸우는 나라가 이성적인 나라인가? 그것이 현 엘리트들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2일 한 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정종을 마셨다는 보도가 나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됐다. 이날은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배제하기로 한 날이었다.

엘리트들이 이성을 잃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성을 잃었다고 본다. 이제 이성을 되찾고 일본을 대해야 한다. 내가 이성이라 말하는 것은 ‘국가 이성’이다. 국가 이성은 단순히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사고를 말한다. 17세기 프랑스의 재상이던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Richelieu·1585~1642년)이 주창한 개념이다. 그는 가톨릭 추기경 신분이었음에도 신성로마제국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톨릭의 반대 세력인 개신교 편에 가담했다.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입각한 정치를 한 것이다. 우리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일본과 싸우는 것이 과연 국익을 위한 일인가를 말이다.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 이성이 없는 곳은 국가도 아니며 국가 이성 없는 행위는 외교도 아니다.”

일본이 경제 보복으로 공격하는데도 대응하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일본이 한국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은 계속 한국이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독도에 가고,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고, 징용공 문제로 소송을 거는 것을 과거사를 이용해 공격한다고 본다. 일본과 갈등을 일으켜서 무슨 이익을 얻겠나. 이웃 나라는 서로 믿고 살아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를 보자. 백년전쟁(1337~1453년에 진행된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을 비롯해 수차례 전쟁을 했지만 지금은 EU 안에서 협력하고 있다. 그게 역사의 방향이다.”

정부에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이 있나.
“신숙주(1417~75년‧조선 초의 문신)와 서희(942~998년‧고려 초의 문신‧외교관)처럼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한 실용주의자들의 정신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서희는 중화 사대주의라는 사상적 올가미에 갇혀 있던 고려 조정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오랑캐라 불리던 거란과 대화하며 외교를 통해 강동 6주의 영토를 다시 얻었다. 거란의 명분을 세워주면서 실익을 챙긴 것이다. 조선 통신사 서장관(외교 문서를 기록하는 관직)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신숙주는 일본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가는 곳마다 산천의 경계를 기록해 지도를 만들었다. 제도와 풍속, 각지 영주의 강함과 약함도 세밀히 살폈다. 일본의 실체를 알려고 노력한 것이다. 신숙주는 당시 왕이던 성종(조선 9대 왕‧재위 1469~95년)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제발 일본을 조심하십시오. 가장 가까운 나라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큰 봉변을 당할 것입니다. 잘 다뤄야 합니다.’ 일본의 위험성을 정확히 알고 국익을 위해 친교 관계를 유지하라는 권고였지만 이후 조선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일본을 무시했다. 결국 조선은 임진왜란이란 화를 겪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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