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 연세대 법학과, 와세다대 국제대학원, 외교부 주일대사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 신상목 우동명가기리야마본진 대표가 12일 오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신상목
연세대 법학과, 와세다대 국제대학원, 외교부 주일대사관, 외교부 G20정상회의 행사기획과장 / 신상목 우동명가기리야마본진 대표가 12일 오후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서울 지하철 강남역 3번 출구와 접해 있는 골목길로 100여 m를 걸어가면 ‘우동명가기리야마본진’이라는 우동집이 있다. 이 우동집은 외교관으로 17년간 근무했던 신상목 대표가 일본 근무 시절에 알게 된 재일교포 3세와 의기투합해 세운 곳이다. 2012년부터 이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 둘은 일본의 우동 명인 기리야마를 찾아가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우동 국물 우리는 법과 면 뽑는 법을 배운 후 함께 창업했다. 외교관은 공직을 버렸고 재일교포 3세는 일본을 떠나 한국에서 8년째 살고 있다.

신 대표는 일본통으로 유명하다. 주일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일본사’ 등 에도막부 시대(1603~1867)를 다룬 책을 출간했고 언론 기고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일본을 알리고 있다.

12일 우동명가기리야마본진을 찾아 갈등을 빚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물었다. 오후 3시쯤 도착한 식당은 한산했다. 5시 30분까지 저녁 영업을 준비하기 위해 손님을 받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신 대표는 10여 명의 식당 직원과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왼쪽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알파벳으로 새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영락없는 우동집 주인이었지만 한·일 관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는 “일본인은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규정한 법적 기초가 무너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청구권 협정에 따른 중재위원회 구성이나 국제사법재판소(ICJ) 국제 재판 등의 방법을 고려해봐야 하는 단계”라고 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으로 한국 산업을 공격한다고 봐야 하나.
“아니다. 일본은 단지 굉장히 신뢰하고 있는 특급 우방에만 주는 일종의 특혜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일종의 경고다. (반도체 등) 한국의 산업을 공격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일본에 한국은 굉장히 중요한 나라다. 따라서 일본은 어떻게든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깊은 상호 의존 관계이기 때문에 한국을 공격하면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발생한다. 한국을 죽이기 위해 일본 기업이 받을 손해를 감수하고 강공책으로 나간다? 그런 계략을 짤 정도로 일본 정부가 강심장은 아니다.”

왜 일본은 한국에 불신임한다는 경고를 보내나.
“일본에서는 지난해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로 일본과 한국 관계를 규정한 법적 기초가 무너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그 부수 협정인 청구권 협정을 맺고 양국 간 배상 문제를 끝내기로 했다. 더 이상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한국 정부가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이 그 합의를 깨고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일본은 이것을 일본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으로 본다. 일본 입장에서 이번 판결을 그대로 놔두면 한국의 다른 피해자들이 또 어떤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지 알 수 없다. 청구권 협정을 믿고 한국에 진출한 많은 일본 기업이 위기에 처했기에 일본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갈등이 오래갈 것으로 보나.
“이제 겨우 시작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재산권을 빼앗는 강제 매각을 집행할 경우, 일본은 사활을 걸고 대항할 것이다. 양국의 감정선이 격앙된 상태로 갈등이 시작됐고 이 갈등이 더 심해질 일만 남은 것 같다.”

양국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근본 원인 중 하나는 한국이 이번 문제를 역사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배상하지 않으려 하고, 경제 보복을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군국주의로 돌아가려 획책하고 있고 아베가 그 선봉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을 악마처럼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증오와 반감을 부추긴다. 반면 일본은 한국 법원이 배상을 다시 묻는 것을 국가 간 약속(청구권 협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일본이 하는 이야기는 청구권 협정에 따라 냉철하게 대화하자는 것이다.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럼 그 다른 부분은 뭔지, 다른 의견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협정에 근거해 이야기해 보자는 주장이다.”

청구권 협정은 행정부가 체결한 것이지만 판결은 대법원이 냈다. 삼권분립 원칙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일본이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이 일본에 효력을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행정부에서 청구권 협정을 맺어 더 이상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 약속을 이행해 대법원 판결이 일본 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가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내놓은 첫 공식 반응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거나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라는 게 아니고 일본에 효력을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국내에 효력을 미칠 때는 독립성이 있지만, 외국에 효력을 미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삼권분립 원칙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교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양국 갈등의 해법은 무엇인가.
“청구권 협정에 명시된 해결 방법이 있다. 협정 3조에 양국 간 협정의 해석이나 시행에 관한 분쟁이 있을 때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해결하도록 한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명씩 중재위원을 선임하고 두 위원이 합의한 제3국 위원을 선임해 3명으로 중재위를 구성한다. 이런 방식의 합의가 안 되면 한·일 양국이 각각 한 국가씩을 지정한 후 그 나라에서 위원을 1명씩 선임한다. 또 두 나라에서 다른 나라 한 곳을 합의해 정한 후 그 나라에서 위원을 선임한다. 중재위의 중재도 양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ICJ에서 국제 재판을 받는 방법도 있다.”

국제 재판으로 갈등을 해결한 사례가 있나.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례가 있다. 2000년, 독일은 ‘기억, 책임, 미래 연방 재단’을 설립해 나치 독일 시절의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했던 이탈리아인 루이키 페리니가 이탈리아 법원에 ‘이 재단에서 배상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독일 재단이 페리니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미 이탈리아와 배상 의무를 이행하는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인 개인에 대한 배상 책임은 없다’고 맞섰다. 외교 분쟁이 됐는데, ICJ가 독일 손을 들어줬다. 그렇지만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는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분쟁이 있을 때 각자 자기주장만 하게 되면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면서 갈등이 심화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삼자의 판단을 받아보려 했던 것이다.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각자 입장이 있다. 1965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문제라면 제삼자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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