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 위치한 삼성SDI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조감도. 사진 삼성SDI
헝가리에 위치한 삼성SDI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조감도. 사진 삼성SDI

폴란드 남서부 지에르조니우프시는 인구 3만 명이 채 안 되는 조용한 시골마을이다. 차를 타고 둘러보면 너른 평야를 한가롭게 오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평화로운 곳이다. 이 마을에는 올해 4월부터 바쁘게 가동되는 공장이 있다. LS전선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 생산기지다. 왜 한국 기업이 폴란드 시골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을까. 세계 전기차 배터리 업계가 폴란드 등 중·동부 유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유럽의 자동차 공장, 부품업체가 밀집해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 전기차 생산 체제로 바뀌어가고 있다.

폴란드와 이웃나라 헝가리에는 이미 한국 배터리 3사(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모두 진출해 배터리를 생산하면서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과 납품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한국 경제성장을 지탱하던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전자·화학이 집약된 전기차 배터리가 앞으로 10년 이상 한국 경제의 중요한 먹을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메모리반도체의 매출을 뛰어넘을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규모가 연평균 25%씩 성장해 2025년 1600억달러(약 182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2025년 1490억달러(약 169조원)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메모리반도체 시장보다 110억달러(약 13조원) 큰 수준이다. 6년 안에 한국 최대 수출품목이 메모리반도체에서 전기차 배터리로 바뀌는 지각변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 개념도.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 개념도.

기계제품에서 전자제품으로 바뀌는 車

한국 단일 제조업 중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은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해 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인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구조가 단순하다. 배터리, 모터, 플랫폼(차의 뼈대가 되는 차체)이 사실상 전부다. 이 중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원가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기차용 배터리가 글로벌 제조업의 새로운 ‘주전장(主戰場)’이 된 것이다. 한국 배터리 3사가 동유럽 등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현재 110만 대 규모인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하이브리드카 제외) 판매량이 2020년 390만 대, 2025년 1200만 대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 완전 자율주행차 상용화 등과 맞물려 전기차 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배터리 전쟁은 이미 치열하다. 중국의 CATL은 2017년부터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앞서 세계 1위는 일본 파나소닉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순위 경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우리 배터리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느냐에 따라, 배터리가 한국 경제에 제2의 메모리반도체가 될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자동차산업은 앞으로 배터리를 중심으로 모터, 디스플레이, 비메모리반도체 등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언젠가 전기차가 대세가 돼 자동차가 기계제품에서 전자제품으로 변신하면, 한국의 전통 자동차산업이 축소되더라도 관련 산업은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배터리 3사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경쟁력이 충분하다. 주요 전장 부품인 디스플레이는 고급제품을 중심으로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비메모리반도체 육성을 통해 메모리반도체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일본과 분쟁으로 갑자기 소재산업을 육성하자고 강조하는 것보다 이미 한국에 경쟁력이 있는 전기차 배터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산업 대책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종합 육성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폴란드 배터리 부품 생산기지 현장 취재와 각국 전기차 배터리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은 커버스토리를 소개한다. 본격적인 배터리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쩌면 한국 제조업, 더 나아가 한국 경제의 미래가 이곳에 달려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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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배터리(lithium ion battery) 방전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는 이차 전지(충전이 가능한 전지)다. 에너지 밀도가 높으며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자가 방전이 일어나는 정도가 적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방산산업, 자동화시스템, 항공산업 분야에서도 폭넓게 쓰인다.

전고체배터리(all solid state battery)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기존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차세대 배터리. 5분이면 80% 충전이 가능하다. 주행거리도 리튬이온배터리에 비해 2배 이상 길고, 충격에 대한 안전성도 높다. 일본 도요타가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2~2014년 도요타가 출원한 차세대 전지 관련 특허의 68%가 전고체배터리 분야다.

하이브리드 전기차(hybrid electric vehicle) 내연기관차와 동일하게 연료를 주유하면 운행 중 일부 구간에서 내부 모터가 전기를 충전하는 방식. 외부 충전은 할 수 없다. 고속운행 시에는 내연기관을, 저속운행 시에는 모터를 사용한다. 도심운행에 적합한 전기차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PHEV) 전기차의 약점인 충전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의 혼종이다. 하이브리드 전기차와 차이점은 외부 전력에 연결해 충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일반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를 보완한 형태의 전기차다.

지에르조니우프(폴란드)=김문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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