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경제학 박사, IMF 수석 자문위원,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예일대 경제학 박사, IMF 수석 자문위원,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자문위원, 전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고 있고 침체가 지속되면 세계 금융시장에서 제로(0)에 가까운 금리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금융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세계적인 통화·금융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 버클리)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세계 금융시장의 금리가 계속 내려가 제로 금리에 가까워지면 한국 등 신흥국 금융시장이 자금 유출 우려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선임자문위원을 지냈고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RB) 전 의장의 통화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또 미국 경제학계의 대표적 한국 전문가이기도 하다. UC 버클리 한국학 연구소 전임교수이며 1987년 이후 한국 경제의 변화를 분석한 ‘한국 경제: 기적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한 상황에서 ‘이코노미조선’이 아이켄그린 교수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취약점인 자본 유출입을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고 경고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한국처럼 자본 유출입이 자유로운 국가는 금리가 미국 등 주요국보다 높을 때는 해외 투자 자금이 유입된다. 금리 차이만큼 이익을 거둘 수 있어서다. 반대로 한국의 금리가 미국 등 주요국보다 낮을 때는 투자 자금이 빠져나간다. 한국은행이 미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ECB)과 되도록 비슷한 금리 수준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도 투자 자금 유출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방한한 아이켄그린 교수가 “최근 들어 대규모 자본 유출이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한국이 위기 때 자금 유출 피해를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제로 금리로 향해 가는 현 상황이 국내 경제·금융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지 들어봤다.


연준은 지난 7월 기준금리를 2.00∼2.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추가 인하할까.
“미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증가하고 경제 성장의 둔화 징후가 포착된다는 점 때문에 9월에 추가로 0.2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본다. 연준이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추가 인하하는 게 맞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연준이 경제 성장을 막고 있다며 현재보다 최소 1.0%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이사회 의장을 ‘적(enemy)’이라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상황은 다른가.
“연준과는 조금 다르다. 연준은 현재 기준금리가 2.00∼2.25%다. 그런데 ECB는 이미 기준금리가 0%다. 이제 갈 곳은 마이너스 금리밖에 없다. 금리를 더 이상 인하할 여지가 없다. 시중은행이 긴급 자금이 필요해 1일간 ECB에 자금을 빌릴 때 적용되는 금리도 0.25%에 불과하다. 금리라는 게 의미 없는 수준까지 내려가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대신 양적 완화를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연말이 되기 전까지는 거의 틀림없이 양적 완화를 시작할 것이다.”

금리가 이렇게 낮아지고 시장에 돈이 너무 풀리면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슷해지는 것 아닌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상황이 글로벌 경기 침체를 향해 가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와 같은 위기의 재발 위험에 처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주요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상당 기간 제로 금리 또는 제로에 가까운 금리를 유지할 것이다. 제로 금리가 장기화한다는 얘기다.”

제로 금리로 가면 경기를 회복시킬 수 있나.
“제로 금리 정책은 세계 경제에 제한적인 도움이 될 수는 있다. 내가 제한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금리가 이미 낮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 효과가 경기를 부양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에서는 재정 정책 입안자들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화 정책으로 안 되는 부분은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자본의 유출입이 심한 곳이다. 제로 금리 상황이 어떤 영향을 주나.
“한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중간에 위치한 국가이면서 금융시장이 상당히 큰 국가다. 금융시장이 크다는 사실은 투자자들이 돈을 넣고 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제로 금리 상황이 오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 한국처럼 대규모 금융시장을 가진 신흥 경제국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과거에 나와 푸남 굽타(Poonam Gupta) 세계은행(World Bank) 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한 실증 분석에서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제로 금리가 되면 보험회사,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타격받을 수 있나.
“당연하다. 제로 금리는 보험사와 연기금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킬 것이다. 또 이런 수익성 악화로 인해 해당 기관에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을 집어삼키는 수준, 즉 금융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제로 금리 시대에 달러화 가치는 어떻게 되나.
“제로 금리 시대가 온다는 것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달러화를 폭풍 속에서 안전한 항구로 생각한다. 안전 자산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결국 달러화는 강세가 된다. 지금까지는 이런 효과가 계속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이 금리를 계속 내린다는 것은 미국 경제가 그만큼 안 좋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가 안 좋아지면 달러화 가치도 내려갈 수 있다. 예측하기 어렵다.”

원화 가치는 어떤가.
“원화는 연준이 금리를 내리는 것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상황에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두 나라와 한국이 경제적으로 강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과 일본의 외교 분쟁, 트럼프의 대(對)중국 무역분쟁 같은 외교적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따라 원화 가치가 변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제로 금리 이자율의 영향과 더불어 이런 문제도 고려해야 급격한 자본 유출입 등 문제에 대비할 수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은 누구?

‘안전 통화의 저주’ 밝힌 경제학자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 교수는 금융 위기와 경제변동론의 대가로 꼽힌다. 그는 특히 화폐 가치가 그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켄그린 교수가 주창한 ‘안전 통화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는 화폐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 해당 국가의 경제는 악화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일본 엔화가 달러화, 유로화보다 강세를 보이면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돼 결국 일본 경제는 침체에 빠진다는 주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은 실제 안전 통화의 저주에 시달렸다. 아베 신조 총리가 들어서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떨어뜨리고 국채를 매입해 금융시장에 돈을 풀었다. 인위적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한 것이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이 정책은 결국 아이켄그린이 주창한 안전 통화의 저주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인 셈이다.

아이켄그린 교수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지난해 3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 10%의 관세 부과 법안에 서명했을 때 그는 “트럼프가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정해용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