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주현미. 사진 CC엔터테인먼트
가수 주현미. 사진 CC엔터테인먼트

“30년 전 오늘, ‘신사동 그 사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수많은 상도 받았습니다. 옛 추억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지난해 12월 가수 주현미가 유튜브 계정을 개설해 1인 방송을 시작하고 자신의 대표 히트곡인 ‘신사동 그 사람’을 부르는 영상을 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유튜브 계정 이름은 ‘주현미TV’. 지난해 11월 26일 첫 영상을 올렸다. 올해 9월 현재 구독자 수는 5만5000여 명. 디너쇼와 콘서트, 방송국의 주요 가요 프로그램을 누비는 34년 경력의 ‘국민 가수’가 ‘신참 유튜버’가 된 것이다.

유튜브 속 주현미는 가수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년)’와 같은 90여 년 전 노래를 기교 없이 담백한 음색으로 부른다. 때로는 자신의 ‘메가 히트곡’인 ‘신사동 그 사람’과 ‘짝사랑’을 대중에게 익숙한 그 목소리로 간드러지게 전하기도 한다. 영상에는 주현미와 아코디언·기타 반주자 2명, 이렇게 3명이 등장한다. 방송 프로그램의 관현악단에 비하면 반주는 무척 단출하다. 대신 주현미의 목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그는 계정을 만든 이후 매주 2개씩 노래 영상을 올리고 있다. 1920년대의 대중가요 커버곡(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것)부터, 올해 발표한 자신의 드라마 삽입곡까지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98개의 영상이 쌓였다.

9월 3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주현미를 만났다. 1961년생, 올해로 만 58세인 그는 내후년 환갑을 앞두고 있다. 그는 “100년의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기록해보자는 목표가 있다”면서 “유튜브는 내가 올리고 싶은 콘텐츠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어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주씨에게 있어 유튜브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맘껏 부르는 무대이자, 팬들과 더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다.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는.
“3년 전쯤 딸과 아들 덕에 유튜브의 존재를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은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공유하는데, 아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유튜브 링크를 보내는 거다. 호기심이 생겨 유튜브를 좀 들여다보니 커버곡이나 개인 방송도 많았다.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자신이 올리고 싶은 콘텐츠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생각하는 방식이 굳어지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유튜브에는 정말 내 맘대로 아무 영상이나 올려도 되는 거야?’ 하고 딸과 아들에게 거듭 물어봤다. 이후에 ‘그렇다면 나도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 불러서 유튜브에 올려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9월부터 채널 개설을 준비했고, 11월 26일 첫 영상을 올렸다.”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는 것과 기존 매체에 나오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기존 매체는 한마디로 ‘무겁다’. 노래 한 곡을 하려고 해도 관현악단이 총출동한다. 이런 무거움이 이제는 좀 답답하다. 요즘 문화 트렌드는 가벼움과 언제든 접할 수 있는 편의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트렌드가 결코 나쁜 것 같지 않다.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는 아코디언과 기타 연주자 그리고 노래 부르는 나 이렇게 셋만 출연한다. 시청자들이 댓글로 ‘반주가 단출하니까 목소리가 돋보인다’는 피드백을 해줬다.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게다가 지금은 트로트를 부를 수 있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KBS의 ‘가요무대’ ‘열린 음악회’ ‘전국노래자랑’ 정도다. 여기에서도 갈증을 느끼게 된다. 제작진의 요구에 맞출 뿐 내가 정말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는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로 “아이돌이 아닌 우리 같은 가수들은 설 무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서 놀랐다. 트로트계의 국민 가수 아닌가?
“그것이 현실이다. 방송을 제외하고 트로트 가수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콘서트나 디너쇼,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행사가 대부분이다. 팬들과 만나는 자리라 좋기는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내 노래 중엔 슬픈 사랑 노래도, 부모님을 그리는 노래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허무한 감정을 담은 노래도 있다. 그런데 행사에서는 무조건 신나는 ‘행사용’ 노래를 불러야 한다.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노래의 감정과 분위기를 담아 부르기가 어려운데, 유튜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어 기쁘다.”


대중가요엔 시대적 배경 녹아 있어

1920~60년대 대중가요를 부르는 이유는.
“옛 선배들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잊혀 간다는 안타까움과 조바심 때문이다. 같이 음악 하는 후배들도 요즘 대중가요나 서양 음악들은 곧잘 연주해도, 옛날 노래 연주는 어색해하고 어려워한다. 게다가 옛날 가요는 음질이 좋지 않아 가사 전달도 잘 안 되고, 제대로 된 반주도 남아 있지 않아 찾아 듣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레 옛 가요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우리 옛 가요가 잊혀 가는데 손 놓고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후배들보다는 옛 가요에 익숙한 내가 직접 나서서 보존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유튜브의 최종 목표는 ‘한국 대중가요의 교과서’ 같은 채널이 되는 거다. 나중에 음악 하는 후배들이 옛날 노래가 궁금할 때 내 유튜브를 참고하면 좋겠다. ‘원곡 보존’이 목적이다 보니, 편곡이나 지나친 기교는 자제한다. 조미료 치지 않고, 원곡의 감성에 최대한 가깝게 부르려고 노력한다.”

주현미는 유튜브에 영상과 함께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줄글을 함께 올린다. 노랫말에 함축된 시대 배경,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생애에 대한 글이다. 영상과 글을 함께 읽다 보면 주현미TV는 그의 말대로 한국 대중가요 백과사전 또는 교과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옛날 대중가요의 매력은 무엇인가.
“시대적 배경을 음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4년)’은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 갔던 화자가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에 몸을 싣고 부산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는 내용이다. 노래 가사를 보면 당시 한국이 전쟁을 겪었고, 서울 사람이 남쪽 지방인 부산까지 피난을 갔으며,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다시 돌아갔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 그 시대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닮고 싶은 선배 가수가 있다면.
“존경하는 선배들이 이제는 많이 돌아가셨다. ‘목포의 눈물(1935년)’을 부른 이난영 선배, ‘알뜰한 당신(1936년)’을 부른 황금심 선배…. 황금심 선배는 같이 무대에서 노래한 적도 있다. 선배들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 시절 여자 가수로 사는 삶은 어땠을까’ 상상하게 되면서 가슴 한쪽이 뭉클해진다.”

최근 TV조선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 ‘내일은 미스트롯’ 덕에 젊은 사람들도 트로트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 것 같다. 우승자 송가인의 인기도 눈에 띄는데.
“어떤 형태로든 트로트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다시 각광받는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송가인양에 대해서는…. 지금 막 주목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평가하기는 이른 시점인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정도 영향력이 있다는 것은 송가인양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댓글 하나하나 읽어… 눈물 흘릴 때도 많아

팬들의 댓글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동해안에서 트럭에 과일을 싣고 수십 년간 장사를 했다고 밝힌 분이 남겼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장사를 할 때 주현미 노래를 틀면 사람들이 더 많이 와서 더 많은 과일을 사준다’고,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는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다(주씨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또 내 노래를 듣고 어머니 생각에 사무쳤다던 분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3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은 분이었는데, 유튜브를 보고 어머니께 노래를 불러드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는 사연이었다. 중학생이라고 밝힌 팬이 응원 댓글을 남긴 것도 기억에 남는다. 내 아들·딸들도 트로트를 어색해하는데, 중학생이 어떻게 이 감성을 이해하는 걸까 싶어 신기했다. 댓글을 읽다 보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새삼 깨닫고 행복해진다.”

주현미는 “유튜브를 통해 오랜 시간 팬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팬들의 댓글을 유튜브 콘텐츠 제작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그는 댓글을 전부 읽어 보고, 부를 노래를 정할 때 팬들이 많이 요청한 곡은 꼭 포함시킨다. 팬들의 댓글을 소리 내 읽고 여기에 답변을 해주는 ‘달달한 톡’이라는 코너도 따로 만들었다. 영상 속 주현미는 팬들의 댓글에 감동받아 울먹이기도 한다. 달달한 톡 영상은 매달 1개씩 올라오며 길이는 10여 분 정도다.

온라인 공간에 50대 이상 크리에이터가 많아지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 주고 싶은 중장년들이 더 많이 용기를 내는 것 같다. 이 나이쯤 되면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행동하기보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현해 보고 싶은 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사실 한 방송국에서 지금의 주현미TV처럼 개인 채널을 같이 만들어 보자는 연락을 받은 적도 있다. 작가도 붙여주고, 홍보도 대신 해주면서 구독자를 늘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기존에 방송국과 일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진이 요구하는 사항을 들어주는 쪽으로 자연스레 움직일 수밖에 없고, 그럼 지금의 주현미TV처럼 정말 ‘주현미가 하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정상에 머무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망설이며)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노래할 줄 몰랐다. 그저 매번 주어진 스케줄을 최선을 다해 소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섰고 노래했다. 어느덧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

내후년 환갑을 앞둔 심정은.
“별다른 감흥은 없다. 그 나이에도 계속 노래하지 않을까. 내년이 데뷔 35주년이라서 콘서트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무대에 설 땐 신인처럼 긴장되고 설렌다. 데뷔 50주년쯤 되면 좀 덜 긴장되려나(웃음).”

동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인생의 중심은 ‘나’여야 한다. 우리 나이가 되면 아내·엄마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다. 처음엔 그래서 적응이 안 된다. ‘이젠 뭘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혼란스러울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나’를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내 경우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가수 데뷔를 했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요즘 인문학 강좌를 듣는다. 아이들도 다 커서 이제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 가려고 할 텐데, 엄마가 애들만 쳐다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워한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곧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주현미는 누구?

주현미(58)는 중앙대 약대를 다니던 중 1981년 강변가요제에 출전해 장려상을 탔다. 대학 졸업 후 약국을 개업하고 운영하다 가수로 데뷔했다. 1984년에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 메들리를 녹음한 ‘쌍쌍파티’ 앨범으로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와 시장, 노점 등에서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그 기세를 이어 1985년 정규앨범 1집 ‘비 내리는 영동교’로 데뷔해 단번에 스타가 됐다. ‘신사동 그 사람(1988년)’으로 MBC, KBS 연말 가요대상을 동시에 받았다. 다음 해 발표한 ‘짝사랑(1989년)’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으로 연말 가요시상식 대상을 휩쓸었다.

정규앨범을 17집까지 냈고,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한국으로 이주한 중국인 한의사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화교 3세다. 당시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주씨의 아버지를 비롯한 화교들은 대만 국적이었고, 주씨도 대만 국적이었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8세에 록그룹 비상구(EXIT) 보컬리스트 출신이자 조용필 밴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기타리스트였던 임동신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plus point

중장년 유튜버 대세
구글 CEO도 만남 요청한 중장년 유튜버

김소희 기자

지난 5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유튜버 박막례씨와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5월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유튜버 박막례씨와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5월 구글의 최고경영자(CEO)가 만나고 싶다고 지목한 한국인은 유튜버 박막례(72)씨다. 박씨는 유튜브에서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로 활동하고 있고, 구독자는 104만여 명에 달한다. 박씨의 주요 콘텐츠는 여행·뷰티·요리 영상이다. 박씨는 구글이 매년 개최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개발자 회의인 ‘구글 I/O 2019 (Google I/O’19)’에 초청받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를 만났다. 피차이 CEO는 박씨에게 “할머니의 이야기는 제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영감을 준다”고 말하며 포옹했다. 피차이 CEO는 이 만남 이후 박씨와 찍은 사진을 자신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박씨처럼 유튜브로 인생 2막을 여는 중장년이 늘고 있다. 이들은 소소한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한다. 가족 부양, 회사 일과 같은 ‘책임’에서 벗어나 자신의 취향과 감정을 담은 영상을 제작한다.

농사 노하우를 공유하는 ‘성호육묘장’이라는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는 안성덕(66)씨도 인기 중장년 유튜버다. 구독자는 17만여 명이다. 성호육묘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농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구수하고도 차분한 충청도 사투리가 인기 요인이다. 안씨의 콘텐츠는 귀농을 꿈꾸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동물을 좋아하는 20·30대에게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해 그가 올린 두더지 영상은 조회 수 485만여 회를 기록했다. 이후로도 안씨는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나 토끼, 닭 등을 찍어 올린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장년 연예인들도 유튜버로 활약하고 있다. 가수 노사연(62)씨는 개인 유튜브 ‘식스티 앤 더 시티’를 운영 중이다. 구독자들을 ‘뽕뽕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개그우먼 박나래나 전 아나운서 장성규 등이 출연해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탤런트 이덕화(65)씨도 자신의 유튜브 ‘덕화TV’에서 자체 예능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카페 ‘덕화다방’에 가수 김완선, 전영록, 개그맨·개그우먼 유민상, 김민경 등을 초대하는 형식이다. TV에서 한동안 뜸했던 개그맨 이홍렬(65)씨도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상의 주요 소재는 반려동물이나 가족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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