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등산에 비유되곤 한다. 정점에 다다른 후에는 하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년기를 앞두고 있는 중장년층은 ‘내려가야 할 때’를 예감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

하지만 이런 통념을 깨는 통계들이 발표되고 있다. 진짜로 마음의 안식을 얻는 시기는 50대에 접어드는 중장년층부터라는 것이다. 2014년 브루킹스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20~40대 초반에 가장 낮은 행복감을 느끼는 반면, 만 55세를 기점으로 점점 행복해지며, 인생의 막바지에 행복의 절정을 느낀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72)는 ‘나는 내 나이가 좋다’는 책에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행복감을 담았다. 원문 제목은 ‘북쪽으로 노를 젓는 여자들(Women Rowing North)’이다. 바람을 맞듯 세월에 따라 흘러가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노를 젓는 ‘액티브 시니어’ 여성들을 의미한다. 미국에서 지난 1월 출간된 이 책은 ‘뉴욕타임스’, 출판전문 잡지인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미국 잡지 ‘라이브러리 저널’은 이 책을 ‘베이비부머 세대(1946~64년생) 여성들의 성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8월 23일 출간됐다.

‘이코노미조선’이 파이퍼 작가에게 중장년과 노년의 세계에 어떤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지 물었다.


나이 든 여성의 삶에 대해 책을 쓴 계기는.
“노년기를 맞이하는 70세가 되던 해에 내 또래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미국에서는 노년의 여성은 못생겼고, 쓸모없으며,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이런 고정관념이 나이 든 여성들에게, 나아가 이 사회에 해로운 것이라는 점을 짚어주고, 생애 주기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고 싶었다.”

당신의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유가 무엇인가.
“여성과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같은 문제점을 공유한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있다. 남성은 외모나 성적 매력으로 비하당하는 경우가 여성보다 적다. 노년의 남성은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종종 존중받지 못한다. 많은 여성이 그들의 나이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는 모두 ‘시어머니’ 농담에 이용되곤 한다. 만화에서는 노년 여성의 생김새, 멍청한 성격, 심지어 냄새를 들먹이면서 조롱거리로 삼는다.”

파이퍼 작가는 노인들이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것보다 훨씬 더 주체적인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오랜 경험을 통해 자기 내면과 그 바깥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주창한 ‘폐경 후 활력기’라는 말을 책에서 소개한다. 폐경 후 활력기란 월경에서 해방된 여성들이 겪는 자유롭고 활기찬 시기를 의미한다.

폐경 후 활력기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당신은 갱년기가 오히려 삶에 활력을 제공한다고 봤는데.
“독자들이 충격받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접근이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노인들은 자신을 돌보는 법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삶에 활력을 느낀다. 그들은 적정한 경계선을 지킬 줄 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자기 비평을 줄인다. 또 이 시기 여성들은 처세술에 능하다. 주변 관계에 덜 민감한 대신, 더 감사하고, 더 능숙하다. 나의 이모 그레이스는 이것을 ‘나는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는단다. 내가 뭘 원해야 할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
“그렇다. 우리는 자라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을 거짓된 모습으로 꾸며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진실되게 반영할 수 있는 ‘진정한 자아(true self)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노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진실성’이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온전하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자기 주권’이다.”

책에서 분노에 솔직하게 직면하라고 조언했다. 베개를 주먹으로 치거나 나무에 돌을 던지는 등 다소 과한 방법도 소개됐다.
“내가 분노에 차 있는 사람은 아니다. 성차별이나 노인 혐오 문화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공적인 장소에서 단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항상 차분하고 친절한 치료 전문가와 같은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정말로 화가 나는 날이면, 매우 드문 일이지만, 혼자 밖에 나가서 돌이나 나뭇가지를 집어 던지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 행동이 분노의 감정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육체적 긴장감을 완화시켜준다. 깊고 강렬한 감정을 외면하기만 했다면, 지금 당장, 최대한 빨리 직면해야 한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면, 설령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파이퍼 작가는 여성이 나이가 들어 더 행복함을 느끼는 이유를 수영장 탈의실에서 깨달았다. 그는 대학교에 있는 수영장을 다니다가 최근 노년층 대상의 헬스클럽으로 옮겼다. 대학교에서는 젊은 여성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이들은 옷을 벗을 때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몸을 웅크렸다. 운동 파트너나 전화기 너머 상대에게 체중, 학점, 인간관계에 대해 불평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새로 등록한 헬스클럽에서는 나이 든 여성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벌거벗고 돌아다녀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책에서 “우리 몸은 주름과 튼 살, 셀룰라이트(몸 안의 노폐물과 지방 덩어리가 특정한 부위에 뭉쳐 있는 것)로 가득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면서 “우리는 서로의 몸보다 수십 년의 기쁨과 고통이 새겨진 얼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공유했다”라고 썼다.

책의 표현을 빌리면, 나이를 먹으면 ‘시든 몸’을 갖게 된다고 했다. 노화가 행복의 걸림돌이 되면 어떡하나.
“60대 후반부터 70대 여성들은 건강 문제나 기능 저하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노화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계속 적응해 나가야 한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는 ‘나탈리’라는 노년 여성의 사례가 소개된다. 그는 혈구 감소증을 유발하는 ‘루푸스병’을 앓고 있다. 가볍게 넘어지거나 심지어 이를 닦다가도 피가 나면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난 절대 루푸스가 내 삶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나탈리는 좋아하는 빵을 만들고, 차고에서 벼룩시장 겸 파티를 여는 등 자신의 모든 일을 스크랩북에 일일이 기록하며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파이퍼 작가에게 이메일로 답변을 받은 뒤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보냈다. ‘감사와 긍정의 자세를 어떻게 유지하면 좋을지 예를 들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보내왔다.

“나는 오늘 신선한 복숭아를 품은 복숭아 나무가 뒤뜰에 있고, 벌새들이 평화롭게 이주하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달, 일출 그리고 일몰을 보는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친구들을 만나고, 남편과 좋은 대화를 나눌 때 행복하다.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것이 행복의 비밀이다. 당신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생각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 메리(로부터).”


메리 파이퍼는 누구?

캘리포니아대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네브래스카대에서 임상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심리학회(APA)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두 차례 수상했다. 대표작은 ‘리바이빙 오필리아(Reviving Ophelia·1994)’로 당시 154주 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19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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