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의 100세 시대 생애주기에 따르면 1~17세가 미성년, 17~65세가 청년, 65~79세가 중년, 79~99세가 노년이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50년간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이근후 선생을 만나러 평창동 가족아카데미아를 찾아갔다. 그가 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읽고 나서다. 김형석 교수의 ‘백 년을 살아보니’가 100세 시대 인생을 돌아보는 성실한 교과서라면,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은 눈 감는 순간까지 야금야금 반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역동적인 100세 참고서다.

더위가 잦아든 늦여름 아침. 세검정 언덕 큰 바위 앞에서 ‘죽을 때까지 재밌게 살고 싶다’고 선언한 노학자를 만났다. 형식적인 팔순 잔치가 싫어, 한 해 내내 “오늘이 내 팔순이야.” 헤어질 때마다 지인들과 웃으며 기념했다던 그다. 백남준의 설치 작품 ‘다다익선'을 흉내 낸 듯 한쪽 벽엔 오래된 컴퓨터 모니터가 겹겹이 쌓여 있고, 소파 위엔 아내와 손잡고 찍은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모자를 쓴 얼굴은 장난기가 가득했다.


노인이 청년에게 줄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경청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선생 자신도 늘 부드럽게 맞장구를 쳐주셨던 외할머니와 대화를 아름답게 기억하신다고.
“대개 노인이 되면 성장기에 학습한 교양과 습관이 세포 조각 떨어져 나가듯 휘발된다. 오롯이 남는 건 부모에게 받은 DNA와 기질, 어린 시절의 가정 교육뿐. 그래서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나온 거다. 그렇게 중간 교양이 사라져버리면 뭐가 남겠나? 고리타분한 어린아이다. 그 모습을 피하려면 노인은 노인이 되기 전부터 젊은이에게 얘기 듣는 걸 즐겨야 한다. 하지만 경청은 무한한 자제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을 놓치면 어디 가서 마이크 받으면 안 놓고 1시간을 횡설수설한다.”

선생은 어떻게 경청을 실천하고 계신가?
“청년들 말을 알아들으려고 나는 걔들이 쓰는 신조어부터 공부했다. 어느 날 작정하고 신조어를 다 뽑았더니 A4용지 5장이더라. 그걸 벽에 붙여두고 모르는 말 나오면 사전 보듯 찾아봤다. 어느 순간 말귀가 트여 인터넷 댓글도 잘 단다(웃음).”

노력이 대단하다.
“그런데 이젠 눈이 나빠지니 그렇게 좋아하던 소통도 못 하겠더라고. 왼쪽 눈은 네팔 의료 봉사하러 다닐 때 실명했고, 오른쪽 눈은 황반변성으로 세상이 흐릿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뭔가?
“눈은 어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일을 찾자는 거다. 손주한테 시급을 주고 내 말을 구술해달라고 부탁했다. 시력은 잃었지만 그 일로 손주와 정기적인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번 책도 그렇게 나왔다. 주고받고 섞이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회복된다는 사실도 큰 위로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해석의 힘이 필요하겠지만.
“사실 인생의 슬픔이 작은 기쁨으로 회복되진 않는다. 잠시 잊을 뿐. 인생은 고통이고 슬픔이다. 그 끝이 죽음이라 슬픈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기쁘신가?
“순간순간 작은 일에 기뻐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점수를 받을 때 기쁘고, 아이들 생산해서 키워낸 것도 기쁘다. 네팔에 의료 봉사 다니는 것도, 광명 보육원에서 아이들 돌보는 것도 즐겁다. 즐거움을 목적으로 그 일을 하진 않았지만 해서 즐거우니 자꾸 하게 되더라.”

이근후 교수의 인생은 격동의 현대사와 맞물려 파란만장했다. 의과대학(경북대) 레지던트 시절 뒤늦게 4·19 혁명 주동자로 지목돼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했다. 전과자 딱지가 붙어 취직 길이 막막했다. 고민 끝에 당시 의사들이 기피하던 국립정신병원장에게 편지를 썼고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그곳에서 풍부한 임상 경험을 쌓아 의사로서 크게 성장했다.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가나 했더니, 난데없이 군대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시절이 바뀌어 4·19 사면자가 되면서 입영 통지를 받은 것. 제대 후 부르는 곳이 없다고 낙망 않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연세대 전임강사 제안을 받았고 이후 이화여대로 옮겨 평생을 가르쳤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마법처럼 막다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이게 여든다섯 해를 살아본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리다.” 노학자의 통찰에 의하면 “인간은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하는 운명”이고, “운명 앞에서 약자인 자신의 처지를 고뇌하며 꿋꿋하게 버텨내는 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국내 최초로 감옥 같던 정신과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고 사이코 드라마도 처음 시작하신 거로 안다.
“내가 교도소에 갇혀봐서 안다(웃음). 개방 병동은 정신의학 교과서대로 한 거다. 보통 환자가 혼자서 웃는 것, 중얼거리는 걸 의미 없다고 기술한다. 나는 환자의 모든 행동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실없어 보이는 웃음, 중얼거림을 치료자가 못 알아들었다고 ‘의미 없음'으로 단정해선 안 된다.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어야지.”

50년 넘게 15만 명을 진료하면서 깨달은 것이 삶의 고통은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집착해서, 라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그게 대표적인 환자의 증상이다(웃음). 49% 병리에 51% 정상이면, 다들 겉으로 보이는 51%로 정상인처럼 살아간다.”

억울한 생각, 불안한 생각이 차오를 땐 어찌해야 하나?
“잊으려고 애쓸수록 과거는, 미래는, 괴물처럼 커진다.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는 일을 찾는 거다. 원한을, 걱정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일을 찾아서 야금야금 해야 한다. 상한 마음이 올라올 틈이 없도록. 불안을 끊어낼 순 없지만 희석할 순 있거든. 그렇게 작은 재미가 오래 지속하면 콘크리트 같은 재미가 된다.”

불안을 덮으려고 눈앞의 조작적 즐거움에 집착하면 감당 못 할 고통만 커질 뿐이라고 했다. “섹스, 마약, 알코올 중독처럼 눈앞의 큰 쾌락을 추구하면 뼈아픈 대가를 치른다.”

죽음에 대해 여쭙겠다. 오래 살아도 마지막에 두려워 울면서 죽음을 맞이한 부모가 자식에게 트라우마가 된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큼 사랑하는 이에게 큰 선물은 없다고 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음은 두렵다. 그게 정상이다. 정신분석에서 보면 죽음을 대면하기 무서워 자살하기도 한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 최근엔 관에 들어가는 체험도 하더라. 눈 뜨고 관에 들었다가 나오는. 하지만 그조차 오만이다. 헛소리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는 게 죽음이다. 죽음은 올 때 경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연습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는 날까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웃음이 나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드는 것뿐이라고 했다. “추억조차 인위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다. 기분 좋게 지내는 하루하루, 생활이 추억이 되는 거다.”

매일 아침 눈뜨면 어떤 생각을 하나?
“아! 눈떴으니 행복하다. 이왕 눈떴으니 재밌게 살아야지. 오늘도 눈떠서 인터뷰할 생각을 하니 좋았다. 김 선생이 가고 나면 또 그 좋은 여운이 며칠을 가겠지. 기사가 나오면 그걸 보고 나누며 또 며칠이 즐겁겠지. 그렇게 하루하루 불안을 달래간다. 소소한 즐거움의 끈을 되도록 길게 만드는 거다(웃음).”


이근후는 누구?

이화여대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들을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다. 국내 최초로 폐쇄적인 정신 병동을 개방 병동으로 바꾸었고, 정신 질환 치료법으로 사이코 드라마를 도입했으며, 대학신경정신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해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