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사진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 사진 강북삼성병원

“제일 중요한 건 최고경영자(CEO)가 직원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것이 직원 개인과 회사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CEO는 직원이 우울하면 기분만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몸이 느려져요.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을 3일을 줘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직원의 정신건강이 나빠지면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신영철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은 “많은 CEO가 ‘행복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유약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직원들에게 ‘성과를 내자’는 얘기만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행복해야 일을 재미있게 하고 성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과거처럼 직원을 밀어붙인다고 성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회사의 리더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북삼성병원이 2013년 문을 연 기업정신건강연구소는 직장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평가하고 분석해 대안을 제시한다. 의뢰한 기업의 직원을 대상으로 우울·불안·불면·자기존중감·스트레스·맷집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설문을 진행해 정신건강 상태와 대안을 담은 보고서를 직원 개개인에게 제공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업 CEO와 임원 앞에서 정신건강 평가 보고회를 연다. 해당 기업이 전체적으로 혹은 부서별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가을 장맛비가 내리던 9월 4일,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로 기업정신건강연구소를 이끄는 신 소장을 만나러 서울 종로구 평동의 강북삼성병원을 찾아갔다. 여러 기업에서 행복, 스트레스 관리, 리더십에 대해 강연하는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는 “CEO를 포함한 기업의 임원들이 누구보다 먼저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담하고 직원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후에는 모 대기업의 임원 12명을 두 개의 조로 나눠 두 시간씩 그룹으로 상담해주는 일정이 있다고 했다.


기업 CEO와 임원이 호소하는 주된 고민은.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이라며 스트레스를 토로한다.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남자들은 명함이 사라지면 인생이 사라지는 줄 안다. 은퇴하고 나면 남자들은 보통 모든 관계가 단절된다. 은퇴 전부터 새로운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하면 좋다. 운동, 종교, 봉사, 취미 등 새로운 관계를 맺을 방법이 얼마나 많나. 예를 들어, 한국 남자들에게 교회에 일주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하라고 하면 잘 안 한다. 그런데 만약 총무 자리를 주면 소속감이 높아져서 열심히 나간다. 그래서 가능하면 종교 단체든 취미 단체든 한 자리를 맡으라고 한다.”

중간 관리자에 해당하는 40대의 정신건강 상태는 어떤가.
“전 연령대에서 40대 중반 남자들이 정신적인 압박을 가장 많이 받는다. 20·30대는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직하지 뭐’라고 생각한다. 50대가 넘어가면 포기해버린다. 어중간한 40대가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승진을 못 하거나 해고되면 우리 가족이 무너진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맞벌이하는 경우도 많으니 책임감을 나눠 갖도록 애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내와 의논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보통의 40대 남성은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도 아내와 의논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같이 의논하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고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다. 남편이 힘들 때 아내에게 의지하면 아내는 오히려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20·30대 직장인은 주로 어떤 스트레스를 받나.
“주로 자신의 장래 걱정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이 회사에 잘 들어온 건가’ ‘이 회사가 나랑 맞나’ ‘10년, 20년 다녀도 되는 곳인가’ 등을 고민한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회사에 들어와서 하는 역할이 다를 때, 자기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직원의 정신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직원이 받는 스트레스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2030년도에 직장인의 생산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질병’은 놀랍게도 우울증이었다. 평소에 우울, 불안을 겪는 직원이 결근하거나 지각하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출근했지만 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업무 성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프레젠티즘(presenteeism)이 발생할 때다. 이는 병가나 결근과 달리 대안을 마련하기도 난감하다. 결론적으로 직원의 정신건강에 투자하는 게 기업에 득이다.”

정신건강을 챙겨서 득을 본 기업이 있나.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물류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기사들이 자꾸 사고를 내면서 비용을 치렀다. 사고 이유를 조사해보니 운전기사들이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등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다. 이후 운전기사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평가하고 치료해줬고 사고율이 40% 줄었다.”

기업은 어떤 식으로 직원의 정신건강을 챙겨야 하나.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골라내서 낙인을 찍겠다는 ‘관리’가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직원을 도와주겠다는 ‘케어(care)’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직원이 누릴 수 있는 개인 복지 차원에서 정신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선 회사에 100% 비밀을 보장하는 정신건강센터 등이 필요하다. 기업이 법률 조언을 받기 위해 고문 변호사를 두듯이 ‘고문 정신과 의사’ ‘고문 심리 전문가’를 둬야 할 필요도 있다. 그게 힘들다면 정신건강 관련 전문 기관의 자문이라도 받길 바란다.”

회사가 챙겨주기 전에 직장인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은.
“안타깝지만 스트레스는 모양만 바뀔 뿐 죽을 때까지 우리를 쫓아오기 때문에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그 뒤에는 문제가 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괴롭히면 상사가 나쁜 사람인지 내가 문제 있는 건지 판단하라.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인지 아닌지를 분리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들이 오면 ‘잘 잤어요? 식사는요? 낮에는 뭐 하고 지내요?’라고 늘 묻는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움직인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이 무너질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스트레스 관리법을 알려주는 의사라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듯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원래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꼼꼼한 면도 있었고 스스로 불만이 많아 열등감도 적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육받으면서 성장했다. 작은 일에 집착하지 않는 여유도 생겼다. 문제가 생기면 ‘이게 중요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큰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진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이 없듯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잘 맞고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가족은 항상 나를 지지해’ ‘교회만 가면 행복해’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등 무기가 많을수록 버틸 힘이 생긴다. 심리 전문 상담가나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는 것도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신영철은 누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986년 경북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고려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연구조교수로 중독 문제에 대해 연수하고 돌아와 10년 이상 도박중독클리닉을 운영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로 근무 중이며 2013년부터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정미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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