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제품·서비스들. 오른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마라탕, 명상 콘텐츠, 국소형 마사지기 클럭, 탈모 관리 시장.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제품·서비스들. 오른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마라탕, 명상 콘텐츠, 국소형 마사지기 클럭, 탈모 관리 시장.

외국계 투자 은행에서 기업 분석 업무를 하는 김지수(34)씨는 야근하고 늦게 들어오는 날에도 자기 전에 술 한 잔을 꼭 찾아 마신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업종 특성상 종일 긴장하고 업무를 하는 상황에서 직장 상사의 압박도 엄청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김씨는 “스트레스 때문에 소주 한 잔이든 맥주 한 잔이든 꼭 마셔야 잠이 든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는 직장인의 고질병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8월 직장인 67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병’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대부분이 꼽은 직장 관련 병 1위는 우울증, 화병으로 대표되는 ‘스트레스성 정신질환(18.9%)’이었다. 그 뒤를 소화불량, 변비 등의 소화기 장애(16.0%), 업무 몰입 후 겪는 무기력증을 말하는 ‘번아웃증후군(12.6%)’이 이었다. 두통(11.2%), 신경 이상(11%), 급격한 체중 변화(9.6%), 면역 저하(8.7%) 등도 직장인 스트레스 관련 증세로 꼽혔다.

직장인의 스트레스 관리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산업계에서는 스트레스 완화·관리와 관련한 각종 제품·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관련 산업을 따로 정의하는 기준은 없지만,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관리하고 치료하는 등의 움직임은 꾸준하다. 요즘 뜨고 있는 스트레스 관련 산업을 소개한다.


1│남녀노소 탈모를 잡아라

워킹맘 장수진(34)씨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탈모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영업 압박이나 조직 갈등이 생길 때마다 두피에 열감이 차오르면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진다. 그래서 장씨는 요즘 탈모 방지 샴푸부터 두피 클리닉까지 찾으며 월평균 10만원 이상의 돈을 쓰고 있다. 그는 “효과가 뚜렷한 것 같지는 않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관리받고 있다”며 “이렇게 하지 않으면 머리카락이 더 빠지는 것 같아 별수 없다”고 말했다.

남성들만의 문제로 여겨지던 탈모가 여성, 젊은층으로 확산하면서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탈모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 21만여 명 가운데 여성 탈모 환자가 약 9만5000명이었다. 그중 장씨와 같은 20~30대 젊은층이 37%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잦은 파마, 염색, 다이어트를 비롯해 스트레스가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대표적인 분야가 탈모 치료제와 두피 케어 관련 제품 시장이다. 그중에서도 탈모 치료제 시장은 국내에서 연평균 14%씩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탈모 치료제 양대 산맥인 프로페시아(MSD)와 아보다트(GSK)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672억원, 51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보다 6.5%, 21.4%씩 증가했다. 여기에 두피 샴푸, 마사지 기계 등 케어 관련 제품, 한약재까지 더하면 전체 탈모 관련 시장 규모는 연 4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초저가부터 고가까지 마사지기 열풍

가정용 안마기 시장도 최근 뜨는 분야다. 한 대당 188만원(온라인 최저가 기준)이 넘는 프리미엄 안마의자부터 1만~3만5000원 선에서 팔리는 국소 마사지기까지 고루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모두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완화할 수 있게 하는 기기다. 실제로 G마켓은 8월 3일부터 9월 2일까지 한 달간 안마의자 판매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3%, 소형 안마기가 6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목 안마기 판매량도 35% 증가했다.

특히 20·30에게 인기 많은 제품은 국소 마사지 기기다. 휴대가 간편한 데다 가격도 저렴해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주파 마사지기 ‘클럭’은 지난해 7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300만 대 넘게 팔렸다. 손바닥 크기의 접착식 마사지기로 미세한 전기 신호를 이용해 지방 밑 근육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피닉스 마사지건’은 헤어드라이어 모양으로 생긴 마사지건 끝으로 근육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큐10 등 직구 쇼핑몰에서 인기다.


3│매운맛으로 스트레스 잡는 식품 업계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맛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매운맛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학적으로 매운맛은 단맛·짠맛·신맛·쓴맛 같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으로 느낀다.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가 매운맛 때문에 자극받으면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엔도르핀이 방출된다. ‘자연 진통제’로 불리는 엔도르핀 영향으로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효과가 있다.

최근 식품 업계에서 눈에 띄는 매운맛 마케팅 키워드는 ‘마라(痲辣)’다. 마라는 혀가 마비될 정도로 얼얼하고 매운맛을 내는 중국 사천 지방 향신료다. 마라를 채소, 고기 등과 함께 끓인 중국 음식 마라탕이 알음알음 인기를 끌다가 올해 본격적으로 식품 업계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치킨·피자·라면·과자 등 다양한 제품군으로 마라 열풍이 확산한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마라탕을 먹는다는 직장인 김성우(36)씨는 “마라 특유의 맵지만 얼얼한 중독성 있는 맛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4│마음의 평화 다스리는 IT 기술들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코끼리’라는 애플리케이션이 화제다. 숙면, 스트레스 해소, 명상 등에 도움을 주는 앱이다. 인플루언서 혜민 스님과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라는 기사를 쓴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함께 회사를 차려 만들었다. 이용자들은 앱을 켜고 혜민 스님이 진행하는 명상 수업을 듣거나 잔잔한 음악과 자연 소리를 들으며 명상할 수 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너피스(Inner peace·내면의 평화) 콘텐츠’가 인기다. 디지털 친화성이 높은 20·30을 중심으로 꾸준히 확산하고 있다. 유튜브에는 명상 관련 콘텐츠가 올라오고, 앱 스토어에는 명상 앱이 많다. 스트레스 완화, 불면증 치료 등이 목적이다. 명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 ‘마보(마음보기)’는 론칭 3년 만에 회원이 12만 명을 웃돈다.


plus point

“에잇, 스트레스받는데 사” ‘홧김 비용’ 月 20만7000원

30대 직장인 김근영씨는 이달 초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백화점을 방문해 343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샀다. 수년간 ‘위시리스트(사고 싶은 품목 모음)’로 품고 있었음에도 고가에 선뜻 살 수 없던 제품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마음가짐이 남달랐다고 한다. 김씨는 “어느 순간 업무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다고 느껴져 점심을 거르고 백화점으로 달려갔다”면서 “핑계 삼아 사긴 했지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김씨가 가방에 쓴 돈을 ‘홧김 비용’이라고 부른다. 업무 등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충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쓴 돈이란 뜻이다. 2017년 신조어로 급부상했다. 실제로 신한은행이 4월에 낸 ‘보통 사람 금융 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0~64세 경제 활동자 1만 명 대부분(86%)이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홧김 비용’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회당 평균 8만6000원, 한 달에 2.4회 정도로 총 20만7000원을 썼다.

성별에 따라 지출 내역과 지출 규모에서 차이가 났다. 남자는 주로 외식이나 음주(63.3%), 게임·스포츠·취미 용품 구매(34.8%)에 돈을 썼다. 반면 여자의 55%는 의류·잡화·액세서리 구매에 홧김 비용을 쓴다고 답했다. 외식·음주(53%)와 군것질(52.3%) 구매에 돈을 쓴다고 답한 비중도 높았다. 특히 여성의 지출 규모는 의류 구매가 5만1500원으로 남성(2만4200원)의 두 배가 넘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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